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께 책 읽어드리고, 돈도 벌고
같이 해볼래요?
'학습지원단' 활동으로 매달 안정적인 수익을 받던 것이 사라지니까,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이 있죠? 돈도 벌어 본 사람이, 더 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돈을 벌어 본 경험이 '새로운 돈 벌 기회를 더 빨리 찾아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수익이 0원이었을 때와 비교해 보면, '돈'이란 목적을 향해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죠.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새로운 배울 거리도 찾아보았죠. 우리 지역에서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여러 기관의 홈페이지에 '채용공고'가 있는지 샅샅이 뒤져봤어요.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기회를 찾아다녔더니 다시 한 번 돈 벌 기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한 쌤이 "지나쌤, 우리 같이 경로당 강사 해볼래요?"하고 연락이 왔어요. 이 분은 평생학습 프로그램에서 수강생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고, 결혼 후 경력단절된 상황도 비슷해서 빨리 친해질 수 있었어요. 학습동아리 활동도 같이 했고, 재능기부부터 강사활동까지 함께 성장한 동료쌤이었죠. 학습지원단도 1년 동안 함께 했는데, 둘 다 재도전에 불합격하는 결과를 맞이했답니다. 덕분에 둘이 더 친해지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어요.
그 쌤의 친구분이 대한노인회에 근무 중이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던 친구에게 ‘경로당 강사 채용 공고’를 알려주었어요. 마침 저도 홈페이지에서 그 공고를 봤지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죠. 선뜻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쌤에게서 함께 도전해 보자는 연락이 온 거예요. "나 혼자는 엄두가 안 나요, 쌤이랑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낯선 길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덜 두렵잖아요.
도전할 용기
새로운 돈 벌 기회는 바로 ‘경로당 여가문화 프로그램 강사’였습니다. 아마, '구구팔팔'이란 프로그램으로 더 많이 알려졌을 거예요. 대한노인회 소속으로 다양한 여가문화 강사들이 각 지역 내 경로당을 찾아가 수업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동안 영유아와 초등학생만을 대상으로 수업해 왔던 저에게, 어르신 대상 프로그램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어요. 그럼에도 선뜻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이전에 쌓아둔 다양한 경험 덕분입니다. 특히 재능기부로 참여했던 주간보호센터의 인지놀이 수업은 큰 힘이 되었어요. 그곳에서 어르신들과 소통하며 쌓은 시간이 이번 기회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경로당에는 더 활기차고 자립적인 분들이 계실 테니, 수업 진행도 한층 수월할 거라 기대됐고요.
결혼 후, 시골 마을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제 삶 자체가 이미 어르신들과의 접점을 넓혀준 시간이었어요. 시어머님과 함께 지낸 ‘며느리’로서의 세월도, 자연스럽게 어르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익히게 해 주었답니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활동해 온 강사들로 단단히 자리 잡힌 세계에 초보자가 뛰어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용기내어 도전할 수 있었던 건, 곁에 함께할 든든한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서로 의지하며 신청서를 하나하나 준비했고, 다행히도 나란히 합격해 함께 첫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경로당에서 책놀이 해도 될까요?
경로당 여가문화 프로그램 강사로 지원하기 위해서, 수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강사들은 1년(보통 10개월 활동)을 2~3개월 단위로 나눠 경로당을 순회합니다. 강사들마다 준비한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경로당은 1년에 3~5명의 강사와 3~5개의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되죠.
기존 프로그램에는 요가, 건강체조, 댄스 등 활동적인 수업이 대부분이었고, 만들기와 인지놀이 수업도 있었습니다. 기존 강사들 프로그램과 겹치지 않고, 어르신들이 참여하기 좋은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했죠. '내가 경로당에서 어떤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무슨 수업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계속해서 고민했지만, 결론은 책놀이였어요. 저는 책놀이, 동화구연 같은 ‘이야기 수업’이 익숙한 사람이거든요. 잘하는 걸로 잘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책놀이에 늘 한계를 느꼈고, 주간보호센터 재능기부를 다닐 때도 어르신들께 책을 읽어드리고 싶었어요. '어르신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드리면 좋을까?', '작은 책을 어떻게 보여드리면 효율적일까?' 이런 고민을 예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사실 책놀이 수업을 경로당 여가문화 프로그램으로 제안해도 괜찮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기존에 없던 수업방식이기도 하고,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을지 확신도 없었거든요. 다행히 프로그램 종류에는 큰 제약이 없었고, '책'이라는 주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덕분에 서류 심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강사들의 프로그램과도 겹치지 않아 큰 무리 없이 선정되었고, 대면 심사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어 경로당 여가문화 강사로 채용될 수 있었답니다.
도전, 실버책놀이
'책을 재밌게 잘 읽을 자신은 있는데, 유치하다고 생각하시면 어떡하지?' 실버책놀이는 처음이라 어르신들 반응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책놀이에서 했던 손유희를 박수체조로 변형했고, 어르신들이 공감하고 재밌어하실 만한 전래동화책 위주로 수업계획을 새웠어요.
