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점심시간은 어디에

직장일기 셋, 알리오올리오 어떠세요 알리오올리오.

by Cactus

순댓국 어떠세요 순댓국.

팀장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감돈다. 우리는 그의 표정을 읽는다. 그는 얼굴로 말하고 있다. '답 따위 필요없다. 반론도 필요없다.' 우리는 조용히 발길을 돌린다. 금요일에도 갔고 화요일에도 갔던 그 집으로.



내가 순댓국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대학교에 다닐 땐 남친이랑 일부러 순댓국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그러나 맛보단 같이 먹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가. 정말로 진짜로, 입사 후 팀 사람들과 먹은 순댓국은 대학교 때 먹었던 그것만큼 맛있지 않았다. 게다가 매일같이 먹으니 이젠 '싫증까지 난다'.



나 빼고 다 남자인 우리 팀에선 일주일에 두어번은 순댓국을 먹는다. 오늘 점심 뭐할까? 라는 질문이 나오면 그들은 무슨 로봇처럼 동일한 톤으로 답한다. 순댓국 어떠세요, 순댓국.

입에 물려선지 군말없이 열심히 따라가는 내게 미안해선지, 가끔 다른 메뉴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대단한 걸 찾아낸 듯 말하는 신메뉴 역시 순댓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대리 부대찌개 먹을래? 설렁탕 어때 설렁탕? 육개장은?

이 옵션으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않으니까.



부대찌개 설렁탕 육개장 순댓국.

다 좋다.

다 좋은데,

우리 정말 가끔은 cozy하고 깔끔한 곳에서 점심먹을 수 없을까요.



이대리 괜찮아, 이번엔 이대리가 골라봐. 먹고싶은거 다 말해봐.

나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그래서 저도 순댓국 괜찮아요, 라면서 조용히 그들의 발길을 좇아갈 뿐이다.



정말요? 호호호호호

그럼 카니발피자 가서 치즈왕창포테이토랑 샐러드파스타, 알리오올리오, 립이랑 윙 골고루 시켜서 가운데 놓고 같이 먹는거 어때요? 거기 분위기 괜찮던데. 그리고 후식으로는 우리 꼭 스타벅스가서 커피프라푸치노에 자바칩 갈아서 뿌린다음 휘핑 듬뿍 올려서 한 잔씩 들고나와요. 아, 거기 블루베리머핀이랑 치즈케이크는 필수. 베이글이랑 크림치즈도 같이 먹는게 좋겠어요. 팀장님 진짜 후회 안하실거임 레알!



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패기로움은

1~2년차 때나 가질 수 있었으려나.



오늘 저녁도 순댓국이다.

제기랄.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모두 애잔한 사람들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