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한 마디

5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by sunnyi

혼자만의 여행에서 좋은 점은 엽서를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잘 다녀오라고, 꽉꽉 마음에 눌러담고 오라고 말해주던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좋을까 고민하다 결정한 게 바로 엽서였다. 물질적인 어떤 것도 좋지만, 나는 아날로그의 대명사니까.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에서 엽서를 고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는 걸 보니 잘 한 결정이었다 싶었다. 이 도시에서 생각나는 친구들에게 한 장씩, 때로는 두 장씩 그 때의 마음을 적어 줘야지. 지금 함께 있지 못한 아쉬움을, 그리고 언제가 우리가 함께 떠날 그 날을 상상하며 쓰는 글에서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지길 바라면서.


엽서를 손에 잡히는대로 마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다 깨알같은 선택 기준이 있었다. 도시를 걸어다니면서 평소에 그 친구가 좋아하던 동물이 나오면 (예를 들면 상어랄까), 그 친구가 문득 생각나던 미술관 작품이 엽서로 나와 있으면, 평소 좋아한다고 노래 불렀던 작품이 있으면, 짖궂게 장난치던 그 친구의 포즈와 같은 엽서가 있으면,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있으면.


자고로 네덜란드는 풍차지 @amsterdam, netherland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본델공원 볕이 잘 드는 언덕에 앉아 헤죽거리면서, 기대한만큼 완벽했던 레이크스미술관 로비 땅바닥에 앉아, 랜드마크인 IAMSTERDAM 조형물 앞에서, 로맨틱했던 말라가 해변에서, 소오름 돋았던 세비야 스페인광장 그늘에서, 파리 오르세미술관만큼 좋았던 마드리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앞 벤치에 앉아 시간이 날 때 마다 한 장씩 적어 나갔다.


자세한 내용은 노코멘트지만 사알짝 말해준다면 내가 그동안 머쓱해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80%, 지금 내 앞/옆/뒤/대각선방향에 너무 멋진 오빠들-이라고는 하지만 아마 나보다 나이가 적겠지-이 있어서 너무 떨린다는 이야기가 10%, 아무래도 나 외국에서 살아야겠다는 이야기가 10%정도였던거 같다.


스페인은 플라멩고라면서 @seville, spain


나는 모든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잘 기억하는 편이다. 작은 한 마디에 감동받고, 의미없는 한 마디에도 속상해 하는 일희일비의 아이콘. 말 한마디에 설레하고 눈물 짓는 내가 때로는 사람만 보면 좋아서 꼬리 흔드는 강아지 같아서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나이 서른이라고 타협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에 더 귀기울이기. 나를 잘 알고 있는 중요한 사람들이 주는 사랑과/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는 상처는 결코 같은 무게일 수 없(김은주/1cm+)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20일간의 여행에서 내가 쓴 엽서는 대략 40장 남짓되는 것 같다. 엽서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잘 모르겠다. 뭐 이런 종이짝을 가져왔나 싶기도 하겠고, 이렇게 뭐가 주저리주저리 적혀있어 하기도 하겠구나. 하지만 이렇게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많이 고마웠는데 말을 잘 못했다고. 우리가 앞으로도 쭉 서로를 응원하며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내가 정말 많이 좋아하고 아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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