책놀이라는 낯선 수업을 어르신들이 재밌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첫인상을 강렬하게 남겨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귀쟁이 며느리'를 첫 번째 책으로 선택했어요. 경로당에 계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어머님들이시고, '시집살이'와 '며느리'라는 키워드는 어머님들이 쉽게 공감하실 내용이었죠. 그리고 책 속 사투리로 태풍 같은 방귀장면을 아주 신나게 재연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방귀쟁이 며느리'를 읽고, '그림책이 참 재밌네.'라는 경험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긴장된 첫 수업. 낯선 어르신들을 처음 마주하니 ‘진짜 시작이구나!’하고 실감이 났어요. 어린이 책놀이 수업은 수업 전엔 떨리다가도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어르신 수업은 그 반대였어요. 눈을 마주칠 때마다 오히려 긴장이 더 심해지더라고요.
분위기를 풀기 위해 신나는 음악에 맞춰 박수체조로 몸을 가볍게 풀었어요. 흥이 오른 상태에서 준비한 전래동화 그림책을 동화구연으로 들려드렸죠. 익숙한 옛이야기였지만, 제가 목소리에 변화를 주며 신나게 읽어드리니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고 손뼉이 이어졌어요. 경로당이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죠.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으니 저도 덩달아 더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호응이 클수록 에너지가 샘솟고, 애드립도 팍팍 튀어나왔죠. 책을 읽는 내내 무척 신이 났어요. '아, 그래! 이거야 이거! 어떻게, 너무 재밌어!꺄~'
결국, 무슨 수업을 하더라도 강사 스스로가 재밌게, 즐겁게, 자신 있게 해야 듣는 사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도전했습니다. 책놀이, 이야기 나누기, 동화구연. 제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요.
책은 TV 화면으로 커다랗게 보여드리고, 매회 2권의 책을 읽습니다. 책 읽기 전, 책 중간, 책 다 읽고 마무리할 때 3번 정도 신나는 노래에 맞춰 박수체조를 하면 1시간 수업이 끝나요.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어르신들이 '혼을 쏙 빼놓고 가네~'라고 하신 적도 있었죠.
이야기 선생님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엔 '할머니 옛날이야기'가 유튜브만큼이나 재밌던 시절이 있었죠. 이 순간만큼은 제가 어르신들의 ‘이야기 할머니’가 된 기분이었어요. 어르신들이 동심으로,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어요. '책놀이하길 정말 잘했다!' 싶을 만큼 저 스스로도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나는 책 보다 선생님이 더 재밌어!" 하시는 어르신도 계셨어요. 책화면을 TV에 커다랗게 띄워놓고 책을 읽어드리는데, 어르신들은 TV대신 혼신의 연기(?)를 하는 저만 쳐다보시고 계신 거였어요. 손녀뻘 되는 강사가 온몸으로 웃기고 있으니까, 그게 너무 재밌으셨데요.
어떤 어르신은, 수업 시간에 맞춰 학교 끝난 손녀딸을 경로당에 데려오셨어요. "선생님, 우리 손녀딸도 이야기 들려주고 싶어서 데려왔어요." 하셨죠. 그때, 진짜 감동이 찡해서 더 열심히 연기하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은 깨수확철이라 어르신들이 바쁜 때였는데, 수업시간에 전원 참석하신 거예요. "선생님 이야기 들으려고, 깨 털다 말고 왔어!" 하시는데 너무 감동이었죠. 어떤 분은 오늘 수업인지 모르고 병원 가려고 보니까, 수업날이어서 병원 안 가고 발길 돌려 경로당 왔다는 분도 계셨어요. "병원은 내일 가면 되지 뭐!" 하시는데 너무 감사했어요.
프로그램이 재미없으면, 다음 강사는 언제 바뀌나 기다리는 경로당도 있습니다. 운동 원하시는 경로당에서는 박수체조만으론 아쉬워하는 곳도 있었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더 열심히 책을 읽었어요. 대체로 반응이 좋았고, 즐거워하셔서 유쾌한 시간이었답니다. "선생님, 다음에 또 오시면 안 돼요?" 하시며 아쉬워해 주시면,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경로당수업의 장점
경로당 강사로 활동하면서 느낀 장단점이 많습니다. 먼저, 일반 강사활동에 비해 높은 수익입니다. 일반 강사비가 3~4만 원일 때, 경로당 강사비는 5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었어요. (강사비는 지역마다, 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강사 입장에서는 아주 큰 장점이죠. 1년 단위로 운영되는 사업이라 일정이 안정적이고 수익이 꾸준한 것도 참 좋아요.
