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잇길
얼마 전 3·1절을 맞아 애국독립지사들의 흑백사진이 컬러사진으로 복원되었다. 그 가운데 유관순 열사의 모습은 특히나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1902년~1920년이라는 짧디 짧은 생애 때문이기도 하고, 1919년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 와중에 부모님마저 일본군의 총칼에 사망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당시 공식 사망원인이 장기손상, 방광파열일 정도로 일제의 잔인무도한 고문을 받아야 했다. 올 3·1절은 유관순 열사가 잠들어 있는 무덤에 찾아가 참배를 하고 싶었다. 그의 고향인 충남 천안에 묻혀 있을까 알아봤더니, 뜻밖에도 서울시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해 있었다 - 공원 안내 누리집 : https://manguripark.or.kr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자연 속에서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10년 전만 해도 망우리 공동묘지라 불렸던 곳으로, 1930년대 경성(서울)의 인구가 급속히 팽창하자 일제가 공동묘지를 조성했다. 유관순 열사 외에도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천연두를 퇴치한 지석영,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조봉암 등 50여 명의 근현대사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역사공원 사잇길을 따라 걷다보면 만날 수 있다.
* 주요 여행길 : 중랑망우공간 - 망우산 순환 둘레길 - 유관순·한용운·방정환·지석영·조봉암·이중섭의 묘 - 중랑망우공간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는 중랑망우공간
공동묘지가 들어선 망우산(忘憂山)은 '근심을 잊는다'는 뜻이 담긴 곳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자신이 묻힐 동구릉을 둘러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고개를 넘으며 “이제야 근심을 잊었구나”라는 말을 남기면서 이름을 얻었고, 망우리라는 지명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예전 모두가 혐오스럽게 여겼던 망우리 공동묘지는 이제 울창한 숲과 유명 인사들의 묘, 멋진 전망이 어우러진 공원으로 시민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들머리에서 시민들을 맞이하는 중랑망우공간은 방문자센터로 기획전시실과 카페,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망우산 자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의 경사면을 이용해 낮고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층은 120m 길이의 긴 테라스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가까이는 망우산 자락 묘지들과 능선을 보고, 멀리는 남산부터 불암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
건물 이름을 '공간'이라고 한 이유가 느껴지는 건축물이다. 인상적인 얼굴 조각상이 눈에 띄는데 이곳에 묻혀있는 조각가 권진규의 작품이다.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 미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예술가다.
중랑망우공간 앞에서 망우산 허리둘레를 따라 ‘사잇길’ 산책로가 길게 나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역사문화 인물들의 묘역을 둘러 볼 수 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둥근 무덤이 봉긋 솟아 있었다. 이어지는 용마산까지 산행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등 봄맞이 나온 시민들이 오간다. 서울 시내, 수락산, 한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사잇길을 사부작사부작 걸었더니 겨우내 움츠려 굳었던 몸이 다 풀렸다.
3·1절마다 찾게 되는 유관순, 한용운 묘
망우역사문화공원은 한국인 누구나 꼭 가 봐야 할 곳이지 싶다. 독립운동가·시인·소설가·화가·가수 등 우리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분들이 ‘근심을 잊고(忘憂)’ 잠들어 있다. 숲길을 천천히 걷는 동안 이들의 연보비와 묘역을 차례로 지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다 돌아가신 분들의 묘비 앞에선 내딛는 걸음걸음이 뜻 깊게 다가온다. 연보비에 적힌 글귀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며 걸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책 <그와 나 사이를 걷다> 등 여러 책으로 출간될 정도로 사람과 역사의 이야기를 많이 품은 곳이다.
사잇길에서 맨 처음 만나는 묘역은 유관순 합장묘다. 이곳은 유관순 열사가 묻혀 있는 곳으로, 남녀노소 시민들이 참배를 하고 있었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후 '이태원 공동묘지'에 무연고 묘로 묻히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돌아가셨고 오빠는 투옥된 데다 유관순 열사의 후손이 없어서였다.
이후 1936년 이태원 공동묘지를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면서 무연고 묘들을 화장하여 합동묘와 위령비를 세웠는데, 그 무연고 묘 속에 유관순 열사도 있었던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넋을 이렇게밖에 기릴 수 없게 되다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중랑구에서는 매년 유관순 열사의 기일인 9월 28일에 추모식을 열고 있다고 한다. 아우내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는 유관순 열사는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무자비한 고문을 받던 중 1920년 1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함께 수감되어 있던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관순은 감방 안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전한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일본군의 총칼에 잃었으니 오죽했을까···
격동기의 스토리가 담긴 가치있는 문화유산
한용운 선생 무덤 곁에는 부인의 묘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외치며 '절은 산에서 내려와야 하고 민족은 장래를 위해 1억의 인구를 가져야 한다'며 결혼한 승려인 대처승을 주장하고 스스로 실천했다. 중랑망우공간에 있는 3·1 운동 후 투옥된 선생의 머그샷 사진엔 일제에 대한 저항심으로 가득하다.
공원에는 한용운과 장정환,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 9인의 무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1959년 이승만 정권 당시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의 비석 뒷면에는 아무런 글이 없이 ‘침묵의 소리’를 전하고 있다.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은 조봉암 재심사건 선고 공판에서 전원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어린이의 친구 소파 방정환의 묘는 고인돌 형식으로 정겹기만 하다. ‘애놈’, ‘애새끼’ 등으로 불렸다는 소년 소녀들에게 ‘어린이’라는 존칭을 만들었으며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19세기 말 일본으로 건너가 천연두 예방 백신 채집법을 배워 종두법을 전파하고 우두국(천연두 백신 접종소)를 설치한 지석영 선생의 무덤도 빼놓을 수 없다.
국민화가이자 가슴 아픈 사연이 많은 화가 이중섭(1916~56)의 무덤에도 발길이 머무른다. 제주 서귀포에 이중섭 미술관, 부산 범일동에 이중섭 거리가 조성될 정도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묘소는 의외로 조촐하다. 아담한 묘비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두 아이가 꼭 부둥켜안고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어 마음을 짠하게 한다.
공원을 둘러보면 묘지라기보다 야외 역사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다양하고 뛰어난 근현대사 인물들이 한 자리에 있는 건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묘지가 두 군데(스웨덴 우드랜드 묘지공원, 마카오 신교도 묘지)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도 세계문화유산에 충분히 등재될 만한 가치가 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