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3월의 기억

우린 매순간이 설렜다

by Cactus

#교양관 6층. 나는 긴장한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가 몇몇과 어색한 눈인사를 나눴다. 곧이어 조교가 강의실에 나타나 “시간 상 존칭은 생략하고 성함만 부르겠습니다”라며 출석 확인을 시작했다. 존칭, 존칭이라니. 수험생시절 몇 반 몇 번으로 불려온 내가 존칭을 생략한다는 인사말을 듣다니. 감격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날 교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삐그덕거리는 의자를 어색해하며 여러 차례 자세를 고쳐앉던 동기, 내내 떨리던 가슴, 팔에 끼고 있던 파일, 아직 차갑던 초봄의 바람이 생각난다.

3월. 대학생 되던 날의 첫수업이었다.


#그래서 도서관이 어디라고?

우리는 국제관 옆에 있는 캠퍼스맵 앞에 서있었다. 분명 이쪽이 맞는 것 같았는데. 내가 지도로 봤다고. 말많은 동기 한 명이 계속해 중얼거렸다. 스마트폰도 구글맵도 없던 2006년.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기엔 왠지 어색하고 ‘중앙도서관’이니 ‘민주광장’이니 하는 말이 아직 입에 붙지 않는. 우리는 신입생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중앙도서관에서 따끈따끈한 학생증을 받아들고는 백주년기념관 카페에 앉아 다섯 명의 학생증 샷을 찍었다. 뭐가 그렇게 설렜을까. 우리는 수업 사이사이의 빈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고 캠퍼스 건물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 매순간이 그렇게도 설렜다. 설레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그냥 이름 불러라, 선배가 뭐꼬.

남자동기들이 야구공으로 캐치볼을 하는동안 나는 남자동기의 겉옷 하나를 스커트 위에 걸친 채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남자 동기들이 누군가에게 쭈뼛쭈뼛 인사를 했다. 늦게 대학을 온 우리와 가장 어색한 관계. 그러니까 동갑인 선배를 마주친 모양이었다. 앞으로 편하게 지내자며 동기들을 향해 밝게 웃던 그는 내가 어색하게 허리를 굽히자 손사레를 쳤다. 그리곤 친구끼리 조만간 술 한 잔 하자며 캐치볼을 집어들었다. 아직은 날카로운 봄바람 한가운데서 날리는 야구공이, 선배 손길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그 뒤를 배경처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무릎에 덮은 동기의 카키색 옷깃이 빛났다. 3월의 차가운 공기가 왜 내겐 그토록 따뜻했을까.


#우리는 계속 교수님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정도면 시위에 더 가까웠다. 날씨는 너무 좋고 저희는 신입생입니다. 교양관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오늘의 비밀 작전’을 친히 알려주던 중문과 06이 말했다. 친구로 보이는 사람도 거들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학교축제인데 꼭 참석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이내 교실에 있던 신입생들 모두가 단체 조르기를 시작했다. 너네 선배들을 몇 년동안 가르쳤지만 너네 학번같은 학생들은 또 처음이다. 교수님은 혀를 내두르더니, 수업을 빼는 대신 수업 시간을 변경하자며 한발짝 물러서셨다. 순간 강의실은 함성으로 가득찼다. 여기가 고등학교 교실인지, 대학교 강의실인지. 수요일날 중국어 2반도 응원오티 참석 오케이. 나는 책상 밑에서 동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의실 뒷문 너머로 핸드폰을 흔들며 신나하는 동기의 얼굴이 보였다.


우리는 왜 매순간 설렜던 것일까. 생전 처음 가져보는 자유의 시간을 어떻게 허비할지 몰라 방황하면서도 우리는 늘 웃고 즐거워했다. 3월의 차가운 바람에서 냉기가 아닌 온기를 느꼈고, 다가오는 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출근길. 3월의 서늘한 바람이 다시 얼굴을 스친다. 이 바람이 불 때면 10년이 지났는데도 엊그제처럼 생생한 그 때의 기억이 나를 설레게 한다. 말이 많던 아이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까. '모의'를 시작하던 중문반 아니는, 강의실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나의 동기는.

천천히 밀려오는 3월.

이 바람이 너무도 따뜻해서 나는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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