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일기 넷. 재직년수와 흰머리의 상관관계
여섯 가닥.
5분 동안 정확히 여섯 가닥을 뽑았다.
화장실 구석에 있는 3면 거울 앞에 앉아
눈을 치켜뜨며 초집중한 결과, 나는 흰고래수염만큼이나 번뜩이는 노화의 증표를 과감히 뽑아버렸다.
뿌리까지 '뜯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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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가 생기기 시작한 건 3년 전이다.
한 올의 새치도 허용치 않던 내 강력한 두피는 어느 순간부터 한올 한올씩 흰머리의 돌출을 허락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차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는데, 주로 오른쪽 귀 위쪽이 거점이었다.
나는 회사 후배를 시켜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그들을 적출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전이 거의 성공했을 때 쯤
난 알았다.
어머 고객님, 흰머리 생겼어요! 원래 하나도 없었는데 여기 완전 무더기네!
미용실 언니가 잡고 있는 뒷통수 쪽에서
그들이 여전히 자생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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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새치가 있었다면 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흰머리의 군락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의 성장이 이 빌어먹을 회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단 엄마는 삼십 대 중반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셨다지만 아빠는 예순이 넘은 지금도 검은 머리칼을 유지하고 계신다. 나는 그 둘의 조합체다. 설령 엄마를 닮았다해도 난 아직 서른 다섯이 되려면 멀었다. 그러므로 유전은 아니다.
게다가 군락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급격하게 넓어진다. 스트레스가 엄청날 때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며 걱정하니까.
아, 보다 강력한 근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나 외의 다른 회사 직원들도 유사한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것.
입사동기인 신대리의 흰머리도 엄청난 속도로 영역 확장 중이다. 농담 아니다. 정말 엄.청.난.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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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산재야!
신대리가 강력하게 산재라고 주장하는 흰머리는 그래도 양반이다. 색깔만 다를 뿐, 일단 머리가 두피에 안착해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남자 직원들의 탈모현상이다. 입사 후 수년. 그들의 머리숮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아주 잘 생긴 한 동기는 언젠가부터 파마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유인즉슨 '안할 수 없어서'란다. 더 물어보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그의 내재된 슬픔을. 얼마 전 퇴사한 동기는 매일 약을 먹고 클리닉에 다니녔었다. 돈벌다 탈모 생겨서 번 돈 다 쓰게 됐어. 그의 농담에 우린 쓴웃음을 삼켰더랬다. 소문에 따르면 서른이 갓 넘은 우리 동기들 중 대다수가 벌써 탈모 약을 먹고 있단다.
이 쯤 되면 흰머리랑 탈모는 모두 산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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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년수와 흰머리,
재직년수와 탈모.
상관관계가 더 높은 건 어느 쪽일까.
혹자는 흰머리라고 답한다.
혹자는 탈모라고 답한다.
사실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흰머리와 탈모는 유전적인 요소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영양소 부족 등등 다양한 변수가 얽혀 발생하는 것이니까.
어찌됐건,
'우리들은' 서서히 두 case의 상관도를 높여가고 있다.
혹자는 흰머리로.
혹자는 탈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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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닥의 새치들은 내 손바닥에서 맹렬하게 빛나고 있다.
브라운 계열의 플로어에서 빛나고 있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나는 여섯 가닥을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굴려 묶음으로 만든 후 검정색 타일의 세면대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괜스레 요리조리 관찰하다가 쓱,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다.
너는 노화의 증거이더냐,
회사 찌끄래기에서 주는 스트레스의 증거이더냐.
그마저도 붙어있으니 고마워해라,
머리가 휑한 동기들의 위안이 나는 그저 애처롭게 들린다.
누가 누구를 위안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이 괴로운 신체의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미생의 존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