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일기 다섯. 사무실에서도 시계는 간다, 청춘은 흐른다
향수 한 통을 다 썼다. 출근하자마자 칙칙 뿌리던 사무실용 향수인데 오늘 펌핑해보니 거의 나오지 않는다. 병은 거의 비어있다. 아마 오늘 오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뿌렸다 싶다.
사무실에서 쓰는 생활용품은 대부분 빨리 닳는다. 언제 다 썼나 싶을 정도로. 며칠 전 산 것 같은 치약은 금세 영혼까지 끌어 짜야 하는 '다 쓴 치약'이 되어버린다. 몇 번 닦지도 않았는데 물티슈는 언제 그리 빨리 없어지는지. 근처 편의점에 들러 터덜터덜 일회용품을 사갖고 들어올 때면 귀찮다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차오른다. 박스째로 인터넷 주문을 해놓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향수는 좀 다르다. 사실 향수는 하루에 몇펌프 누르지도 않는 소량 이용 상품인데다, 향수 한 통을 다 쓴다는 일은 인생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향수의 생명이 꽤 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향수가 바닥났다. 벌써 사무실에서의 시간이 또 흐른 것이다!
이 향수를 사무실에 옮겨놓은지는 이 년쯤 됐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향인데다 딱히 얽힌 추억도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워 책상 한쪽에 뒀다. 오래오래 쓸 줄 알았다. 오래오래. 뭐, 이녀석과 함께한 이 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다. 나도모르는 새 사무실에서 이 년이 또 흘러갔다는 게 슬픈거다. 허무한거다. 아, 빠른 시간이여.
걷지 못하던 아가들이 뛰어다니고, 서로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결혼을 할 만한 시간. 누군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올 시간.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이 년이 갔다. 이렇게 늙어가면서 과장되고 차장되는 건가 싶다. 향수 다섯 번 바꿀 때쯤 흰머리 숭숭난 부장되는 건가 싶다.
평소 애정하지 않던 향수지만 요녀석때문에 떠오른 상념이 아쉬워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버렸다.잘가라 향수야. 잘가라 나의 이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