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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01. 2021

끄적임의 역사를 고백하다

담아내기

  초라하기 이를데없는 성과없는 끄적임일 뿐인 이 일을 나는 언제부터 시작한 것일까?

시초는 초등학교 때 그림일기라고 해두자.

비록 자발적으로 행해 것이 아닌 숙제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진 이었지만 이 작업에는 순기능이 있었다. 바로 근면 성실하게 꾸준히 적는 루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게 해준 것이다. 거기에 감정과 생각을 말과 표정 아닌  글로도 토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알게 해주었다.

  중•고교 시절까지 지속적으로 써내려갔을 그 기록들은 이사를 다니거나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중간중간 소멸되었다. 그 무렵의 나를 추측으로만 만날 수 있으니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때에는 스마트폰, PC가 보급되기 이전이었다. 팬시 산업이 태동기를 맞이할 무렵이었고 작고 앙증맞은 자물쇠가 달린 다이어리는 그 당시 잇템이었다.

나는 그 곳에 손품팔이의 방식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듬뿍 쏟아내었다. 속상한 마음은 정화시키고 자랑하고 싶은 기쁜 마음은 배가시켰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중3 무렵에는  절친 한명과 소설을 쓰게 되었다.

물론 이또한 자발적 폐기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내 기억 속 그 작업은 꽤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도였다.

 각자 쓰고 싶은 장르로 나름대로 일주일 분의 글을 채운 뒤 우리는 돌려 읽고 서로 감상을 말하곤 했다.

한국과 세계의 문학 전집과 하이틴 로맨스 삼박자를 갖추어 문어발식 독서를 하던 나는 샬롯 브론테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제인에어>를 모방한 소설을 지어냈다. 거기에 하이틴물에서 본 싱그러운 콩닥스러움을 녹여내고,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의 강인한 여성상을 캐릭터에 결합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저택과 정원 사진까지 잡지에서 오려붙여 표지로 삼았으니 어린 나에겐 그보다 완벽할 순 없었을 것이다.

  표지, 등장인물 소개, 도입부에 치중하느라 내용 전개는 전혀 기억도 안나는 엉망진창 습작이 그렇게 얼렁뚱땅 탄생되다.

  그 후로도 부끄럽고 치기어린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글들은 간헐적이나마 지속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멈추고, 성격 전혀 다른 글을 쓰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철학, 심리학, 여성학, 경제학 등 교양과목을 이수하며 체계적이고 논리정연한 글쓰기가 필요해졌다.

예체능 전공이기에 대입 논술을 면했던 나는 상상과 감성에 기반한 말랑한 글을 읽고 쓰는데 익숙해져 있었기에 이런 종류의 글쓰기가 생소했다. 난해한 과제들을 앞에 두고 난관에 봉착하며 질보다 양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미련할 정도로 애쓴 서툰 글들에 생각보다 후한 학점이 나왔고 그것이 적성이라 착각한 어리석은 나는 패션잡지사에서 일해보겠다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피, 땀, 열정으로 완성된 기사가 실리지 못하는 수모를 겪으며, 한 꼭지 기획을 위해 없는 인맥까지 총동원하며 섭외부터 인터뷰, 기사 작성, 퇴고를 거치는 고단함을 겪으며 얼마나 내가 글쓰기에 무용한 사람인지를.

재미와 흥미, 열정으로 임하는 글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고,  노력을 해도 소용없을거라는 체념이 밀려왔다.

제발로 그 세계를 걸어나오며 다시 원전공으로 회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회사에서도 밥벌이를 위한 보고용 자료 제작이라는 미명하에 글쓰기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꽤나 건조한 시선으로 사적인 감정은 배제한 채 사고가 정제된 형태였다. 오로지 회사의 이윤 창출과 나의 사회적 위치를 한단계 격상시키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의 말을 하고 싶을 때 침묵고 타인의 필요에 의해 상대의 의중을 살피며 요구에 맞춰 정형화된 결과물을 도출해야했다.

  어린 시절, 맞춤법과 문단 들여쓰기도 엉망이고 주어부와 서술부가 전혀 호응을 이루지 못한 자기 만족형 글쓰기와는 결이 달랐다.

  성과 지상주의를 향한 사적인 욕망이 버무려진 회사 맞춤형 자료들을 수없이 양산해내며 제출과 평가라는 시스템에 익숙해졌고 그렇게 풋내를 풍기던 자전적인 글쓰기는 종지부을 찍었다.


  사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익숙한 탓이다.

  그저 빛좋은 창가에 앉아 작가들이 수많은 나날을 고민하고 단어 하나, 방점 하나 엄선해 써내려갔을 귀한 마중물을 접하는 것이 즐겁다.

독서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지면으로 접하는 미지의 세상과 조우하는 기쁨을 얻었다. 그것이 전하는 지식과 지혜를 이렇게 손쉽게 얻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도 함께.

책은 내 생각과 행동을 파고들며 인생의 좌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끄적거려 볼까 기웃거리는 마음을 선사해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엉망진창이지만 마음은 진심을 담았던 열정어린 일기를 다시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이제 더이상 '제출과 평가'를 위한 글쓰기는 필요없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얽매임없이 감정을 표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뛰어나고 화려한 언변의 소유자가 아니기에 수다로 내면의 생각을 공유하기에는 한계치가 있었다. 내면에 꽁꽁 묻어둔 것들이 버거울만큼 그득해지면 분출할 매개체가 필요했고 그것 글쓰기라면 괜찮을듯 싶었다.

그리고 먼 예전 친구와 교환 소설을 나누던 때처럼 미지의 사람들에게 공개해보면 어떨까하는 대담하고 무모한 열망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더구나 그것을 공개한다는 것은 시선을 견디고, 고통을 수용해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은연중 내 신상이 드러날 것이고, 머릿 속 생각까지 열어보이게 될 것이다. 나뿐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낱낱이 해체되어 파헤쳐질 수도 있겠다.

과도한 억측과 쓸데없는 오해, 수습안되는 난처한 상황, 맹목적인 비난과 공격이 다정한 위로와 감, 따스한 격려와 응원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과가 가시적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지레 지칠 수 있다. 즉각적으로 결과물이 표출되지 않는 비생산적인 일이다. 내가 공들인 시간에 비례해 완성도가 올라가는 것도, 시간 투입 대비 양이 느는 것도 아니다.

  이미 의류 한 벌이 나오기까지 드는 무궁한 공을 몸소 겪고 옷은 사입는 것임을 깨닫지 않았던가.  남이 쓴 글을 취사선택해 재미있 읽어주는 것이 나의 정신겅강이 좋을 일이다. 자료 수집과 창작, 생산, 판매, 고객 피드백에 이르는 일련의 정을 경험하는 건 이미 전직으로 충분했다.

또한 마라톤처럼 철저한 나와의 싸움을 지속할 수 있을까? 게을러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집념을 담아 꾹꾹 눌러 완성해낼 수 있을까? 출간이 된다한들 완주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나만 느끼는 허망함을 안게 되진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와 근심, 우환을 구겨넣고 마음이 이끄는대로 끄적이기로 했다.

 기분좋은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며 산책하는 시간, 생계를 위해 가사노동에 들이는 시간, 친구들과 조우하는 시간, 영상 매에 빠지는 시간들을 양보하고 쪼개어 보기로 했다.

  북한산과 눈높이를 맞추 거실에 마련된 길다란 오크 책상 앉았다. '자리의 존중'을 느끼며 사유하고 습작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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