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인도까지

써니디디의 첫 번째 이야기

by 선이정

2012년이 끝나가던 무렵의 추운 날이었고 나는 대학생이었다.


더 엄밀히 말하면 답 없는 대학생이었다. 막막하고 불안했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막연히 하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모두 먼 훗날 일처럼 여겨졌기에 딱히 해 놓은 건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나 나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중고등학교 때와 달리 대학교에서는 수업 안보다 그 밖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있었을 뿐이다. 낯선 이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몰랐던 세상을 더욱 알아가면서 나는 수업 교과보다는 다른 걸 더 많이 공부하고 있었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인간에 대한 관심이랄까.


하지만 미래를 계획하고 차곡차곡 했다기보단 그냥 주어지는 상황에 맞게 반응하며 살고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의문점이 발화된 게 그 즈음이었다. 부족한 체력과 시간, 점점 많아지는 과제와 할 일들, 그 안에서 이제는 적당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였다. 모 아니면 도 같이 똑 떨어지는 정답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우선순위의 미묘한 균형 문제라 더 어려웠다. 통과의례처럼 들어간 진로 상담 수업에서도 나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진단받게 되었다.


나 같은 학생이 진로 잡기가 제일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차라리 꿈이 없는 것보다 막연한 꿈만 많은 사람이 더 어렵다고, 차를 홀짝이는 교수님의 컵에는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는 문구가 어지러이 적혀 있었지만, 나는 놀랐고 또 두려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님의 말씀은 이어졌다.


어디에도 별 마음 없는 사람은 때 되면 수순처럼 취업 준비를 착착 하겠지만, 나처럼 밑그림 하나 없이 얕은 관심사만 여러 군데 걸치고 다니는 사람은 이거 할까 저거 할까 고민만 하다 허송세월 보내기 딱 쉽다는 맥락의 이야기였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어 정곡을 푹 찔리고, 고민은 깊어만 갔다. 뭘 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


끝없는 고민은 밤잠을 훔쳐가서,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기만 한 달 남짓. 그 체할 것 같은 마음을 그대로 안고, 2012년 12월 26일 인도로 떠나게 되었다. 명목은 "1월 한 달 동안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NGO 소관으로 가는 단기 봉사 활동"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분쟁 피해 어린이들이 사는 집"과, "HIV/AIDS 관련 사업장" 방문.


그러나 가기 직전까지도 나는 그게 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다만 동아리 대표로서 안 그런 척 태연한 얼굴을 하려 애를 썼고, 결국 안 갈 수가 없어서 울면서 갔다. 날씨가 어떻고 뭐가 필요한지 시시콜콜 따져보지도 않은 채 대강 눈에 보이는 옷이며 생필품을 처박아 넣은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나는 인도로 떠났다.


나는 이렇게, 인도와 처음 만났다. 인도에서도 유난히 덥다는 남부의 한 도시에서. 누굴 만나게 될 지도 모른 채, 그들을 만나러 인도에 다시 가게 될 거란 것도 모른 채.



인도의 첫인상은 나 자신의 무지(無知)였다. 그 동안 가 본 다른 나라를 처음 밟았을 땐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생소함.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나기 무섭게 짐만 싸 들고 곧장 온 거라, 밤샘을 밥 먹듯 하고 왔기에 자연히 느껴지는 피로. 그리고 짐 쌀 땐 차마 (나만) 생각하지 못했던, 낯선 1월의 더위.


팀원들 모두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고 왔기 때문에 다들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나보단 나아 보였다. 변변한 반팔 티 하나도 없이, 대신 아무 생각 없이 서울에서 입던 기모 청바지를 그대로 입고 온 나는 스스로도 황당했다. 인도에서 기모 청바지라니!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뇌가 생각을 멈출 수 있었을까? 일주일 전의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지? 더위에 지칠수록 스스로에 대한 분노도 마음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결국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는 팀원들 상태를 보다 못한 현지 간사님들께서 낮잠 시간도 주시고 하루 휴일도 주시는 등 온갖 배려를 해 주신 덕에, 팀은 조금씩 안정적인 분위기로 들어갔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예외였다. 나는 하루가 끝날 때마다 돌아갈 때까지 며칠이나 남았는지 헤아리며 잠들곤 했다. 그러니 서울의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만들던 진로 고민의 답을 거기서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그 때도 그게 답인지는 몰랐다.


