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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Apr 20. 2020

'남한답사 1번지' 강진 자전거여행

전남 강진만 자전거여행

강진만의 작은 섬 가우도를 향해 가는 긴 출렁다리/이하 ⓒ김종성

"지역적 편애라는 혐의를 피할 수만 있다면, 강진은 '남도답사 1번지'가 아니라 '남한답사 1번지'라고 불렸을 답사의 진수처인 것이다."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가운데


전남 장흥을 보듬으며 흐르던 탐진강이 만(灣)을 이루며 남해 바다로 흐드러지게 흘러가는 고장 강진(康津 : 편안할 강, 나루 진). 유홍준 선생이 '남한답사 1번지'로 부르고 싶었다는 전남 강진은 흐르는 강진만(灣)을 따라 자전거 여행하기도 좋은 고장이다. 갈대숲이 반갑게 손 흔드는 바닷가, 질펀하고 기름진 갯벌과 평야가 고장의 이름대로 편안하고 평화롭게 이어진다.


강진읍에서 강진만을 따라 요즘 명소가 된 작은 섬 가우도 출렁다리까지 자전거도로가 잘 깔려있다. 가우도까지 갔다가 다시 강진읍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로 왕복 약 45km의 거리. 강진만은 남해안의 잔잔함과 한적한 분위기에 푸근함을 더한 곳이었다.

단출하고 정갈하며 맛깔난 동문주막 밥상(추어탕)

전남 강진읍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꼬르륵 거리는 배를 달래며 가까운 강진군청 옆에 있는 '사의재(四宜齋,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로 갔다. 강진읍엔 갖가지 맛집들이 수두룩하지만 사의재 안에 있는 작은 밥집 동문주막은 여행자에게 잊기 힘든 곳으로 남는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온 후 처음 묵었던 주막집으로 당시 이름은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주막집 주인 할머니가 내어준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다잡아 학문에 헌신하기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이 사의재다.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으로, 네 가지는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과묵한 말씨·신중한 행동. 다산은 주막집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모녀의 따스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다산이 강진에서 집필한 귀중한 책들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의재엔 강진군에서 운영하는 한옥 민박집도 딸려있다.


푸근하고 풍성한 강진만

강진읍에 자리한 향토문학관

강진읍엔 닷새장(매 4일, 9일)이 열리는 큰 장터가 있는가 하면, 시장 옆에 '오감통(www.ogamtong.com)'이라는 먹거리 장터가 있다. 강진에서 먹을 수 있는 갖가지 '게미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게미는 '음식에 녹아 있는 독특한 맛'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다. 산해진미가 올라오는 강진 한정식은 가짓수에서도 맛에서도 전라도 음식 중에 최고로 꼽힌다.


대표 한정식 외에 강진 토하 비빔밥, 매생이탕, 전복 비빔밥, 짱뚱어탕... 평소 맛보기 힘든 귀한 음식들이 오감통 먹거리 장터에 한가득이다. 어느 식당엔 '대통령 밥상'이라는 메뉴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메뉴로 구성한 것이란다. 오감통엔 녹음시설과 연습실, 숙식이 가능한 게스트하우스와 실내·야외 공연장을 갖춘 음악창작소도 있다. 주말에는 흥겨운 공연이 펼쳐지고, 가수들의 음반제작과 지역주민들의 음악활동이 이어지는 곳이라고.

푸근한 풍경이 펼쳐지는 강진만 
강진만 갈대숲

강진읍을 조금만 벗어나면 질펀한 바다가 펼쳐지는 강진만이 여행자를 반긴다. 해안가 도로 옆으로 자전거 길이 나있어 강진만 풍경을 실컷 음미하며 안전하게 달렸다. 바닷가에 자리한 어장, 갯벌에서 열심히 수렵중인 목청 좋은 거위, 언제 봐도 느긋한 왜가리, 몸에 진귀한 무늬가 그려진 오리들... 친근한 바다풍경이 내내 펼쳐졌다. 잔잔한 바닷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갈대숲 사이로 정박한 작은 어선들이 마치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었다.


마침 한 어부 아저씨가 배를 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모터가 아닌 노를 저으며 휘적휘적 강진만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말이 어선이지 나룻배 같은 작은 배를 보니, 어릴 적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소설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말없이 노 젓는 어부의 모습은 페달을 발로 저으며 길 위를 달려야 하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아저씨가 탄 배가 갈대숲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출근하는 아버지를 배웅 나온 자식처럼... 혼자서 노를 젓고, 그물을 치고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 어부의 뒷모습은 흡사 고독을 운명으로 여기고 홀로 글을 써야하는 소설가 같았다. 강진만 갈대숲은 쓸쓸하면서도 포근했다. 가을엔 강진만 갈대숲 생태 축제가 열린다니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양한 철새들을 만날 수 있는 강진만
천년고찰 백련사 동백나무숲

해안가 목 좋은 곳에 강진만을 찾아온 철새들을 관찰할 있는 탐조대가 있다. 커다란 망원경 덕택에 갯벌 위에 귀여운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다니는 오리들, 갯벌 속에 머리를 처박고 먹거리 사냥 중인 거위 등을 바로 눈앞인 양 볼 수 있어 좋았다. 갯벌에 주민들이 나가지 않는 때라 그런지 새들 몸집이 통통하고 목소리도 씩씩했다. 해안가를 지나가던 차들이 이곳에 멈춰서서 쉬어갈 만했다.


