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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ul 28. 2017

군함도를 보지 않기로 했다

안 보는 이유니까 리뷰는 아닙니다


** 영화는 안 봤지만 주요 평, 감독과 배우들 인터뷰, 스포일러 등은 읽고 쓴 글입니다. 내용을 대놓고 언급한 것은 없습니다.



  <군함도>의 첫인상은 영화 이전에 찾아왔다. 마케팅을 기묘할 정도로 착착 잘 한다는 느낌이었다. 예고편도 야무지게 잘 뽑았다. 게다가 내로라하는 배우진. 누가 봐도 천만은 따놓은 당상 같았다. 영화가 역사를 이용한다는 말도 나왔지만 어차피 무엇인가를 소재로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기에, 역사도 영화를 이용할 수 있는 선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역사도 영화를 타고 자신을 드러내면 되니까, 영화가 역사의 이름값을 빌려 오는 만큼 역사의 사실과 교훈에게 무대를 내어주면 서로 아름다운 결말이 될 것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목소리도 아직 충분히 응답 받지 못했지만, 군함도의 경우 우리가 군함도를 모른다는 사실도 모르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고등학교 근현대사 선생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부교재에 충격적인 일화와 사진이 들어 있지 않았다면 나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학교를 떠나면 역사 교육에서 유리되는 개인들의 잘못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씁쓸해지는 게 사실이어서, 영화와 역사가 같이 나온다면 환영이었다.

  그리고 개봉이 임박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스크린 독점에서부터 왔다. 영화 외적인 이야기라 영화 자체를 논할 때는 상관 없는 부분이기야 하겠지만... 2500개 중에 21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혼자 다 쓴다니 좀 심하지 않나? 그런데 이 영화 외적인 사실에서 왜 나는 배신감을 느끼지?

  그리고 <군함도>가 대중에게 다가온 방식을 찬찬히 되짚어 보니 배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뭘 까더라도 보고 까자고, 욕을 하더라도 덮어놓고 해선 안 되고 일단 작품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군함도는 배경일 뿐 탈출극이라는 역사 교사의 평, 역사가 장르에 이용당했다는 느낌에 씁쓸하다는 시사회 평을 보고 영화가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르다는 건 느꼈어도 영화를 볼 참이었다. 그 저간에는 그동안의 마케팅으로 인한 기대가 있었다. 이용해 봤자 군함도가 배경이라면 역사의 비극이 전달되지 않을 수 없고, 이미 썼듯이 나는 영화가 역사를 이용해도 역사가 영화를 이용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조금씩 찝찝해지기 시작했다.


  영화의 방향성이 꼭 우리 민족 만만세로 귀결될 필요는 없다. 감독과 배우들이 꼭 외운 것처럼 입을 모아 이야기하듯 "나쁜 조선인"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인터뷰에서 하는 그 말이 핑계로 느껴지고 일말의 배신감마저 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박열>을 비롯해 다른 작품들도 일본인과 한국인을 나누어 이분법적으로 그려내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경성스캔들> 같은 드라마들도, 다음 웹툰 <곱게 자란 자식>도 '나쁜 조선인'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시대를 바탕으로 개인들의 이야기를 풀어 나갔을 뿐이다. 당연한 소리를 대체 왜 자기들만 한 것처럼, 뭐 남들은 시대상을 그리느라 단순 이분법으로 개인의 선악을 다 뭉개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구태여 힘 주어 말하는 걸까. 박열(=아나키스트)처럼 아예 다른 시각으로 풀어간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군함도는 조선인이 강제 징용당한 곳이다. 나쁜 조선인이 있고 없고와는 좀 무관한 게 맞는, 민족 이분법적으로 가도 무리가 없는 소재다. 그게 팩트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간다고 설마 사람들이 "조선인은 다 천사표고 일본인은 다 나빠요!"로 받아들일 리도 없다.


