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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Mar 31. 2021

윤슬처럼 빛나는 봄날 안양천(安養川) 자전거여행

서울 ~ 경기도를 지나는 물줄기 안양천

탁 트인 시야가 좋은 너른 물길 안양천 / 이하 ⓒ김종성

안양천(安養川)은 경기도 의왕시 백운산 자락에서 발원해 군포와 안양시, 서울시 등을 지나 서울 한강에 합류하는 총 길이 약 35km의 긴 하천이다. 도심을 지나는 물길이다 보니 구일역 금천구청역 석수역 금정역 등 수도권 전철이 천변에 자리하고 있어 편리하게 하천여행을 할 수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뜻의 한자어 ‘안양(安養)’이라 이름 붙인 물길엔 ‘스스로 돌본다, 마음을 닦고 기른다’ 등 자신을 돌본다는 뜻도 두루 함축됐다. 본래 불교 용어로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청정한 극락정토 혹은 괴로움 없이 즐거움과 자유로움만이 존재하는 이상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그 뜻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경기도 안양시 지명의 유래는 불가(佛家)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하지만 자연에는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이 없다. 인간들은 흔히 자기중심적 생각에 사로잡혀 지극히 인간적인 목적을 자연에 부여하고 있지만, 자연은 그런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주어진 법칙에 따라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물길, 안양천(安養川)

안양천 벚꽃 터널
개불알꽃에서 개명한 봄까치꽃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방이 단절되고 사람 사이의 거리가 떨어져도, 그 틈새로 봄은 오고 있다. 무엇보다 냄새부터 가벼워지는 봄을 더욱 운치 있게 해주는 하천변의 풍경이 정답다. 봄바람과 따스한 봄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에 눈이 다 부시다. 봄이 오면 물가에서 제일 먼저 피어나는 쑥이며 제비꽃, 봄까치꽃 등의 들꽃들 너머로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들과 순백의 흰옷 입은 중대백로들의 움직임이 한결 여유롭다.     


파란 하늘색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봄까치꽃은 이름처럼 봄의 전령사 같은 꽃으로 이맘때 흔히 만날 수 있는 들꽃이다. 과거 '개불알꽃'이라는 민망한 이름이었는데 이는 일본 이름을 그대로 직역한 꽃 이름이어서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됐다. 이렇게 청명한 파란색을 보고 우울함(Blue)을 부여한 서양인들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기만 하다.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정원 같은 곳이 아니라 후미진 뒷산이나 평범한 하천과 들판임을 알게 해주는 꽃이다. 겸양, 진실한 사랑이라는 꽃말이 잘 어울리는 꽃이지 싶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아기자기하고 소복하게 피어난 들꽃이 보이면, 페달을 멈추고 다가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픈 생각이 든다. 올봄엔 좋은 일이 생기려는지 보기 드문 흰색 제비꽃을 만났다. 더 부지런히 돌아다녀야겠다.

봄의 전령사 쑥 캐는 아낙네

안양천은 한강처럼 잘 다듬어진 강변과 예쁘게 가꾼 조경을 가진 곳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는 땅에 자연스레 자라나는 무성한 풀들과 갈대숲, 치렁치렁한 가지를 품은 버드나무 등 너무 인공적으로 가꾸지 않은 하천 고유의 풋풋함이 남아있다. 천변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안양천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벚나무가 양쪽에 도열한 둑길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반려견과 함께 나와 산책을 하고, 자전거 애호가들은 천변 자전거 도로를 신나게 달려간다. 벚꽃을 구경하러 온 아주머니들은 어느 새 길가에 자라난 쑥을 캐느라 정신이 없다. 향이 좋아 쑥떡, 쑥국을 해먹으면 좋다며 웃음 짓는 아주머니들 모습은 또 다른 정겨운 봄 풍경이다.      

한 어린아이가 할머니를 따라 쑥을 캐는 모습이 귀여워 곁으로 다가갔다. 부끄러워하며 앙증맞은 손으로 캔 작고 귀여운 쑥을 보니 우리말 ‘쑥스럽다’의 유래를 알 것 같았다.     


안양천 벚꽃길은 낮이나 밤이나 무척 평화롭고 아득한 풍경을 선사해 준다. 피안(彼岸, 고단한 현실의 강 저쪽에 존재한다는 안락한 고향, 즉 극락세상)의 세계는 굳이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불가의 승려들은 절에 피는 벚꽃들을 피안앵(彼岸櫻)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벚꽃이 속세를 떠나 극락(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상징이란다.

