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사연으로 소개된 이야기
전남친이자 현남편을 처음 만난 건 (한국나이로) 26살이던 12월이었다. 25살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5년 만이었다. 취업 때문에 슬슬 스트레스를 받던 중, 부산 외곽에 있는 중소기업의 마케팅부 채용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출퇴근 시간을 모두 합쳐 하루 4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힘들거라 예상은 됐지만, 빨리 취업해서 돈 벌고 싶다는 생각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광고마케팅 쪽에 관심이 있던 나의 진로와도 맞았다. 사실, 다른 회사를 더 알아보기도 지쳐서 출근할 수 있냐는 말에 냉큼 출근하기로 했다.
3개월 수습기간 동안은 월급의 70%만 준다고 했다. 인턴이라 생각하고, 오케이! 그런데 그나마도 회사 자금난이 심해져서 월급이 밀렸다. 떼먹는 거 아니고 좀 늦게 준다는데 뭐, 오케이! 그렇게 부모님의 걱정근심에도 3개월을 버티고 적응했다.
직장인이 되고, 가장 힘든 건 역시나 출퇴근이었다. 지하철+버스+카풀 또는 택시의 조합. 출근시간보다 퇴근시간은 더 험난했다. 하지만 자취생활이나, 자차 구입은 선택지에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소심한 성격에 도전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덕분에 직장생활 5년 만에 나는 1억을 모았다.
나는 비실비실한 체력에 늘 집순이었다. 직장인이 되고 체력고갈이 더 심해지자, 주말은 무조건 집콕 방콕을 했다. 에너지도 없었지만, 딱히 만날 사람도 없었다. 회사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주말 내내 집에서 미드만 보는 일상이 들통났다. 그 뒤로 나는 사무실에서 '건어물녀'로 소문이 났다.
아직 젊은 나이에(회사에서 막내였다), 남자친구도 없고, 주말에 집에만 있다니까, 불쌍하게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삶인데,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회사에 거의 매일 방문하는 우체부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우체부 아저씨는 식당 아주머니의 배려로 회사식당에서 점심을 자주 먹었다. 회사 막내들이었던 나와 입사동기 언니는, 모든 직원들의 식사가 끝날 때쯤 마지막으로 밥을 먹었다. 식당에서 우체부 아저씨와 자주 마주치다 보니, 인사도 나누고 밥도 같이 먹으며 친해졌다.
오지랖이 태평양이던 동기 언니가, 건어물녀인 나를 위해 (본인이 더 신나서) 여기저기 소개팅을 문의하고 다녔다. 우체부 아저씨에게도 소개팅 이야기를 꺼낸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우체부 아저씨는 회사 바로 옆 군부대에 총각들이 많으니 소개해 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내가 근무한 곳은 회사의 생산공장이자, 본사 사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시골 외곽에 자리하여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진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군부대가 있었다. 2층 옥상에서 군부대 입구가 훤히 보이지만, 군인들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곳은 더 멀리 있어서 실제로 군인을 본 적은 없었다.
하루는 우체부 아저씨가 오셔서 갑자기 내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군부대에 소개팅해달라는 총각이 있다고, 연락처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나는 진심을 다해 사양의 손사래를 쳤지만, 오지라퍼 동기언니가 종이에 내 전화번호를 휘갈겨 써서 냉큼 주었다. 우체부 아저씨는 신나게 내 연락처를 들고 사라졌다.
잠시 후, 우체부 아저씨는 메모지를 들고 다시 회사로 오셨다. 옆 부대 군인 아저씨 연락처였다. "소지섭 닮은 (뻥이다) 총각인데, 이 번호로 연락 올 거니까 꼭 받아요."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장문의 자기소개글이었다.
나중에 전남친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우체부 아저씨가 뜬금없이 연락처를 갖고 왔단다. 옆 공장에 김연아 닮은 (뻥이다) 아가씨가 있다고. 다들 별로 관심이 없어서 (대부분 여자친구가 있었다), 심심했던 전남친에게까지 순서가 왔다고 한다. 자기는 군대 있을 때 소개팅을 참 많이 했는데, 내가 15번째 소개팅녀였다.
옆공장 아가씨라고 해서 생산직인줄 알았단다. 여자들끼리 빈말로 이쁘다고 칭찬해 줄 때, 무쌍이란 공통점 하나로 김연아 닮았다는 얘길 자주 들었다. 전남친은 그 말에 낚였다. 처음 만난 날, 전남친이 말했다. "김연아는 어딨죠?" 나는 되물었다. "소지섭은 언제 오나요?" 우체부 아저씨의 오작교 역할 덕분에, 뜬금없는 남녀가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연인이 되었다.
전남친은 직업 군인이었다. 남자친구의 직장이 바로 옆건물(?)이라 퇴근 후 만나기 좋았다. 우린 동갑이었고, 첫 만남부터 말도 잘 통하고 편했다.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전남친이 폭탄을 던졌다. 곧 전역한다고. 전역하고 고향인 충북으로 가서 취업할 거라고 했다.
사귄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헤어짐이 예정되었다. '아니, 그런 말은 사귀기 전에 하던가! 애초에 한 달 뒤에 멀리 갈 사람이면, 소개팅을 하지 말았어야지! 말이야 방구야!'
몸이 멀어지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다. 오랜만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났지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연애라 미련은 없었다. 다시 건어물녀 생활로 돌아가 미드나 실컷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남친은 4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고향으로 갔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커플링을 사들고 부산에 왔다. '뭐지, 이제 우리 헤어지는 거 아니었나?'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친구랑 술 먹다가 완전 취해서 뭐에 꽂힌 듯이 금방에 들어가 반지를 샀단다. 그렇게 나는 커플링에 낚였다. 우리는 3년 반 동안 300km가 넘는 거리를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도 가끔씩 서로에게 짜증 났을 때, 꺼내는 레퍼토리가 있다. 남편은 '그때 왜 안 헤어지고 나 따라왔어?'라고 말하고, 나는 '그때 반지는 왜 사 왔는데? 왜!!'라고 말한다.
한 달에 1번, 많이 보면 2달에 3번 정도 만났다. 장거리연애는 나에게 단점보다 장점이 많았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안정감과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편안함이 좋았다. 둘 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지역으로 갈 때면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함께 만났다. 서로의 가족에게 점점 스며드는 연애를 했다.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느꼈다. 되돌아보면 취업부터 소개팅, 장거리연애에서 결혼까지 모든 과정이 온 우주의 에너지가 마치 우리의 인연을 계획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연애에서 결혼까지'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마다 신기해했다. 우리 이야기가 조금 특별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 너무 갖고 싶었던 로봇청소기를 선물로 주는 방송이었다. 'MBC 여성시대'에 우리 이야기가 소개되었고, 나는 로봇청소기를 득템 했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온다. -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