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외워보자
제주행 티켓을 산 건 출발하기 불과 몇 일 전이었다. 이번 주말에는 무얼 해야할지를 고민하기가 싫어서이기도 했고, 요즘들어 더욱 더 간절히 바라게 되는 변화를 주자는 생각에서 무작정 결제를 해버렸다. 주위 사람들은 부러워하면서도 나를 알기에 혼자 괜찮냐는 걱정을 하는데, 나는 엄청 씩씩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언제나 씩씩한게 문제다. 그놈의 씩씩한 척. 진짜로. 그래도 백번에 한 번쯤은 약빨을 받으니까 난 또 괜찮다 백 번을 말한다.
혼자 여행의 장점은 의외로 많았다. 카페에서 아무것도 안하면서 창 밖만 봐도 되고, 운전하다 감동적인 풍경이 이어지면 아무 곳에서나 잠깐 쉬어도 되고, 건너편 풍경이 좋으면 U턴 해 돌아가면 그만이고, 커피를 많이 마셔 배가 안 고프면 밥을 안 먹어도 되었다.
무엇보다 눈치 안 보고 내가 듣고 싶은 노래만 주구장창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노래를 참 많이 들었다. 귀에 꽂히고, 마음에 박히는 몇 노래를 아주 많이 반복해 들었다. 흥얼거리기도 하고, 따라부르기도 하고, 들었는지도 모르게 지나쳐버리도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좋은 노래의 기준은 전주와 노래가사가 8할이라고 믿는 나지만 유독 왜 이렇게 다 내 이야기 같은지. 노래가사에 대해 맞다고 박수치기도 하며 이제는 쿨해지자고, 더 이상 핫하지 말자고 기합도 넣었다. 때론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한가라는 왠지 모를 열패감에 분노하다, 이윽고 괜찮다며 다컸다며 이렇게 또 어른이 되는거라며 흡족한 미소와 함께 마음의 강같은 평화를 이룩하는 내가 엄청나게 멋진 사람이었다.
(아 방금 생각난 안 좋은 점은 운전하는데 옆에서 귤까주는 사람이 없어 빨간불일 때 후딱 까야 된다는 점 정도. 제주도인데 귤은 포기 못하니까. 암만)
나다운 것도 좋지만 가끔은 원래 내가 아는 나였으면 꿈도 못 꿀 이런 변주를 주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괜찮다. 원래라는 건 없는 거니까.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변하는 거니까. 제법 성숙하고 여유있고 유쾌한 내가 되어야지.
주문을 외우자
제주도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고,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돌아오니 아침 출근길부터 마음이 무겁다. 현실이 주는 무게다. 조바심과 기대는 언제나 모든 것의 적이다. 기대하지 않음에서 오는 기분 좋은 놀람과 고마움을 즐길 때도 됐는데, 그 마저도 또 실망할까봐 딱 멈춰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나 때문에, 자꾸만 받은 만큼만 주자는 생각을 하는 나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언제나처럼 혼자도 멋지게, 괜찮다 괜찮다하며 오늘도 씩씩하게 견디자 되내어 본다. 대자연이 느끼게 해준 평화로움처럼 앞으로 남은 서른 하나의 몇 달이 큰 동요없는 평온한 하루들의 연속이길. 다 잘될꺼야, 하쿠나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