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엄마 모유가 최고여!
생후 40여일 된 아기를 안고 첫 외출을 하던 날이었다. 행여 다칠세라, 행여 눈부실세라 포대기에 싼 아기를 안고 남편과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환한 미소를 띠며 다가오셨다.
아유, 아기 엄마 몸을 추슬러야 할 때야. 백일까진 엄마가 쉬어야 해.
아기가 꽃처럼 예쁘다. 세상에나!
오가는 따뜻함 속에 비수처럼 날아박힌 건, "엄마 모유가 최고여! 벌써부터 분유 먹이지 말고 엄마 모유 꼭 먹여!"라는 한 할머니의 외침이었다.
어른들의 육아 조언은 너무나 일반적인 대화다.
생각해보면 그냥 무시해도 될 지나가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그 말 한 마디가 내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혔을까.
그 때의 나는,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모유를 먹일지 분유를 먹일지 고민도 안한 채로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아놓고 "가슴 모양 무너지기 싫으니 분유 먹일거예요!" 라며 큰 소리를 쳤다가, "그래도 초유만큼은 먹여야지."라는 어머님의 조언에 섭섭하다며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가, 아기를 보자마자 급변해 안나오는 모유를 울며 짜내는 사람.
다른 엄마들이 가져온 젖병 속 모유 양을 보며 남편에게 "왜 내 몸은 이따위로 쓸모가 없어 모유가 10ml도 겨우 나오냐"며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오열을 하던 사람.
사춘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마다않던, 완전히 비정상인 초보 엄마. 그게 나였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와 처절하게 울었다. 내 맘대로 안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모유가 많이 나오지 않는 야속한 내 몸을 자책하면서.
지나가는 말들을 그저 지나가는 말로 들을 수 있게 된 건
그 기나긴 우울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내 몸의 호르몬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가고 난 후였다.
정확히는 아이를 키운 지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깨닫게 됐다. 어머니들의 모유수유 후일담은 남성들의 군대 무용담과 같이 에피소드가 끊기지 않는 늘 핫하고 새로운 주제이며, 모두 각자의 깨달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그 조언들은 어느정도 유용하나 각자 키운 자녀 만큼이나 성향과 방식이 제각각이기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모범답안과 실패답안은 존재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도 공통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정답"은 없었다.
고로, 이 문제는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이었다. 서술형 주관식.
모유수유를 할 것이냐, 분유를 할 것이냐.
어린이집을 일찍 보낼 것이냐, 두 돌은 지나고 보낼 것이냐.
책 육아를 할 것이냐, 몸으로 놀아주는 육아를 할 것이냐.
영어유치원을 보낼 것이냐, 일반 유치원을 보낼 것이냐.
맞벌이를 유지할 것이냐, 전담육아를 할 것이냐.
한달 두달 지날 때마다 문제는 쌓여갔고 들리는 에피소드도 늘어만 갔다.
먹어도 먹어도 식탁위에 끊임없이 팬케이크가 쌓이던 어릴적 만화 속 한 장면처럼,
하나를 해치우면 또다른 숙제가 나타났고 숙제에 대한 사람들의 답은 모두 달랐다.
가만히 들어보면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각자의 과거를, 때론 후회되고 때론 보람찼던 육아의 순간을, 그 때의 자신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나도 모두의 이야기에 반응하며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나만의 주관식 답안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같은 계절이 오고 같은 이야기들이 온다.
나는 여전히 초보 엄마이지만, 이제 다른 사람이 만들어 낸 주관식 답안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단지 다른 사람의 주관식 답안을 기꺼이 듣고, 공감하며, 느끼고, 기록하며
나만의 답을 찾아간다.
오롯이 내 아이의 삶과 맞물려 새로운 이야기로 빚어지는 나만의 육아관.
서툴지만 고심의 흔적이 묻어나는 나만의 답안.
육아는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정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