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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하고 싶은 게 많을까?

딴짓 질량 보존의 법칙

예전에 적어둔 글을 정리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미니멀하게 살고 있다. 덜어내고 비우면 삶의 목표에 더 곧게 나아갈 수 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프로배움러

독서치료 할 때였다. 나의 현재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할 때였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프로배움러'에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고 그래서 늘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여기에서도 시간이 등장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배부른 고민이었다.


결혼 전만 해도 좋아하는 일을 밤새 할 만큼 열정이 넘치긴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어쩔 줄 몰라하게 된 건 육아전쟁에서 자유를 찾은 결혼 후 5년이 지났을 때다. 두 녀석이 어린이집에 등원을 하고 오롯이 혼자만의 자유시간이 무려 6시간이나 생겼다.


다행히 둘째 임신 중이던 6개월 동안 '제한된 자유'를 살았다. 덕분에 이것저것 도전해 보고 자유의 맛을 보았다. 그래서 더 애가 탔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서둘러 도서관에 가고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교육을 듣고 책을 읽고 봉사활동, 재능기부를 다녔다.


배우고, 써먹으니 배울 것들이 더 많이 보였다. 써먹을 일도 더 많이 생겼다. 시간강박이 있어서 더 열심히 부지런히 살려고 엄청나게 최선을 다했다.


나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보람차기도 하고 만족스러웠다. 심리상담 책에서 많이 읽었던 자기 효능감이 막 샘솟았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도가 지나치다.



'왜?'라는 궁금증

재미로 신나서 하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남편에게 무관심해지기도 했다. 남편이 말했다, "재미로 취미로 한다면서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 그럴 거면 하지 마!" 섭섭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었다. 난 왜 이렇게 쫓기듯 살고 있는 걸까. 질문이 생겼다.


그 질문의 답을 의외의 주제에서 찾았다. 독서치료 수업 중 나의 어린 시절, 나의 가족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독서치료를 진행해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참가자 모두 속마음을 진솔하게 말할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용기가 생겼다. 평소 잘 표현하지 않았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말하는 순간에도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그때 나는 이런 기분이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말하면서 어렴풋이 정답이 보였다.



울 언니

나에겐 3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어렸을 적부터 똑똑했다. 초중고 반장을 도맡아 했다. 공부도 잘했다. 늘 상위권이었다. 그런 언니가 자랑스러우면서 부담스러웠다.


언니는 똑 부러지는 맏딸 역할이고, 나는 귀염둥이 막내 역할이었다. 공부가 인생의 목표였던 그 시절 각자 이쁨 받는 딸이었지만 공부얘기만 나오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조용히 살았다.


교-집 만 조용히 반복했다. 학교 끝나면 집에서 만화책 읽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살았다.


어렸을 적엔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다. 집에서만 까불까불 막내였지, 밖에 나가면 소심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친한 친구 1~2명과 교실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아이였다.


반면 언니는 밖에서도 자기주장 뚜렷하고 대범했다. 친구도 많고 활발한 성격이라 주도해 나가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을 예로 들자면, 언니는 연극동아리였고 나는 만화동아리였다.


언니와 같은 초중고를 다녔다. 3살 터울이라 언니가 졸업하면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갔다. 공부 잘하고 똑 부러지는 언니는 학교에서 유명했다. 학기 초에 선생님들 '느그 언니가 OOO이?'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내가 그럭저럭 괜찮은 지방의 대학교에 그럭저럭 괜찮은 회사 다녔다면, 우리 언니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좋은 대학에 우리나라 최고로 여기는 회사에 다녔다. 대놓고 비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언니가 자랑스러웠지만 부담스러웠다...



독립하기

내가 언니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돈을 벌기 시작하고부터였다. 돈을 벌었고 열심히 모았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월급도 많이 늘었다. 그때쯤 언니는 직장생활을 중단하고 2년 동안 유학을 갔다. 그때 1년은 부모님이 학비를 지원하고, 1년은 내가 보탰다. 유치하지만 그 이후부터 언니에게 조금 당당해진 기분이 들었다.


결혼을 했다. 결론적으로 자유는 아니었지만 부모님 곁을, 내 고향 부산 곁을 떠났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가족과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못 해본 거, 참아왔던걸 다 해보고 싶어졌다.



MBTI

MBTI가 한참 유행을 할 때였다. 테스트를 해보니 나는 ENFJ 나왔다. 처음 해본 결과였지만 어렸을 적부터 스스로 내성적이라 믿고 살았는데 I가 아니라 E가 나온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주변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고 반응했다. 나는 이해 안 되는 결과였다.


신기한 건 언니도 MBTI가 나랑 똑같은 게 나왔단다. 언니랑 나는 정반대의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똑같은 MBTI가 나온 게 신기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나는 무엇 때문에, 왜 그렇게 주눅 들어 살았을까.



딴짓보존의 법칙

독서치료를 할 때, 이 이야기를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다. "어렸을 때 주눅 들어해 보지 못한 것들이 성인이 되고 안정된 생활이 가능해져서 그 욕구가 다시 나온 것아닐까요?" 하고. 머리가 멍 해졌다. 이렇게 명쾌한 답을 찾다니.


유레카! 질량 보존의 법칙!

어렸을 적에 사고 안 치면 다 커서 사고친다던지, 회사에서 미친놈을 피해 이직하니까 더 심한 또라이를 만났다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 있다. 언젠가 부족한 질량을 채우게 되어 있다는 그런 법칙. 인터넷에서 이를 풍자하여 '지랄 총량의 법칙', '또라이 보존의 법칙' 등 다양한 말이 생겨났다.


그렇게 나도 '딴짓 총량 보존의 법칙'에 걸다. 어렸을 적 못 채웠던 호기심과 활동량을 뒤늦게 채우는 중이다. 봉인되어 있던 학창 시절 나의 열정들이 결혼 후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갑자기 에너지가 폭발했고 마음은 조급한데 몸은 늙어서(?) 안 따라주니 늘 초조했다는 결론이다.

 

나도 내가 참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럴까? 왜 이렇게까지 할까? 왜 늘 쫓기는 기분일까? 답을 찾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유를 알고 나니 천천히 여유를 가져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고민의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답을  찾은 것만으로 유쾌했다.


요즘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보고 싶어서 생각이 많아진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게 참 많지만 예전처럼 조급하지 않다. 하고 싶은 게 많다는 지금 내가 사는 게 편하고 재밌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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