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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Jeung Jun 23. 2018

화실에 갔다

물감 냄새가 났다

꼭 해야만 하는 것들만 하고 사는데도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무거운 짐을 지고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모양인 듯 한데.


물감 냄새, 유화를 그리는 냄새가 폴폴 풍기는 화실에 갔다. 선생님의 캔버스 가장자리를 꼼꼼히 칠했다. 붓을 잡는 건 적어도 2년 전 일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 수다를 떨며 붓을 이리저리 문질렀다. 기분이 이상했다. 머리로 계산하고 또 계산하는 종류의 것들과 나는 정말 맞지 않는구나. 질질 끌리는 듯한 다리가 왜때문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아, 힘들다’ 하면서도 한땀한땀 그림을 그려나가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기더라도, 적어도 질질 끌려가는 인생은 아니어야겠다고.


계산이 되지 않는 것들에 가치를 두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계산되지 않는 더듬이로 느껴지는 그 무언가를 너무 오래 방치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렇게 몇 자라도 적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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