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을 즐기자!

-또 하나의 오늘 2.

by 사랑비

거리상 멀진 않지만 교통편이 좋지 않은 곳이라 출근을 앞두고 걱정이 앞섰다. 지금 일하는 곳을 벗어나고 싶은 맘이 커서 옮긴다고는 했지만 위치를 검색해 보고 나니 망설여졌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 타야 한다. 기존의 일터가 집에서 버스 두 정거장 거리라 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 걸어오기도 한 것에 비하면 귀찮은 거리다.

누군가를 따라서 일터를 옮기는 건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 따라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가장 큰 이유가 보기 싫은 사람을 피하고 싶은 거였다. 사람을 피해서 옮기는 이유가 좀 찌질해 보이니 굳이 다른 이유를 덧붙이자면 새로운 환경을 만나고 싶어서다.

이 일을 한 지 5년이 넘었다. 앉아서 책을 보거나 모니터를 보던 일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활동적인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막연함을 실천으로 옮긴 결과다.

출근 걱정을 하던 나에게 출근 시간을 1시간 당기는 조건으로 택시비 지원 제의가 들어왔다. 1시간 일찍 출근, 1시간 일찍 퇴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출근 거리가 늘어난 만큼 일찍 일어나야 했으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카카오 택시를 타고 10분이 채 걸리지 않은 거리가 지하철을 이용하면 30분이 더 걸린다. 낮 시간이 아닌 새벽이라 택시는 더 빨리 달려 나를 내려준다.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갖고 간 삶은 계란 2개를 먹는다. 출근 시간 전까지 20분 정도의 여유시간.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일어날 일들을 짐작해 본다.

여러 사람이 일하는 곳,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일하는 곳,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역시 다양하다. 새벽을 가르며 찾는 사람들은 주로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거나 일찍 퇴근하는 사람들이다.

어둠이 걷히고 출근 시간이 가까워 지면 나를 비롯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준비를 제대로 했는지 빠뜨린 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마치 달리기 경주의 출발선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오가며 일을 하고 나면 어느새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끝난다. 다음은 점심시간 준비를 해야 한다. 교대로 아점을 먹는다. 아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점심을 위한 체력보충이다.

점심은 오후 12시 전부터 시작된다. 오후 1시가 넘으면 잠깐 소강상태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뒤늦은 점심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오후 2시. 점심시간이 끝난다.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사라지면 공기부터 다르다. 참았던 숨을 몰아서 쉰다. 큰 숨을 쉬고 나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 못 치운 컵들, 채우지 못한 소금 통, 닦아야 하는 쟁반......

전쟁을 치르고 난 느낌이라고 하면 오버일까.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 남기고 간 흔적을 치운다. 다음 출근자들이 오면 인수인계를 해야 하니 청소를 하고, 비워진 재료들을 채운다. 기운을 빼고 나서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건 정말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정리를 한다.

나이 어린 근무자들을 보면 ‘역시 젊음이 좋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때론 꾀를 부리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바쁜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면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내가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다.

“젊다는 건 뭔 든 도전할 수 있고, 뭐든 되어 볼 수 있다는 거란다. 나도 잘 몰랐어. 너희 나이에는. 아무도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어. 그래서 나라도 너희들한테 얘기를 해주고 싶어.”

새벽을 가르며 향하는 일터에서 너희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상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