해안가를 달리다보면 천 년 고찰 '백련사(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이정표가 보인다. 절 입구까지 포장도로가 나있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면(1.5km) 절이 품은 울창한 동백나무숲 감상을 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이자 우리나라 3대 동백림으로 한낮에도 짙은 그늘이 지는 울울창창한 숲을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무 숲속에 서 있는 작은 석탑을 부도(뜰浮 죽일屠,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일종의 무덤)라고 하는데, 석탑들과 동백림이 어울린 풍경은 당장 불자가 되고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히다.


천연기념물 나무숲과 오래되고 귀한 문화유산이 있음에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 점도 강진의 넉넉한 인심을 닮았다. 백련사는 만가지 덕을 품었다는 만덕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산엔 예로부터 차밭이 많아 다산(茶山)이라는 별칭이 있단다. 바로 강진으로 유배온 정약용 선생의 호다. 마당에서 보이는 고즈넉한 가람 풍경과 흐드러진 갯벌이 펼쳐진 강진만의 정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강진만의 보물이 된 섬, 가우도

강진만 출렁다리를 건너면 나타나는 작은 섬 가우도
가우도 섬 둘레길

강진만 해안길을 달리다보면 강진만 한가운데에 떠있는 조그마한 섬 가우도(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신기리)가 나타난다, 강진만이 품은 유일한 유인도다. 섬 이름이 독특해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는 가우도(駕牛島)는 섬의 모양이 소의 멍에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해안선이 2.5km인 이 작은 섬엔 14가구 3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관광객뿐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즐겨 찾는 곳이 된 섬이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가우도를 걸어서 들어갈 수 있게 되자,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흔히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는 차량들이 다니는 큰 연육교를 짓는데, 가우도 출렁다리는 차량이 아닌 보행자 전용의 인도교다. 실제로 건너보니 작은 섬에 잘 어울리는 다리구나 싶었다.  


도암면쪽 망호 출렁다리(716m)와 섬 건너편의 대구면쪽 저두 출렁다리(438m)로 이어진 무척 긴 다리로 강진만 바다 위를 한참동안이나 지나가게 된다. 다리에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 멀리서 보면 정말 출렁일 것 같지만 직접 다리를 건너보면 전혀 출렁거리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굳이 출렁다리라 이름 지은 건, 바다 위를 걷는 이채로운 기분에 마음이 출렁거려서인 듯싶었다.


공중하강체험놀이시설인 '짚라인(또는 짚와이어)'이 설치될 정도로 높다랗게 솟은 다리 중앙 꼭대기에 서면 강진만 하구의 바다같이 너른 풍경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기분을 더없이 상쾌하게 해준다.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진 배들과 강진만이 어울린 풍경은 해가 저물수록 아름답고 운치가 배어나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봄이 오면 개불축제가 열릴 정도로 명물이 된 강진만 개불
사료가 아닌 진짜 생선을 먹고 있는 섬 마을 고양이

커다란 돌 표지석이 반기는 작은 섬 가우도는 육지와 이어진 출렁다리와 함께 해안 산책길이 놓여 있어 섬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한쪽은 바다, 다른 한쪽은 숲이 우거진 가우도 해안길은 빨리 지나가면 갈수록 손해다. 아예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와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섬 둘레는 2.4km로 여유롭게 한 바퀴 산책하는 데 부담이 없다.


섬 선착장 앞엔 천혜의 낚시터 '가우도 복합낚시공원'이 있다. 감성돔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잡혀 낚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단다. 가우도엔 어구 보관창고였던 마을 공동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마을식당이 있다. 섬 주민들의 소득원으로 협동조합으로 운영한다. 싱싱한 수산물로 차린 '가우도 섬 밥상'과, 간식거리인 '황가오리 빵' 등을 맛볼 수 있다. 


선착장 주변에 있는 횟집 아저씨가 수족관에서 꺼내 보여준 '개불'은 누구나 한 번 보면 잊기 힘들다. 강진만 개펄 속에 사는 개불은 길쭉한 호박처럼 큼직한 게 참 거시기하게 생겼다. 중국에서는 바다의 창자, 하이장(海腸)이라고 부른단다. 심해에 사는 희귀 물고기처럼 해안 갯벌 깊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개불. 지렁이처럼 진흙 속을 깨끗이 청소하는 착한 녀석이지만, 어쩌다 먹성 좋은 인간에게 포착되면서 사람들의 별미가 되고 말았다. 강진에서 봄을 알리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산에서는 동백, 밭에서는 보리, 바다에서는 개불이다.  


출렁다리를 통해 가우도 너머 육지로 건너가면 칠량면의 강진청자박물관과, 토요일마다 장터(마량 놀토수산시장)가 펼쳐지는 강진의 '땅끝' 마량면 마량포구가 이어진다. 


* 주요 자전거 여행 길 : 강진읍 - 강진만 해안길 - 백련사 - 망호 선착장 - 출렁다리 - 가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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