  나라를 잃은 나라의 통치 구조가 그랬는데, 그렇게 구조적으로 선명하게 양분되어 있던 곳을 담으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씀을 하시면... 그런 주제 의식이었다면 다른 소재를 쓰셨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40년대 조선인에게만 적용되던 법명 몇 개만 읊어 보아도 큼직한 구도는 양분되어 있다는 걸 못 볼 수가 없다. 그 안의 개인의 모습을 미시적으로 담는 게 목적인 영화라면 모를까. (<아가씨>나 <해어화>도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되 역사 의식을 담지 않았지만 그걸 이유로 욕 먹은 적은 없다.) 다만 이토록 거시적인 제목을 달고 인터뷰에서는 그런 미시적인 이야기를 하다니 위화감이 들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군함도>가 그 동안 마케팅 어떻게 해 왔나. 사람들 마음에 촛불이 특별하게 일렁이던 시절 촛불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는 송중기의 심각한 표정을, 누구라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단호하게 전범기를 쫙 찢어 버리는 장면을 참 적절한 때 인터넷에 풀어놓아 기대를 높였다. 영화의 함축이라 할 수 있는 제목도 <군함도>에다가, 대중의 기대치를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해 온 마케팅이었다. 다시 말해 군함도라는 소재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사람들이 "이것은 식민지 참상을 담은 역사 영화다"라고 생각하게끔 유도해 왔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인터뷰로 '전쟁은 나쁜 것.. 위안부 피해자는 강하고... 나쁜 조선인도 있었고요...' 하다니 대중 입장에서 이건 뭔가 싶은 거다.


  군함도는 참혹한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침략과 수탈의 역사이다. 감독과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는 어불성설이라는 소리다. 우리 정부도 잘못했다는 말 또한 의미가 없다. 그때 우리에게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던 임시 정부가 있었을 뿐, 국제적으로 우리는 외교권을 빼앗긴 식민지였으니까. 경술국치로부터는 35년이 흘렀을 때다. 우리야 미래에서 바라보니까 그 해에 광복이 왔음을 알지만, 1945년을 현재로 살고 있던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날 때부터 일본이 강제로 빼앗은 땅에서 자랐고 광복이 언제 오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소리다. 판이 그렇게 짜여진 세상에서 한 세대가 흘렀는데, 개중에 나쁜 조선인이 아무리 나빠봤자 구조적 폭력보다 나쁜 영향력을 더 크고 넓게 줄 순 없다.


  내가 보지 않기로 한 결정적 이유는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받은 인상들이 영화에서 어떠어떠한 방식으로 풀어졌다는 스포일러를 들었기 때문이다. 방향성을 뒤집지 않는 작은 팩트 차이가 차라리 낫다. 영화니까 꼭 현실과 손톱만큼의 오차도 없이 같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군함도가 논란이 되는 이유이자 내가 군함도를 보지 않는 이유는 팩트 하나하나를 따지기 이전에 방향성이 달라서이며, 그럼에도 그 다름을 숨겨왔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군함도를 배경으로 "방향성"이 어그러지게 만드는 건 정말 사양이다. 스포일러 당한 내용을 여기다 쓸 순 없지만 영화의 몇몇 설정과 전개가 딱 그렇다. 아마 대부분 보고 싶지 않아질 방향성이 몇 가닥 있다. 까도 보고 까려던 나는, 오로지 욕하기 위해 내 두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다.



  역사 왜곡은 생각보다 쉽다. 팩트를 비트는 건 하수나 하는 법이다. 팩트를 가닥가닥 사용하되 원하는 각도로 틀어놓는 게 더 효과적이고 쉽다. 실제로 일본이 해 온 방식이기도 하다.


  군함도가 역사 왜곡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본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만, 이 영화를 안 본 내가 그렇게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팩트로만 이야기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빠져 있다는 느낌은 지우기 어렵다. 사람들이 역사를 생각할 때 받는 그 느낌 때문에 군함도가 군함도인 것이고, 그래서 이 영화의 흥행이 보장되어 있던 것인데... 애초에 달리 홍보했다면 모를까, 마케팅 과정에서 꾸준히 잡고 있던 그 느낌이 정작 영화에서는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본 사람뿐 아니라 만든 사람들 입에서도 들으니 보러 갈 의지가 사라졌다.