피안앵 벚꽃

온통 순백의 벚꽃 속에서 둑길가에 샛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꽃을 보면 보약을 먹은 듯 기운이 솟는다. 부드러운 봄바람, 따스한 햇볕, 환하게 웃어주는 봄꽃들, 사람들의 생기 있는 표정··· 일 년 중 가장 좋은 나날이 지나가고 있다. 봄날 안양천 둑길을 거닐다 보면 세상이 절로 아름다워 보이고 누구나 낙관주의자가 된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썩은 물' 안양천은 어떻게 살아났나

민관이 나선 안양천 살리기 운동 ⓒ경기도
안양천 라이딩

안양천은 의왕시 백운산 자락을 출발할 때만 해도 맑은 내 청계(淸溪)다. 백 리도 못 되는 이 짧은 강은 산업화의 시대를 몸으로 지켜내면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 물길은 지난 1970년대 산업화와 개발 시대의 영향으로 급격히 오염됐다. 기계 전기전자산업 화학 등의 공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군포공단 안양공단 구로공단 등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었다.     


수많은 공장들은 안양천의 풍부하고 깨끗한 물을 공업용수로 사용했고, 용수를 공급한 하천으로 다시금 공장의 폐수를 흘러 보냈다. 공장에서 나오는 오수와 폐수들이 아무런 제한도 없이 그대로 하천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다 보니 1970~1980년대 안양천은 썩은 물 수준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하천이라 불리었다.     


1990년대 안양시를 포함해서 서울과 경기도 지역 13개 지방 자치단체가 함께 하천 살리기에 나섰고 다행히 자연이 숨 쉬는 생명의 하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시 살아난 안양천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숭어의 출현이다. 숭어는 성장 시기에 따라 강과 바다를 오가며 살아가는 기수어(汽水魚)다. 이맘때 가까운 바다에서 한강을 따라 헤엄쳐 온 숭어들이 안양천 하류에서 떼로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점프를 즐기는 멋진 물고기 숭어
수염이 날리는 외발 도인 같은 왜가리

특히 봄 햇살을 즐기려는 듯 수면에서 힘차게 뛰어오르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터져 나온다. 특이하게도 한자로 ‘높을 숭’자를 쓰는 숭어(崇魚)라는 이름값을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생생한 자연 앞에 서면 씻김굿이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숭어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라는 속담처럼 숭어는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것을 즐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몸에 붙은 기생충 때문에 가려워서라고 한다. 등각류목의 일종인 기생벌레로 이것이 몸에 붙어서 근육과 혈액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숭어는 이를 떼어내기 위해 수면 위로 점프를 하는 것이라고.     

봄철 산란기를 맞아 알을 낳기 위해 떼를 지어 오가는 잉어도 볼거리다. 하천에 먹을거리가 많아서인지 크기가 어른 장딴지만한 게 숭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연이 부여한 본능을 따라, 알을 낳을 때면 수심이 낮은 하천의 물가로 올라와 몸부림을 치며 물속 수초 사이에 알을 뿌린다. 그 모습이 마치 격한 춤을 추는 것 같아 많은 주민들이 탄성을 지르며 구경을 한다. 넓고 긴 하천에 낚시를 금지한 덕택에 많은 물고기들이 마음껏 살아가고 있다.

천변에 사는 냥이
둘레길이 이어진 풍광좋은 백운호수

그래서인지 고양이 모습도 한결 편안해 보인다. 동물에 대한 연민은 결국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과 맞물려 있겠구나 싶다. 홀로 다니는 데다 흰 수염 같은 깃털, 긴 다리에 외발로 서서 하천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도인의 풍모가 연상되는 왜가리도 눈길을 끄는 동물이다.      


상류를 향해 흐르는 안양천은 4.5km의 지류 학의천을 만난다. 안양천 유역 중 수질이 양호하고 수량이 풍부한 자연형 하천이다. 학의천은 그 끝에 백운호수(경기도 의왕시 학의동)가 기다리고 있다. 1953년에 농업용수 공급목적으로 준공한 36만 3638㎡(약 11만 평) 규모의 인공 호수다.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북동쪽의 청계산, 남동쪽의 백운산, 서쪽의 모락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주변 경치가 좋다.     


봄날 백운호수 둘레길을 걷노라면 피로가 몸 밖으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햇살이 닿는 버드나무 잎이 잔잔한 봄바람에 흔들린다. 봄이면 벚꽃이 흩날리는 명소로,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 옷을 입고 찾는 이를 반겨준다. 둘레길과 도심 속 힐링 명소로 산책하기 좋은 생태탐방로가 이어져 있어 여유롭게 거닐며 안양천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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