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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칵테일 Oct 26. 2020

이자카야 화장실에서 느낀 불안.

진화심리학으로 살펴보는 '투쟁 - 도피' 반응. 

얼마 전 친한 언니들과 술집에 갔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만난 지라 들뜬 마음이었다. 횟집에서 간단히 1차를 하고 바로 앞에 있는 이자카야로 향했다. 언니 한 명이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했다.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곧 그녀는 약간 놀란 상태로 들어왔다.


 "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웬 남자가 들어왔어! 화장실 입구가 두 개였어. 다른 건물에서도 들어올 수 있나 봐. 심지어 남녀 공용화장실이었는데도 말이야. " 

그녀의 말을 듣고 화장실을 확인했다. 화장실은 다른 건물과 함께 쓰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총 두 개의 입구가 있었고 어느 쪽이든 열쇠만 있으면 출입 가능했다. 


외진 골목, 다른 건물과 공용 사용, 취객들이 많은 점, 화장실 앞 담배 피우는 사람들.. 나는 불안을 느꼈고 곧 화가 났다. 이자카야 사장님에게 제법 흥분한 상태로 말했다. 

 " 화장실이 남녀 공용인 점도 무서운데 다른 건물과 함께 쓴다는 게 충격적이네요... 언니가 화장실에 있는 동안 어떤 사람이 들어와서 범죄를 저지르기라도 하면 어떡하죠? 정말 이렇게 외진 곳에 위치한 화장실에.. 보안도 전혀 없는 곳에.. 입구가 두 개라는 게 말이 되나요? 심지어 안에서 잠금장치를 할 수도 없네요! 이 문제를 해결해주셔야겠어요. "


잠시 진화심리학을 살펴보자. 진화심리학에서 전통적인 투쟁-도피 반응도 불안 상태의 원형으로 설명된다. 특정 종류의 위험에 대해 특정 행동이 나타나는 것도 불안의 일종이다. 포유류가 위험한 상대를 만났을 때, 언제든 도망가거나 싸우도록 신경계가 반응하는 행동과 같다. 1) 도주 회피 2) 공격적 행동 3) 얼어붙으면 4) 복종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Marks&Nesse,  1994) 


나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사실 무서웠다.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 취약한 편이다. 내가 살아온 환경이 그리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확인했을 때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시각 이미지로 떠올랐다. 당시 뉴스에서 CCTV에 찍힌 목격자가 피해자를 확인했을 때 반응을 본 적이 있다. 소스라치게 놀라던 모습이었다. 화장실이라는 같은 공간이 나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진 이유이다. 사실 난 두려웠고 투쟁 반응으로 이어졌다. 사장님에게 안전한 공간을 촉구하는 '투쟁 행동'이 일어난 까닭이다.


그런데 나란 인간의 문제는 불안의 역치가 지나치게 낮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보자. 화재경보기가 역치가 너무 낮으면 화재로 이어지지 않는 위협에도 소음을 낸다.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는 소음에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울리고 있는지 의심을 할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불안에 역치가 너무 낮으면 '불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투쟁 혹은 회피하게 된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결과적으로 위축된다.


나는 밤에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깬다. 작은 사회적 불안에도 쉽게 안절부절못한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오랫동안 고민하며 '고민' 속에 갇힌다. 그런데 불안의 역치가 낮아진 까닭이 분명히 존재한다. 짐바브웨 지역의 높은 불안 수준은 실제 폭력이나 질병의 높은 비율과 관련되어 있다. 짐바브웨 안에서도 사망에 이르게 할 심각한 위협이 높은 지역에서 더 높은 불안 수준을 보인다. ( Laghaug, 2010 ) 


나에게도 불안의 역치가 낮아져야만 했던 까닭이 있을 것이다. 불안해야만 했고 불안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던 수많은 나날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 안전하게 뿌리를 내려야 한다. 아마도 불안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위험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불안을 일으키는 생태학적인 위험, 사회적 지지의 부족, 안전망의 부재가 나에게 있었음을 수용하자. '불안'이 언제든 위협에 대응하게 해주는 중요한 존재였다는 점을 알아차린다. 이제는 불안에 고여있는 에너지를 삶의 생생한 에너지로 바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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