2화.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숨만 쉬는데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 그 날이 꼭 그랬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먹지 못했지만 그리고 그리 가벼운 차림새도 아니었 -심지어 네덜란드에서 벨기에로 넘어가는 날이라 손에, 어깨에 짐이 바리바리 얹혀져 있는-지만 기분이 너무 좋은 그런 날이었다. 지금 기분을 가지고 비행기를 탄다면 오버차지를 내야되는데, 그것 마저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낼 수 있는 그런 상태랄까?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서성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던 그 기다림이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하는 황지우 시인이 말하던 바로 그 오랜 기다림의 끝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아! 잘 살아 남았구나. 잘 버텨냈구나! ready or not, here i come!
브뤼셀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햇살은 정말 너무나 따뜻했다. 비록 3월 테러 때문에 곳곳에는 무장군인이 보였지만 오히려 혼자 여행하는 나에게는 이런 풍경에 더 안정감을 느꼈다. 사람들은 여유로웠고, 특히 시도 때도 없이 웃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에게는 유독 관대했다. (흥에 겨워 흥얼거림을 넘어 노래를 크게 불러 버린 것 같다 싶을 땐 스미마셍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리가또)
지난 5년동안 이런 소소함에서 느끼는 행복에 감사해 하는 법을 배웠다. 마음 깊은 곳에서 거센 풍랑이 일고, 분단위로 기분이 너울 뛰고, 월요일이 두려워 일요일이 미처 다 어두워지기도 전에 일찍부터 잠을 청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업무스트레스나 긴장감은 이제 적과의 동침 수준. 시간이 되면 또 어느새 어떻게든 해결하고 있을게 분명하니 말이다.) 감정의 부침속에서 헤어나고 나니 처음엔 안도감이 들더니 점차 이렇게 내가 평온하게 지내도 되나, 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쩌나싶어 마음 한구석은 늘 불안했고 더 많이 나중이 되고 나서야 오늘은 오늘 일만 생각하자며 희미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혼자하는 여행은 정말로 태어나서 처음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라 여행을 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다니는 나에게는 제격이었다. 밥 먹을 때 메뉴를 1개만 시켜야 되는게 가장 힘들다ㅜㅜ고들 하던데, 심지어 서울에서 제일가는 빵순이인 나이기에 매우 많은 걱정을 했지만 (오또케 해, 이 빵도 저 빵도 저기 저 빵도 먹어봐야하는데 이를 오쪼찌) 가자마자부터 딱딱한 빵에 신물이 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역시 가질 수 없을 때 가장 아름다운 너다.
리프레시. 모든 것으로부터 리셋을 하기 위한 여행이다. 과거 속 나와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를 사는 그런 멋진 여행이 되고 싶다. 아무렇게나 하는 여행이 아닌 아무래도 좋은, 느끼는 것 많은, 여유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기억에 오래 남는 여운 긴 여행이 되자고 다짐했다. 그 때 먹은 그 와플만큼이나 이 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쫀쫀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