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섬진강변
섬진강은 우리나라 5대강에 드는 긴 강이다. 국가하천(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 가운데 수질이 가장 좋은 물줄기로 강변풍경 또한 제일 아름답다. 그러다보니 섬진강변 여행은 자전거,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의 ‘버킷 리스트’에 꼭 들어가는 곳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보듬으며 구불구불 흘러가는 섬진강은 임실, 곡성, 구례, 하동, 광양 등 많은 강변마을을 지난다. 매년 봄 노란색 상큼한 꽃을 피우면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동네 구례는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섬진강 길이 있어 자전거 여행자에게 고향 삼고 싶은 곳이다.
* 주요 여행길 : 구례구역 - 구례 오일장 - 섬진강 대나무숲길 - 섬진강변 - 섬진강어류생태관 (약 22km)
섬진강변에 내려주는 남도해양열차
섬진강변 자전거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카카오 T' 어플을 이용해 카카오 자전거를 대여한다. 시간당 천원으로 저렴하고 구례구역, 구례읍 등 곳곳에 대여소가 있다. 내 애마 자전거를 코레일의 관광열차 ‘남도해양열차(S-train)’에 싣고 섬진강으로 떠나도 된다. 열차 안에 자전거 거치대가 마련돼 있다.
서울-수원-천안-대전-익산-남원-곡성-구례구-순천-여수 등을 지난다. 좌석의 공간이 넓어 편안하고 의자 옆에 전기 콘센트가 설치돼 있다. 남도해양열차내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유석이 많다. 노트북 등을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 자리, 여러 명이 모여 앉을 수 있는 카페석을 예약 없이 쓸 수 있다.
자전거 운송·보관비용은 따로 없다. 지붕에 기와집을 얹은 정다운 구례구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섬진강이 흐른다. 역 앞에서부터 길 바닥에 파란 줄이 그어져 있는데 바로 섬진강 자전거길 표시다. 파란색 줄을 따라 가면 길을 잃지 않고 섬진강변을 따라 구례, 하동을 지나 광양까지 갈 수 있다.
섬진강가의 큰 장터 구례 오일장
지붕에 기와를 인 아담한 구례구역에서 내린 후, 구례읍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구례시장에 5일마다 큰 시장이 열린다 (매 3일과 8일). 구례는 지리산 일대에서 봄소식이 가장 빠르게 닿는 곳으로 오일장날이면 동네 전체가 북적거린다.
구례버스터미널 가까이에서부터 차도와 인도를 걸쳐서 구례읍 한가운데까지 장터가 넓게 펼쳐져 있다. 섬진강가에서 가장 큰 장터지 싶다. 과거 영호남 물물교류의 장소였다는 장터답게 없는 것이 없다. 철공소라는 간판을 단 대장간에서 ‘깡깡’ 경쾌한 망치질 소리가 들려오고, 여러 대의 까만 쇠통이 돌아가고 있는 뻥튀기 가게에선 내내 고소한 곡물냄새가 흘러나온다.
장날에만 문을 연다는 여러 뻥튀기 가게의 주인장은 다른 장터와 달리 대부분 중년 여성이라 좀 놀랐다. 수 십 년 경력의 뻥튀기 장수 아주머니는 곡물 외에 말린 나물과 약재들도 능숙하게 튀겨낸다.
이웃동네 경남 하동 화개장터가 관광지 시장이라면, 구례시장은 지리산과 섬진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장날에 만나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주민들의 정답고 질펀한 사투리를 들다보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크고 오래된 장터답게 수구레 국밥, 참게탕, 팥칼국수, 육회비빔밥 등 TV에 나왔다는 맛집 식당들이 많다. 평소 만나기 힘든 다슬기 식당도 눈길을 끈다. 다슬기는 섬진강 상류에 모여 사는데 신기하게 강 하류엔 재첩 조개가 많이 산다. 다슬기 수제비, 부침개, 무침, 백숙 등등 다슬기로 할 수 있는 온갖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섬진강변 청정 대나무 숲길
섬진강변에서 먼저 맞아주는 곳은 청정 대나무숲길이다. 구례읍 원방리 섬진강변 일대로 예전부터 대나무가 많았는데 정비를 해서 대나무 숲 산책길로 조성했다. 대숲 하면 담양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구례 섬진강 대나무 숲은 담양과 다른 매력으로 반짝인다. 섬진강과 나란해서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곡선을 그리며 대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섬진강 대숲길 곳곳엔 벤치가 많아 쉬어가기 좋다. 나무벤치에 앉아 대나무로 빼곡한 숲과 그 너머로 희끗희끗 섬진강이 바라보인다. 강변을 따라 펼쳐진 울창한 나무들과 대나무숲은 아름다운 강변풍경과 함께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살랑이던 강바람도 대나무숲에 닿으면 거칠고 원시적인 소리로 바뀐다.
가끔씩 강바람이 불어오면 대나무 숲이 일렁이면서, ‘솨~’ 하는 길고 상쾌한 소리를 낸다. “와! 좋다” 감탄소리가 절로 나온다. 섬진강변 풍경을 한 걸음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강에 떠있는 작은 바위들마다 외래종 거북이들이 볕을 쬐고 있는 모습이 정답기만하다.
이곳에 대숲이 들어선 사연은 섬진강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강점기 이 일대에서 사금 채취가 무분별하게 횡행했다. 섬진강 금모래가 유실되고 이를 안타까워한 주민들이 강변 모래밭을 지키기 위해 대나무를 심은 게 섬진강대숲길의 시작이다.
빠르게 지날수록 손해 보는, 섬진강변길
대숲길에서 섬진강변길로 건너 갈 수 있는 보행자용 다리 ‘두꺼비 다리’가 나타난다. 옛날엔 강변에 두꺼비가 많이 살았는지 한자어 '섬(蟾)'은 두꺼비를 뜻한다. 섬진강이란 이름은 고려 우왕 시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어 왜구를 물리 쳤다는 전설이 생기면서 강 이름이 지어졌단다.
4월엔 벚꽃으로 섬진강변을 화사하게 비춰주던 벚나무들은 이제 여행자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강변마을에 사는 수백 년 묵은 노거수 느티나무, 푸조나무 등을 마주치면 저절로 발길이 멈춰진다. 마을주민들의 쉼터인 정자 역할을 한다 해서 정자나무라고 한다. 강변 정자들은 마을처럼 모습이 다양하다.
동네 어르신 같은 느티나무가 품고 있는 정자, 강물이 한눈에 펼쳐지는 정자,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마당 같은 정자... 어느 정자는 에어컨을 갖춘 '무더위 쉼터'이기도 하다. 저마다 개성을 갖춘 정자들 덕분에 섬진강변 여행이 더욱 즐거웠다. 정자에 앉거나 누워 나무의 신록이 짙어지는 걸 바라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위안이다.
강변에서 강둑길로 바뀐 풍경 속, 큰 수달 조각상이 서있는 섬진강 어류생태관(구례군 간전면 간전중앙로 4)이 나온다. '섬진강 생태환경 우리의 미래입니다.' 라는 문구를 바탕으로 섬진강의 다양한 생태환경에 관해 소개와 전시를 하고 있다.
'세계의 민물고기'라는 주제의 기획전시관에 갔다가 ‘하천의 제왕’이라는 메기를 가까이에서 제대로 봤다. 턱에 난 수염으로 지진도 감지한단다. 이외에도 섬진강의 사계와 섬진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섬진강의 어류 등에 대해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