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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Feb 03. 2021

진심 앞을 가린 것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결혼 이야기> (2019, 노아 바움백 감독)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첫 시퀀스에서 홀려 들었다. 사랑하는 면면을,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나열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시지도 않은 찻잔이 곳곳에 놓여있는 모양새나 소리 나지 않는 색소폰 앞에서 웃는 얼굴 같은 것들을 보여주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낀 필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이야기까지 귀 기울이고 싶어 지게 만드는 힘이니까. 애정은, 곰인형을 들고 침대 옆자리로 파고드는 아기처럼 집요하니까.



그런 사랑을 드러내는 건 언제부터 약점으로 치부되나. 그 사랑이 사랑으로 보답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고개를 들 때부터. 함께 탄 지하철에서 나란히 앉지도, 서로를 보지도 않게 됐을 때부터, 끝과 새로운 시작을 앞에 뒀는데 응원도 축복도 아닌 지적이나 성의 없는 말만 던지게 됐을 때. 그럼에도 상처 받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눈물을 혼자 삭일 때.


그렇게 진심 앞을 가린 것들이 켜켜이 쌓이면 사랑은 힘을 잃고 결혼이라는 관계에도 금이 간다.



1950년대 인도의 결혼 이야기를 보고 떠올린 것은, 뜻밖에도 2019년의 <결혼 이야기>였다. 결혼이 사회적 제도라는 걸 생각하다 보면 자주 잊지만 그 이전에 결혼은 관계이니까. 결혼을 시작하든 이어가든 끝내든 그 두 가지가 다 열리고 이어지고 끊어져야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니콜과 찰리도 그렇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아온 서로의 모습을 써보는 것 또한 이혼 과정이었을 뿐이다.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관계를 직면하는 데에도, 결혼이라는 제도를 다루는 데에도 서툴렀다. 노련한 변호사의 손에 이끌려 두 사람은 차근차근 길을 잃어간다. 니콜의 변호사 노라는 거의 심리 상담사 같다. 찰리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찰리에게 니콜이 있었던 게 행운이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넘어가 니콜의 작업물을 인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다가선다. 고층 빌딩처럼 높고 매끄러운 하이힐을 벗고 옆에 앉아, 정말 맛있는 차와 쿠키를 먹이고는 안아준다. 상관없는 얘기들까지 다 들어주고, 당신의 뜻이 중요한 거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뜻을 밀어 넣는다. 니콜의 울음을 언어화하고, 이 모든 건 희망을 위한 행동이라고 라벨까지 딱 붙여버린다.


아주 애매하다. 노라는 결혼 제도 안에서 자신을 잃고 착취당한 여성들의 구원자인지, 아니면 능수능란한 직업인인지. 둘 다일 것이다. 니콜과 찰리의 관계도 그렇다. 그래도 두 사람에게는 아직 애정이 묻어나지만, 그래서 두 사람이 멀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를 보는 내내 슬퍼서 눈물이 나지만, 동시에 두 사람이 각자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보며 ㅡ특히 어느 도시에 있는지에 따라 서로의 감정과 위치가 바뀌는 것을 보며ㅡ 그 이별을 수긍하게 되기도 한다. 꼭꼭 접어 딱풀로 붙인 색종이를 억지로 떼어내면 서로의 색깔과 그 안에 감춰져 있던 하얀 속지까지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두 사람 안의 모든 색깔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계에서 변호사들끼리 법정에서 가장 유리한 무기를 골라 벼리는 동안, 두 사람은 속살까지 갈기갈기 찢기고 상처 입는다. 한때는 애정으로 파악했던 서로의 면면은 이제 공격해야 할 약점이 된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내린 선택들은 또 새로운 방황으로, 더 슬퍼지지 않으려고 꺼내 든 기제들은 또 새로운 눈물로 이어진다. 이혼 소송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은 없으니, 니콜과 찰리도 어안이 벙벙하다. 법정에 들어선 순간부터 '있을 수 있는 일들'은 '있을 수 없는 일들'로 그려진다. 순간순간의 노력이나 일상적인 행동들이 끔찍한 단어로 표현되고 있었다.


관계가 깨진 파편으로 투우 경기장의 소처럼 상처 입은 니콜과 찰리와는 달리, 제도의 해체를 돕고 있는 변호사들에게 이 과정은 상처가 아니다. 그들은 존 레전드가 공연하는 자선 행사에 참여할 이야기를 하고, 첨예한 대화를 하다가도 점심 메뉴를 함께 고른다. 그들의 세계, 이혼 법정은 그런 곳이다. 사람의 고통보다, 들여다보아야 할 감정보다 이길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곳.


역설적이지만 이 싸움이 시작된 이유도 그것이었다.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두 사람은 제대로 대화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니콜은 찰리의 메일을 해킹했고, 찰리는 주변 사람들의 입으로만 니콜의 마음을 듣는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 마음에만 쌓여있던 대화들이 이런 식으로 서로를 할퀴며 폭주한다. 싸울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방금까지 머리카락을 내맡기고, 머리를 잘라주던 이들은 이제 나란히 서서, 힘을 합쳐서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문을 닫는다.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들의 대화가 그 후에야 시작된다. 서로를 너무 잘 알지만, 잘 알기에 적당히 속단하고 넘어갔던 것들.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부터 듣고, 서로가 원하는 것도 들어야 했는데. 뒤늦은 대화에는 원망이 섞이고, 눈덩이처럼 커진다. 결국 서로를 상처 내기 위한 상처까지 주고받지만, 스스로도 스스로가 싫어질 만큼 괴로운 말을 주고받은 후에야, 그렇게 바닥을 본 후에야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나오기도 한다. 미안하다는 말이.


하지만 그런 마음도 결국에는 타이밍이다. 뒤늦게 돌면 사탕을 받을 수 없는 할로윈의 밤처럼.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시퀀스의 할로윈, 비틀스 의상을 입은 사람들 사이 혼자만 침대 시트를 뒤집어쓴 찰리의 모습은 영화 <고스트 스토리>를 연상케 한다. 결혼이라는 관계가 죽은 자리, 아직 사라지지 않고 고요하게 남은 어떤 것들.



두 사람은 같은 뮤지컬 넘버로 쓰인 다른 노래를 부른다. 니콜은 엄마와 언니와 밝게 웃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You could drive a person crazy>를, 찰리는 조금 어둑한 술집에서 동료들에게 이혼 소회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Being Alive>를.


뮤지컬 <컴퍼니>는 친구 커플들에 둘러싸인 미혼 남성 로버트를 둘러싼 이야기라고 한다. 니콜이 부른 노래는 로버트의 여자친구들의 화난 속내를 담은 곡으로, "바비(로버트)는 내게 취미고, 이제 끝났어!" 하면서 끝난다. 찰리가 부른 노래는 로버트의 깊은 마음이 들어간 감성적인 곡인데, 곡 초반과 후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지나치게 가깝고, 내게 상처를 내고, 자리를 빼앗고 잠도 못 자게 하고. 그러나 상호의 묵인 하에 상호로 이루어진다면 그건 그냥 삶의 파편일 뿐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서로 사랑하는 삶의 한 조각. "혼자는 혼자일 뿐, 살아있는 게 아니다"는 찰리의 노래 가사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런 조각은 나쁘지 않은 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혼으로 달려가고 있어도 결혼 이야기이다. 결혼생활 속에서 켜켜이 쌓여, 진심 앞을 가린 것들을 걷어내는. 할로윈 의상을 입으러 들어간 가족들이 모두 문을 닫아도, 닫히지 않은 하나의 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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