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저거 물어보던 선생님이 더 깊은 상담을 받아보라고 제안한 계기는 회사 때문이 아니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후였다.
"그렇게 써니 님을 힘들게 한 엄마가 지금은 가장 사랑하고 귀엽게 느껴지는 존재라고요? 이상하지 않나요?"
그게 왜요? 그럴 수 있지 않나요? 엄마잖아요.
지금부터 우리 엄마 정여사와 둘째 딸 써니의 44년 인생 에피소드를 조금씩 풀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사실 정여사는 정말 정말 귀엽다.
우리 엄마 정OO. 47년 생으로 올해 77세이시다. 48년생인 아빠보다 연상이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부모님이 2년이나 호적에 늦게 이름을 올려서 그렇지 원래는 아빠보다 연하라고 연신 주장하신다.
나 리썬이(가명)는 1980년생으로 장녀인 언니와 장손인 남동생 사이에 태어난 둘째 딸이다. 이렇게 사이에 낀 둘째이면서 성별이 여자인, 둘째 딸 동지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둘째 딸의 설움, 남 챙기는 성격등 둘째 딸을 대표하는 여러 면모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이미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리썬이는 엄마, 아빠, 언니, 남동생과 함께... 우리는 다섯 식구이다.
엄마가 정여사로 불리게 된 시점은 10년인가, 15년 전인가.... 다섯 식구가 웬만하면 엄마의 말을 거역하지 않기 시작하고, 모두가 엄마를 가장 위하는 단체 철이 들고 나서부터, 여사님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부모님과의 관계의 변곡점이랄까... 어느 순간 부모님의 잔소리와 자식의 잔소리의 비중이 50:50이 되더니, 목소리의 크기와 힘의 균형이 20:80으로 바뀌면서, 부모님은 자식들 눈에 고지식하게 철이 없다거나... 때때로 애같이 구셔서 귀엽다고 느껴지는 존재가 되었다. 물론, 자식이 부모님께 잔소리를 해도, 부모님은 듣지 않으신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잔소리를 해도 귀뜽으로 안 듣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식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필요한 것을 사드리기 때문에, 연세 드신 부모님보다 경제활동 피크에 있는 자식의 잔소리가 조금 더 힘이 있다. 하지만 진짜는 부모님이 자식에게 져주시는 거겠지...
정여사는 원하는 것이 있어도, 절대 본인이 하고 싶다거나,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자식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 편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소복이 내린 추울 겨울날, 몸이 찌뿌둥한 정여사는 찜질방에 가고 싶다.
새로 오픈한 찜질방이 깨끗하고, 땀도 폭~ 나는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주말에 가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지옥이 따로 없더라. 아.... 한산한 평일에 여유롭게 찜질하고 싶다.. 하지만 둘째 딸은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질방에 가고 싶다. 왜 둘째 딸이냐?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제일 마음 편하고,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여사는 둘째 딸에게 전화를 건다.
정여사 : "어디야?"
둘째 딸 : "지금 일정 하나만 더 끝나면 집에 갈 수 있어용. 한.... 1시간 후에 집에 도착할 것 같아. 왜용?"
정여사 : "아니 서둘러서 오지 말라고. 그리고 너 찜질방 가고 싶어 했잖아. 천천히 와"
둘째 딸 : "아....... 엄마 찜질방 가고 싶어?"
정여사 : "아니 네가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니까. 그런데 엄마도 외출했다가 지금 집에 와서 피곤한데 어쩔까 모르겠어. 일단 집에 와. 와봐야 알지"
이렇게 통화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둘째 딸.
정여사는 이미 패딩을 입고, 예쁘게 스카프도 매시고, 목욕 가방에 물을 챙겨서 넣고 계셨다.
다시 한번, 피곤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둘째 딸에게 모르겠다고 대답은 하시면서, 계속 목욕 가방은 챙기고 계신다.
아... 가는 거구나.....ㅎㅎㅎ
둘째 딸은 코트를 벗을 필요도 없이, 그 길로 다시 집을 나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차를 밖에다 할걸 괜히 지하 2층에 했다.
둘째 딸에게 전화할 때 이미 옷을 입고, 기다리시던 정여사는 발걸음도 가볍게 찜질방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