할머니들과 소통하는 것도 즐거움이에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외할머니를 참 좋아했어요. 막연히 할머니랑 존재에 대한 애정도 많았고요.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생활했고, 결혼 후에는 시어머님과 함께 살며 어른을 대하는 건 편하고 익숙했어요. 덕분에 어느 동네를 가서 어른들을 만나도 두려움이 없었죠. 아이 둘 낳고 아줌마의 파워도 더해져 뻔뻔함은 천하무적이 되었습니다.
어르신들과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정을 쌓는 시간이 참 따뜻하고 좋았어요. 갈 때마다 옥수수나 고구마 같은 것도 쪄놓고 기다리시고, 여름엔 수박이나 과일도 많이 얻어먹었어요. 처음 보는 강사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셔서 질문도 많이 하십니다. 부산에서 시골로 시집와서 농사짓고 시어머님이랑 같이 살다가 분가했다고 말씀드리면, 다들 신기해하시면서 '기특하다'라고 말해주셨어요. 뭔가 대단한 걸 한 건 아니지만, 할머님들의 칭찬 한마디에 자존감이 저절로 올라갔어요.
경로당수업의 단점
한편으론 어르신을 상대하는 게, 경로당 강사로서 가장 큰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연령대가 높다 보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늘 조심스럽죠.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깜빡하실 때가 많아서, 수업 있는 날 미리 연락드리고 수업참여 독려하는 것도 하나의 업무가 됩니다.
농촌도시이다 보니, 농사철에는 어르신들도 무척 바쁘십니다. 농번기에는 어르신들 경로당 출석률이 뚝 떨어지기도 해요. 날씨의 영향도 큽니다. 비가 오면 집 밖으로 나오기 싫어하실 때도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이 수업에 참여할만한 확실한 동기를 만들어 드려야 해요. 수업 갔다가 어르신들이 안 계시면, 수업 못 하고 그냥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업을 못하면 왔다 갔다 고생만 하고, 강사비도 못 받죠.
하루에 2~3군데 경로당을 돌아다니는데, 거리도 꽤 멀고 체력적으로도 힘이 듭니다. 처음 가는 낯선 동네는 경로당을 찾지 못해 헤맬 때도 있어요. 학습지원단도 서류 작업이 많은 편이었는데, 경로당여가문화강사도 작성할 서류가 은근히 많았습니다. 어떤 일이든 단점은 있지만, ‘내가 진짜 필요한 곳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찾는다면 수많은 단점도 극복할 수 있어요.
실버세대를 위한 강사를 꿈꾼다면?
어르신, 실버세대를 위한 강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입니다. 수업 대상을 모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수업 대상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강사가 찾아갑니다. 주로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요양병원 등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곳에서 프로그램이 필요해 직접 강사를 채용하거나, 대한노인회/보건소/평생학습센터 등 공공기관에서 강사를 모집하여 지원이 필요한 경로당에 강사를 파견하기도 합니다.
실버세대를 위한 수업을 하려면, 수업 대상인 실버세대가 원하는 수업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변 실버세대 프로그램을 보면, 1순위가 운동 프로그램이고 2순위가 여가문화 프로그램(취미, 교양 등)인 것 같습니다. 실버세대를 대상으로 하기 위한 별도의 자격증을 취득해도 좋겠지만, 자격증보다는 경력과 열정이 중요할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집중하실 수 있는 강사의 목소리, 강의태도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을 많이 만나보고, 대화도 해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꼭 필요할 것 같아요! 너무 막연히 편하게 대해도 버릇없어 보이고, 너무 예의 차려도 거리감 느껴지고, 적당히는 참 쉬운듯 어렵습니다.
수업준비가 되었다면, 이와 관련된 기관의 채용공고와 경로당 지원사업 소식에 관심 갖고 늘 지켜보며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늘 기회가 가까이 와서 '똑똑!' 문을 두드리더라고요.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꽉!' 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1년의 경험으로 레벨업!
학습지원단 탈락이라는 작은 실패를 겪고 나서, 저는 ‘경로당 여가문화 프로그램 강사’라는 더 좋은 기회를 만났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대상, 다른 환경, 다른 수업이지만, 나답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수업방식으로 강사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실버책놀이 수업 준비를 위해서, 도서관에 더 자주 다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활동하는 1년 동안 그림책도 엄청 많이 읽었어요. 도서관에 자주 가니까, 독서할 기회도 더 많이 생겨났고 글쓰기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이란 공간에서 삶에 여유를 찾을 기회도 만날 수 있었죠.
수업이 점점 자리를 잡고 어르신들과 정이 들어갈 무렵, 내년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실은 참 냉정합니다. 프로그램 예산이 줄어들면서, 기존 강사채용을 감소시켰어요. 순간, 멍하더라고요. 재밌었고, 더 잘하고 싶었는데 1년 만에 또다시 활동이 끝났습니다. 너무 아쉬웠지만, 이 또한 언젠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질 거라고 믿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섰죠!
#프로배움러 써니지나의 브런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