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선라이즈

3화. 나는 여전히 로맨스를 꿈꾼다

by sunnyi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은 제일 먼저 무엇부터 할까? 맛집부터 찾을까 아님, 사진을 찍어야 하니 무슨 옷을 어떻게 가지고 갈까부터 생각할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 알아보기. 그 다음은 여행하는 동안 방 안을 잔잔하고 그윽하게 채워 줄 선곡표 만들기. 마지막으로는 비포 선라이즈 보기.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의미 부여 하지 않으려고 해도 서른에 혼자(따로 또 같이) 떠나는 여행이 마냥 천방지축일 순 없었다. 좋은 곳에 가면 '아 이런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야겠구나', '아 이런 곳에서 이런 감정을 함께 느껴줄 수 있는 신랑을 만났으면 좋겠다'생각이 드는, 좋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도 문득 턱하고 숨이 막히는 미래가 가늠되지 않는 전형적인 미혼 서른의 여행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더 아련하게 느껴졌던 이번 여행 내내 머릿 속을 울리던 최영미 시인의 이 구절.


누군들 여행에서 인연을 만나는, 생각만으로도 벅찬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행운스럽게도 난 매번의 유럽여행에서 꼭 한명씩의 누군가를 만나왔고 모두가 다 정말 좋은 (사랑말고) 사람들이었다. 로맨스를 꿈꾸지만 프렌드쉽을 만들어오는 내가 답답해 보이겠지만, 서울에서도 안되는 걸 외국가서 될쏘냐. (이 마음가짐이 문제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도시에 한 곡씩, 나만의 시그니처 곡을 붙여주기로 했다. 들으면 언제나 이 도시로, 이 순간으로 올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행복한 이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이 곳이 바로 정통 유럽의 느낌 @brussels, belgium
이 하늘의 브뤼셀에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brussels, belgium

예를 들자면, 혼자 하는 여행에 참 좋았던 첫 도시 벨기에 브뤼셀은 노리플라이no reply 의 '끝나지 않은 노래'. 왠지는 나도 모른다. 그 날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그랑플라스로 가는 길이었는데 날은 쨍하고, 사람은 북적이고, 바람은 살랑이는게 나도 모르게 비실비실 웃으며 신나게 발 구르면서 갔었다. '그 땐 말하지 못했던 이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 이 노래로'


나는 GMF는 연중 행사로 꼭 가는 뭐랄까 인디밴드음악(?)을 참 좋아하는 감성이 여리여리한 문학도인데, 한 번은 EDM의 여신인 언니가 물어 본 적이 있다. '도대체 저런 노래에 어떻게 뛸 수 있는거야? 어느 부분이 신나는거야?' 아 언니 우리 참 달라요. 난 EDM이 너무 시끄러워서 어떻게 듣나 싶은데.


갈수록 취향이 참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우리가 참 같은 코드여서 좋다는 말이, 그 코드가 바로 취향이고 백만스물두가지를 공유할 수 있는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취향은 정말 무서운 것이어서,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속을 여미게 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병률).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몇 번 보지 않았는데도, 몇 분 같이 하지 않았는데도 너무나 편안해 지고 우리 끝까지 가자란 생각을 하게 되는 무장해제. 그 고마운 감정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뎌진 내가, 사람은 믿어서는 안된다고 자조하던 내가 다시 한 번 느꼈다. 바로 이번 여행에서.


호그와트 아니고 정말 도서관 @amsterdam, netherland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동기를 만나기 전 1주일은 내가 이 여행을 계획하고 나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나의 wannabe 도시, 암스테르담이 있었다. 하지만 볼 게 없어 지루하다는 이야기가 많아 몇 일동안은 인근 벨기에나 스웨덴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바로 벨기에에서 나름의 비포선라이즈를 기대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일 '동행'을 만났다. (나이도 비슷하고, 직장인이고,여자니까 다들 그 기대에 부푼 얼굴을 거두시길)


취향이 너무 잘 맞았다. 빌어먹을 취향. 나는 모든 것을 공유할 작정이 아니었는데 긴장이 실타래 풀리듯 훌렁훌렁 제껴져 버리고 말았다. (사실, 나에게 뭘 숨기고 말고는 가당치도 않았다.) 심지어 맥주 한 잔 마시고 얼굴이 벌겋게 되서 백 잔 마신 것처럼 낄낄거리고 웃고 떠는 것, 쿵쿵거리는 핥빝에 신나하는 것까지도 비슷했고, 여행을 글로 남기고자 하는 목표도 같았다. 그리고 대미는 마지막 날 둘 다 선물이라고 꺼낸 저 풍차 엽서. 그녀는 잔센스칸스 풍차 마을을 보고 싶어 했고, 나는 레이크스미술관rijksmuseum 이 궁금해 고작 3시간 남짓 떨어져 있던 것 뿐인데, 마음이 같았다. 몇 일을 같이 다닌 유럽에서 만난 사람1,2가 되지 않길. 만날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우연을 소중하게 여기자는 그 같은 마음이 참 고맙고 따뜻했다. 역시 인류애의 시작은 여행인가.


비포선라이즈before sunrise(1995)


가수들은 자기 노래 따라간다는 이야기도 있고, 말이 씨가 된다는 옛 말이 있듯이 나도 여전히 나의 다음 로맨스를 꿈꾼다. 그래서 다음 여행을 준비할 때도 여전히 비포 선라이즈를 볼 생각이다. 매번 좋은 사람들을 새로 만날 여행이 되길 기대하면서. 나와 취향을 공유 할 멋진 '그' 사람을 만날 때까지, 멋진 용기를 일발장전하고. you, proba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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