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나도 내가 소중하다.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의 선택 외국어는 독어와 일본어였다. 면학분위가 좋다길래 별 고민 없이 독일어로 선택했는데,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게르만족 외형을 좋아하게 된 것이.. 젊으니germany를 좋아하게 된 것이..
준비를 전혀하지 않고 간 도시이자, 마지막 도시이자, 마지막 날의 도시였던 프랑크푸르트. 여행에서 유일하게 사방이 짙은 회색이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왠지 모를 감상이었는지, 여행 마지막 날의 나태함이었는지 호텔에 누워 사진도 봤다가 드라마(또! 오해영 아니고 난 또! 이해영)도 봤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네이버로 대충 '프랑크푸르트 쇼핑목록'을 훑어 보고 나갔다. 음산한게 좀 마음에 걸려 과일이랑 커피만 사서 후딱 들어왔는데 그 와중에 또 우습게도 치약을 샀다. 디자인도 색깔도 마음에 쏙들어 넉넉하게는 아니어도 몇 개 사가지고 돌아왔다.
처음엔 선물할까 싶었는데 내가 언제 또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이걸 사오겠나 싶어 슬쩍 서랍에 넣어아껴 뒀었다. 일상으로 복귀한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 '이거 사러 다시 독일가야지'란 심보로 왠지 써도 될거 같아 큰 맘먹고 칫솔에 듬뿍 짜 양치를 시작했는데... 아 누가 내 입에 소독약 뿌렸니. 정확하게 어렸을 때 몇 번 맡아본 하얀 소독약의 향과 맛이 입 안에 가득퍼지는데 웃음이 터졌다. 아- 첫 날에도 치약때문에 여행 온 느낌이었는데 내 삶은 언제나 수미쌍관. 그러니까 차카게 살자. 차카게.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지 말고 내 마음 혹사시키지 말고. 나도 내가 소중하니까.
welcome back
한 컷에 다 담기는 hop by airfrance 라는 작은 비행기를 타고 (활주로 약간 옆이 승강장임) 집에 간다. 여기서 동양인&여행객은 유일하게 나뿐이다. 말그대로 프렌취 비즈니스 오빠삼촌들도 많은데 내 옆은 또 여자다. 이게 내 운명.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 쪽이 묵직해지는 벅찬 기억을 만들어 줘서 모두에게 고맙다. 이 모든 게 시간이 지났다고 색바라지 않고, 물렁해지지 않고, 희미해 지질 않길 바란다. 설렜지만 두려웠던 30대 첫 여행. 눈길이 스치던 모든 곳이, 눈이 마주쳤던 모든 순간이 아득하니 꿈 같았던 내 여행. 매 순간에 행복해 할 줄 아는 여유 갖기가 목표인 내 새로운 10년의 소중한 첫 페이지에 웃음이 난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생각에 착잡할 줄 알았는데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정말 진짜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