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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Jul 27. 2021

담백의 끝판왕, ‘터키식 아침식사’에 반하다


 터키식 아침식사 '카흐발트'의 첫인상


 내가 해외여행을 할 때 굉장히 세심하게 챙기는 포인트가  딱 두 개 있다. 바로 ‘안전’, 그리고 ‘아침식사’.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몸뚱이를 잘 건사해야 하니, 안전을 세심하게 챙기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평소에 챙겨먹지도 않는 아침식사를 해외만 나가면 무섭게 챙기대는 이유를, 내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국경만 넘으면 괜히 아침부터 배가 고파진다. 두 발이 자석처럼 식당으로 향한다.



 터키에서 맞이한 첫 아침. 나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첫 숙소 ‘아스킨 호텔’의 조식 장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정신은 여전히 꿈 속 어딘가에 있었지만 ,이스탄불 도시 전체에 울려퍼지는 ‘경 외는 소리’가 점점 내 멘탈을 현실 세계로 끌어올렸다.



 내가 이 숙소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조식을 포함한 숙박 가격’이 매우 저렴해서, 그리고 위치가 관광지 ‘블루모스크’와 가까워서.

호텔 꼭대기층에 있는 조식 장소로 올라가니 블루모스크 위쪽 첨탑이 보였다. 아. 이 멋진 뷰를 눈에 담고 '경(코란) 외는 소리’를 들으며 터키식 아침식사를 즐긴다는 건.. 실로 이국적인 경험일 것이다.



익스큐즈미 맴.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에 천을 두른 아주머니가 눈인사를 하며 후다닥 다가온다. (내 아침식사로 추정되는) 음식 그릇들을 큰 쟁반에 올려 담아들고서.

 블루모스크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사진을 찍어대던 내가 아주머니와 얘기라도 나눌까 싶어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그녀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와우. 우리나라 백반집 만큼이나 재빠른 초고속 서빙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테이블에 펼쳐진 한 상이 너무 단촐하다. 빵과 올리브, 오이, 토마토. 삶은 달걀, 치즈, 햄 한 조각씩. 정녕 이게 터키식 아침이란 말인가? 아스킨 호텔 홈페이지에서 그렇게 “강조한” 무료 아침식사?



익스큐즈미. 애니 아더 푸드? 

오, 쏘리. 아이 폴갓.



아주머니는 아차차. 하는 표정으로 식당으로 향한다. 그럼 그렇지. 뭔가 빠졌을 거야. 고작 이런 단촐한 메뉴로 배고픈 한국인의 아침식사를 때우려했다면 큰일날 소리지. 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녀의 컴백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가 웃음을 지으며 가져온 건, 컵을 손으로 대기도 어려울만큼 펄펄 끓는 차, 그리고 다양한 맛의 쨈 뿐이었다.



두 유 해브 애니 어디셔널 푸드? (고기를 줘, 고기를!)

놉.



애니 메뉴보드? (베이컨이나 달걀프라이라도 팔면 사겠어! 제발 메뉴판 줘!)

노, 쏘리.



그녀는 또다시 계단 아래쪽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당황한 나는 옆 테이블에 앉은 현지인 남자의 테이블을 둘러보았는데, 그도 나와 동일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른 어떤 메뉴도 없이.



터키에 있는 열흘 간, 나는 이 아침식사와 ‘아주 유사한’ 조식을 여러 번 먹게 되었다. 알고보니 ‘카흐발트’라고 부르는 터키식 아침식사는 원래 구성 자체가 동일하다고 한다. 오이, 토마토, 삶은 달걀, 올리브, 뜨거운 티, 빵과 요거트. 이 기본 구성에 집, 가게마다 약간의 재료 변화만 줄 뿐, 아침식사 구성 자체는 같은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아스킨호텔에서 내놓은 담백하디 담백한 조식은 사실 정석 그 자체였다.




‘카흐발트’는 왜 이토록 담백한 것일까?


재료가 역사적으로 매우 흔해서? 혹은, 터키인들의 건강과 영양소 섭취를 위해서? 글쎄, 이런 이유는 아닐 것 같다. 우선 카흐발트에 포함되는 빵, 치즈 등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한 음식이니 터키의 아침식사 메뉴로 자리잡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 단순히 건강만을 위해 꾸려졌다기엔 카흐발트의 메뉴가 너무 단촐하다.



혹시.. 혀가 녹아내릴 정도로 달달한 터키식 바클라바를 마음껏 먹기 위해, 매우 전략적으로, 아침 식단을 최대한 담백하고 가볍게 구성한 건 아닐까.


지극히 나다운, 디저트와 사랑에 빠진 30대 여자다운 단순 발상이다.




카흐발트를 처음 마주한 그날 아침. 나는 뜨거운 햇살 아래서 펄펄 끓는 뜨거운 티를 마시고 갓구운 빵을 뜯는 본격 이열치열 체험을 포기하고 급히 자리를 떴다.

카흐발트를 두 번째 만난 날은 빵과 뜨거운 티를 입 안에 우겨넣으며 맛을 음미해봤다. 그리고 세 번째부턴.. 맞다. 결론치곤 뻔한 이야기다. 어느새 카흐발트에 길들여져 현지인처럼 즐기기 시작했다. 이 담백하고 심심한 음식을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어디 서울 한 곳에 카흐발트 파는 곳 없나요.

내인생 첫 '카흐발트'
두 번째 숙소에서 만난 카흐발트. 이 호텔의 구성은 더 단촐하다.
아스킨호텔 조식 장소에서 본, 카흐발트 식사에 집중하는 현지인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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