  2,500개의 스크린 중 2,100개가 넘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분명 영화 외적인 부분임에도 이에 맞물려 배신감을 증폭시킨다. 대기업 자본력은 영화의 강점이고, 그 강점을 잘 쓰는 건 얼마든지 자유지만 경의중앙선보다 자주 있다는 상영 시간표는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진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안전 장치를 가진 영화가 무엇이 두려워 군함도의 핵심, 침략과 수탈의 구조적 아픔을 직면하길 포기했나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아픔을 담는 건 '국뽕'이 아니다. <박열>도 <덩케르크>도 고증을 통해 담은 이야기지만 국뽕이라고 욕 먹지 않았다. 민족 감정이 과하게 아무 데서나 튀어나오는 걸 국뽕이라고 비꼬는 거지, 민족이 있어야 할 위치에서까지 민족이 빠지라는 게 아니다.


  물론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가 배경이라고 꼭 민족주의와 독립 운동만 영화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경성도 동경도 아닌 군함도에서는 그럴 여지가 거의 없다. 반박할 수 없는 역사의 아픔이 아직 위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있는 이들의 마음도 채 헤아리지 못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함도라는 소재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이런 줄거리, 이런 인터뷰는 정말 별로다. 소재가 끌어올 수 있는 힘을 쏙쏙 빼먹고 소재가 드러날 자리는 내어주지 않았다.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배경만 빌려 온다는 말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렇다면 마케팅이 사람들의 민족 감정을 이용해 사기를 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나 하나 안 보는 게 뭐 그리 대수겠냐만은, 내게 있어 이 영화는 개봉 전에 다가왔다가 개봉 전에 떠나갔다.



+

  군함도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선동"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심지어 영화인들 입에서도 결국 그 말이 나와 버려서, "이 영화를 안 보고 싫어하는 사람" 입장에서 기분이 나빠 몇 마디 추가.


  스크린 수 논란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군함도 논란은 그 부분보다 다른 부분이 더 컸다. 그것 때문에 안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보려다 안 본 사람들은 대부분 감독 인터뷰, 배우 인터뷰, 보고 온 사람들의 평 보고 안 갔다.


  제작진 입장에서 서운하고 억울하고 답답할 순 있다. 국뽕 싫어하던 그간의 분위기도 언급되었다 하니 양쪽에서 얻어터지는 기분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제작하는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느꼈을 공포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스타 감독, 쟁쟁한 배우진, 대자본, 흥행이 보장되는 소재, 개봉 전부터 받은 열렬한 관심... 이 영화가 뚜껑 열고 이렇게 욕 먹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으니까. 누가 맘 먹고 여론 몰이하면 영화 하나 말아버리는 거 일도 아니겠구나 싶은 마음 덜컥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걸 가지고 "여론몰이"나 "선동"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 높지 않다. 대중이 자기 나름의 정보를 갖고 판단을 해서 볼 사람 보고 안 볼 사람 안 보는 결과일 뿐이다. 선동이라니, 그런 오만 정성 들이면서까지 음해 세력이 될 이유도 없다.


  그 영화를 안 보는 사람이 많고 그 이유가 뜨거운 감자가 된다면 그 이유를 돌아보면 될 일이다. 일제 강점기 배경 영화는 대박의 상징 같았는데 왜 이번엔 그게 안 먹히고 욕을 먹었지? 싶었다면 그 대답이 이유가 될 것이다.


  관객에게 영화를 보아야만 하는 의무가 있지는 않다. 그리고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주변과 이야기 나눈다 해서 여론 몰이니 선동이니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다. 게다가 "선동"이라니, 불리하면 가상의 적을 상정하고 딱지 붙여 선 긋는 게 얼마나 유치하고 지긋지긋한지 잘 아실 만한 직업군에서 이러시면 좀 곤란하다. 참고로 그동안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내용이 긍정적이었을 때는 선동이 아니라 "입 소문 타고 흥행세"라고 했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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