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의 오늘 1.
"띠리릭, 띠리릭,......"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오른손가락의 반사작용 덕분에 알람을 쉽게 끈다.
발을 더듬어 나무 토막을 찾아 종아리에 댄다. 나무 토박의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발끝을 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한다. 이렇게 종일 서서 일하는 시간을 위한 10분간의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무릎을 구부려 엎드리며 팔을 쭉 뻗으며 쉼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슬슬 잠이 깬다. 눈을 감은 채 앉아서 목 운동을 하고, 팔을 뻗어 옆구리를 늘린다.
밤의 길이가 길어진 새벽 5시는 어둡다. 마루로 나와 불을 켜고 목욕탕으로 가서 세수를 한다. 전혀 새벽형 인간이 아닌 내가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한 지 벌써 6년이 되어 간다. 처음엔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저녁형 인간에겐 고역이었다. 일찍 자는 것을 포기하고, 잠이 올 때까지 집안일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했다. 유투브의 동영상을 즐겨보게 되면서 안 좋은 습관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잠자리에 누워서 영상을 보니 오려던 잠이 도망갔다. 요즘은 잠이 오면 얼른 침대에 눕는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잠이 많아졌다. 대신 잠의 질이 떨어진 것을 얼마 전부터 느낀다.
물로 입을 헹구어 뱉고, 물 한 컵을 마신다. 하루 중 첫 번째로 기분 좋은 시간이다. 내가 깨어나서 오늘을 맞이했음을 확인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고 나선 아침과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되었다.
옷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선다. 새벽 차가운 공기가 점퍼 속을 파고들기 전에 지퍼를 올린다. 신호등이 바뀌면 새벽을 질주하는 차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예전엔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핸드폰의 단축번호 1번을 눌렀었는데 이제는 못한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버스를 타러 가면서 통화를 했던 그 길이다. 1년여를 멀리 돌아서 가기도 했지만 결국 빠른 길을 포기하지 못한 길을 걸으며 친정아버지를 생각한다. 삶에 대한 애착이 컸던 만큼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슬픔 그 자체였다. 오랜 투병생활의 끝은 앙상한 뼈를 남긴 채 눈을 감는 것이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윤하의 ‘오르트 구름’이 흘러나온다. 아버지는 하늘 어딘가에서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있겠지.
버스 안에는 새벽을 가르며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랜 시간을 타고 온 사람들이다. 두 번째로 기분이 좋은 시간이다. 부지런한 사람들 틈에 내가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이 나이에 일을 하러 간다는 것도, 이 시간에 일을 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싣고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앞으로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창밖으로 새벽 어스름이 걷히는 것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