도착한 지 딱 일주일 되던 날 낮잠 시간. 나는 문제의 기모 청바지를 날려버릴 기세로 벗어 던지고 누웠다. 피곤했던 몸이라 솔솔 잠에 들면서도 마음속에는 계속 분노가 끓었다. “날씨 리서치를 해준 걸 보고도 짐을 이렇게 싸온 내가 멍청이지. 일주일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진짜 좋겠다. 그럼 짐을 제대로 싸서 다시 출발할 텐데.” 하면서 분노를 삭이고 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걸 보고 안타까워한 적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이 그런 적 없었다. 나름대로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해 왔는데도 그랬다. 밥을 먹지 못하거나 하는 일에는 마음이 아팠어도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게 괴롭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다. 먼지와 때에 가려 본래 빛을 알아볼 수 없는 겨울 패딩을 덮고 누워 있던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아도, 순간순간 마음이 불편했던 적은 있어도 다 잠깐 후면 잊힐 정도의 무게였다.


내가 옷을 제대로 못 입어 답답한 상황처럼 이렇게 오래 마음에서 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순간 없다는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일 주일 동안 들은 많은 이야기가 내 마음 속에 쏟아져 고민으로 얽혔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고아, 과부... 정의란 무엇인가?


그 중에서도 바로 며칠 전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도시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돕는 두 가족이 있는데 그들이 100% 자비량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고. 이를 NGO와 연결해서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있지만 직접 그 연결고리가 될 사람이 없어 일을 진행할 수가 없다, 고. 너무 안타깝지 않으냐, 고.


그러게요. 안타깝긴 하지만 그저 남의 일일 뿐이라 흘려 넘기며 고개를 끄덕거리던 그때의 내 자신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 흔한 <지구별 여행자> 한 번 읽어보지 않은, 그래서 한 번도 인도를 동경한 적도 관심도 없던 내가, 인도 여행도 아니고 와서 당분간 살 생각을 서서히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맥락 없고 즉흥적인 성격에서 생각이 튀어 오를 때마다 하는 방식대로 나를 다독였다. “이 마음 따라 내 다음 발걸음을 옮기고 싶어진다면 곧 내 안에서 이 생각을 또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때 고민하고 지금은 일단 지금 할 일을 하자.”


그래서 우선 벗어던진 기모 청바지를 잘 개켜 두고 잠을 푹 잤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가라앉은 마음으로 앉아서 조곤조곤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 왈칵 솟아난 마음은 대체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의식의 흐름대로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일, 장점과 단점 등을 종이에 쭉쭉 적어 내리면 생각이 좀 정리된다. 그때 고민 끝에 내린 생각은 이렇다. 인도에 다시 와서 에이즈 환자들을 도울 것-NGO의 손을 잡고 올 것, 진정한 ‘정의’가 무엇이고 정의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배우는 시간으로 보낼 것, 그러려면 인도에서 2년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 그런데 가족들은… 펜이 여기서 주춤거렸다. 가족들은 나를 응원하면서 보내줄까?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인도로 떠나기 불과 얼마 전에 인도 델리의 버스에서 대학생이 성폭행을 당한 기사가 처음 터지고, 그 반향으로 인도 성폭력 기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포털 메인에 오르내리던 때였다. 아예 인도 성폭행을 메인으로 다룬 다큐 프로그램도 있었다. 평소에 자주 접하지 못하는 인도를 우리는 수없이 많은 범죄 기사로만 연이어 접하고 있었다. 단기 봉사여행 길에도 부모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모른다. 그런 마당에 딸이 아예 그 땅으로 2년씩 뛰어든다는 얘기를 어느 부모님께서 편히 들으실 수 있을까.


그러나 고민은 고민이고 현실은 현실이었으므로, 어쨌든 그 후로 2주는 눈앞의 현실에 살았다. 낯선 외국인들은 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종족 박해 때문에 살던 터전을 빼앗긴 아이들, 에이즈에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 사연은 제각기 다양하게 안타까웠지만, 그 곳에서 만난 아이들 하나하나 참 사랑스러웠다. 그새 정이 깊이 들어 결국 마지막에는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에 아이들도 울고 팀원들도 울었다. 눈물을 닦아내고 밤비행기에 올랐다. 울적한 마음과 복잡한 마음, 그리운 마음을 접어 갈무리하며 그렇게 인도는 끝났다. 일단은.


