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 날과 오늘은 다르다.
참 재밌는게 어제 일은 잘 기억나질 않는데 오늘로부터 꼭 30일 전에 일은 순차적으로 쭉 나열 할 수 잇을 것만 같다. 누가 무엇을 말했고 그래서 우리가 많이 웃었고, 그 때 우리가 있던 장소는 불빛이 너무 로맨틱했는데 우리 이게 하루 3번째 도시라는 말같지도 않는 상황에 우리의 대단한 열정에 웃었다같은. 여행지에서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아까 그 일이 꼭 어제 일인 것만 같아" 였는데, 서울에 돌아오니 정말 꼭 어제 일인 것 같다.
한 달 전 이 시간, 나는 출국하기 위해 온 갖가지들을 어질러 놓고 짐을 꾸렸다. 옷을 넣었다가 뺐다가, 다 넣었다 생각했는데 안 넣은 사소한 것들 (우산이랄까, 셀카봉이랄까) 때문에 다 풀고 다시 싸는데도 하나도 기운 빠지지가 않았다. '일단 다 때려 넣어야겠다' 그리고 내일의 공항을 생각하며 설레했고, 내려서 어떻게 호텔을 가야할지 캡쳐 몇 장했고. 그리고 유심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구나.
오늘 이 시간. 나는 스페인에 있을 때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미 비포 유. 세비야에서 타파스를 기다리면서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는 눈물이 흘렀다. (지금 생각하니 청승맞고 구질구질해 보여서 이불킥 몇 번 하는 중이다) 그리고 거의 매일 저녁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서 마음이 아려했다. '나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던 주인공 때문에. 결국 여행의 마지막 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의 마지막 오전에 이 책을 주문했다. 내가 집에 도착하면 누워서 바로 읽어볼 수 있도록. 그래서 바로 읽었고 영화도 봤고, 나는 어김없이 또 울었다. (옆에 계신 여자분은 시작하면서부터 우시던데.. 내 자리에 원래 다른 남자랑 오기로 되어 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좀 미안하긴 했지만, 영화는 혼자봐야 제 맛b)
오늘 내내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30일 전 그 날의 시간과 비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곤, 마음이 헛헛해졌지만, 비교해서 어쩔꺼야 난 이미 다시 돌아와버렸는데.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다녀온 동료와 메신저로 '우리가 거기서 죽지 않고 괜히 돌아와서 이 꼴을 본다'며 키득거리며 쌓여있는 업무메일을 처리하고 문의하는데 어찌나 위안이 되는지. 아 나만 이렇게 허덕이는 건 아니구나. 미안합니다. 제가 여행에서 함께의 가치를 무지 많이 느껴버렸거든요.)
여행의 마지막은 언제나 아쉽고 늘 쓰리다. 정말로 절대로 익숙해 지지 않는 몇 가지 중 하나다. 특히 이번 여행은 언제 또 갈 수 있을 지 모르는 장기간인데다, 정작 첫 날은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에서만 보내 왠지 여행 전 날이 더 아련한 것도 같다. 아 지워야 또 채워넣을 텐데 매사 놓치 못해 안달인 반추反芻의 동물 나에게 그거슨 넘나 어려운 것.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 여행코스의 나열이 아닌, 순간순간의 내 느낌을 적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스스로도 기특하다. 그래, 천천히 꾸준하게 가자.
뻐꾸기 날릴께요
7년의 밤, 28 을 쓴 작가 정유정은 살기 위해 떠나야 했던 생애 첫 해외여행을 '안나프루나'로 정해버리곤, (동성)친구들과 함께해야 된다는 남편의 조건부 허락을 받았다. 작가는 책에서 '친구들을 설득하다'라는 말 대신 '친구들에게 뻐꾸기를 날렸다'라고 표현했다.(정유정/히말라야 환상방황) 전쟁통에는 매를 날리고, 해리포터와 해그리드는 부엉이를 날리던데, 나는 참새라도? 아무튼 으레 다들 쓰는 말이지만, 그 표현 좀 빌려야겠다. 이제 나는 언제일지 모르는 미래의 여행을 위해 주위 친구들에게 쉴 새 없이 뻐꾸기를 날릴 작정이다. 언제나 제일 설레는 여행 전날을 위해서. 내일 만나서 또 몇 일 동안 하루종일 부터있을텐데도 짐 싸면서 쉴새 없이 울리는 그들과의 카톡 진동은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