그때 매일 들여다 보던 사진. 이 손을 다시 잡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차곡차곡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이 일과 관련된 분들에게 내 마음을 나누고 도움을 받았다. 현지 간사님과 NGO 사무실 분들은 참 감사하게도 인도를 사랑해본 적조차 없는 한 대학생이 더듬더듬 풀어내는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다. 잘 들어주시고 인도로 갈 수 있는 길을 같이 고민해 주셨다. 그 동안 나는 휴학을 하고 한국에서의 일상을 부지런히 살면서 인도까지 남은 시간을 가늠했다. 여태까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다. 현실에 발을 두고 곧 올,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한 건 별로 없었다. 한국에서 현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가서 뭘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므로, NGO 사무실에 인턴으로 두어 달 출근해 일 돌아가는 걸 배운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마음의 준비였다. 말로 풀어 보면 별 거 아니지만 시시각각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시간이었다.


매 순간 두근거리고 기대만 됐던 건 아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싸워야 했던 순간도 있다. 가서 죽으면 어떡하지? 가서 성폭행을 당하면 어떡하지? 가서 2년을 지내고 돌아온 내 앞길이 막히면 어떡하지? 안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걸 더 잘 알았지만, 어쨌든 마음속에서는 이런 질문들과 한판승을 치러야만 떠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한판승을 치르기까지 두려움과 샅바를 붙잡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시간 동안은 문자 그대로 덜덜 떨렸다. 두려움이 먼발치에 있을 때와 내 숨통 앞에 있을 때의 기분은 전혀 다른 것이므로. 한동안 인도 성폭행 관련 기사는 헤드라인만 보면 피해 버렸으며 성폭행이란 단어를 차마 입에 담지도 못했다. 그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말씀드리면 NGO에서도, 현지에서도 다 이해해 주실 것 같은데.’ 생각하며 울었던 밤도 있다. 두려움은 불확실한 것들 중에서 최악이 확정된 것처럼 거짓말하며 나를 몰아붙였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두려움을 메친 힘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 목록이 에이즈 환자들의 삶에서 빼앗기는 것과 똑같다는 걸 깨닫는 데에서 왔다. 그들은 생명을, 건강하고 건전한 성 생활을, 푸른 꿈 가득한 미래를 잃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이 두려움은 그들의 일상에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의 곁으로 간다는 건 이런 의미였다. 나는 그쪽으로 걷고 있기에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으니 계속해서 걷자고 다시 결심한 순간 두려움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여러 번 마음의 고비를 넘기며, 비록 몸은 여전히 한국에 있었으나 마음속에선 산 넘고 바다 건너 이미 인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사람들과 인사를 해야 하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한비야처럼 씩씩하게 여행을 다니던 사람도 아니고 무슨 전문성을 갖춰 NGO에 잔뼈가 굵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NGO라는 단어를 들어본 지도 몇 년 되지 않은 그냥 대학생일 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한 마음의 준비란 건 정말 하찮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그러나 인간 보편적으로 가진 어떤 것들이었다. 차라리 빨리 갔다 빨리 오라며 엄마가 눈물 보이실 때, 힘들진 않으냐며 아빠가 걱정하실 때마다 마음에 엄청 무거운 돌 하나가 얹히는 기분을 받곤 했다. 키우던 고양이의 새 주인을 찾아 그 집에 고양이를 두고 돌아오는 길에도 많이 울었다.


두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두근거리는 기대감, 그리고 불안감. 어떻게 보면 지금 딛고 있는 땅에서 발을 떼고 있는 건데 다시 다음 발자국으로 땅에 닿을 때까지는 이 상반된 두 마음이 동시에 있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사실 내 마음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상황과 상관없이, 감정과 상관없이 나는 결정을 내렸고 시간은 흐르고 그 끝에서 정말 나는 가게 될 거니까.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를 달릴 때에는 엄청난 속도를 느낄 수 있지만 정작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훨씬 속도가 더 빠른데도 나는 그다지 느낄 수 없듯이, 허덕이던 순간들을 뒤로 하고 이제 드디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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