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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un 01. 2024

사랑 안에서 다르지 않으므로

영화 <너와 나> 리뷰

SYNOPSIS.

“오늘은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오후, 세미는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 하은에게로 향한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마음을 오늘은 반드시 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쳐흐르는 마음과 달리 자꾸만 어긋나는 두 사람. 서툰 오해와 상처를 뒤로하고, 세미는 하은에게 진심을 고백할 수 있을까?


POINT.

✔️ 배우로서도 뛰어나지만 감독으로도 이미 많은 기대를 받고 있던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

✔️ 세월호를 '논하는' 영화가 아니라 '느끼게 하는' 영화. 마음 앓게 하는 영화.

✔️ 각본과 연출이 매우 섬세합니다. 여고생의 삶을 이토록 여고생답게 표현한 작품도 흔치 않은 듯해요.

✔️ 필터를 뽀얗게 쓴 화면 위로 흐르는 오혁의 음악. (너무 좋은데 음원 왜 안 내주세요?)



  누군가의 사랑이 깃든 자리는 언제나 은은한 빛이 난다. 아주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했어도 애정을 가득 받은 영화들 또한 그렇다. 볼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상영 시기를 놓쳐 못 보았던 이 영화를 결국 보게 된 건, 세월호에 관한 다큐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보인 진득한 애정 때문이었다. 너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서술이 너무 어렵다. 딱 떨어지는 문장과 내 마음을 가장 적절히 표현할 단어를 고르기가 매우 어려워 "하..." 혹은 "너무 좋아요." 따위의 말이나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서 익숙한 표정과 문장을 본 날,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려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거나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내가 왜 이러지. <러브레터>를 처음 봤던 17살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이 난 적은 많아도, 보고 나서도 그 감정이 너무 얼얼하게 내 안에 남아 계속 울게 되다니.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이 마치 내상 같았다. 간접 경험만으로도 이렇게 아픈데 이 마음으로 10년을 살았다니, 살고 있다니. 그 주간 내내 세월호 관련된 영화를 두세 편 보았는데, 나중에는 약간 몸살 기운마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건 그러므로, 자학이 아닐까. 너무 좋았지만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다시 보고 싶었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두 번째 영화관에 들어섰을 때, 마침내 안심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세월호를 정면으로 품고 있고, 그렇기에 아프지 않을 방법이 없지만, 그래도 이 아픔을 뒤덮는 넉넉한 사랑을 함께 품고 있다. 그래서 아프지만 아름답다. 이래도 저래도 아플 거라면 아름답게 아프고 말겠다.




꿈과 현실이 뽀얗게 엉킨 자리

  언급했듯 이 영화는 세월호의 존재감을 숨기지 않는다. 영문 자막 버전으로 영화를 보면 아예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까만 화면 위로 텍스트를 띄워 세월호 사건을 설명한다. 그리고 2014년 4월의 어느 봄날, 이라는 말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다리를 다쳐서 수학여행을 갈 수 없는 하은(김시은)과, 이상한 꿈을 꾸고 나서 불안한 마음에 하은을 찾아가 수학여행을 같이 가자고 하는 세미(박혜수)의 하루를 담은 영화다. 한동안 수학여행이라는 단어 자체에 움찔하던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 수학여행의 비극을 피부로 알고 있고, 그렇기에 두 아이의 뽀얀 하루를 따라가는 기분이 매우 기묘하다.


  그래서일까. 두 아이의 뽀얀 하루는 현실인 듯 꿈인 듯 아룽아룽거린다. 시계와 거울이 유난히 많고 곳곳에 나비가 붙어 있고 필터가 2000년대 일본 영화처럼 뽀얀... 그 자리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여고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아득하게 흐려진다. 어쩜 이 모든 게 거대한 꿈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할 때쯤, 죽음 너머 아득한 미래에서 보기엔 이 현실도 꿈같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언젠가 내가 죽은 후에 지금 이 시간을 누군가 영상으로 재생해 보여준다면, 꿈처럼 보이겠지.



  내일을 모르고 오늘을 사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여기, 관객의 자리가 그 아득한 미래다. 내일을 알아버린 자들이 내일 너머에서 보고 있기에 모든 순간은 더 영롱하게 빛난다.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구할 거냐는 흔한 질문도 그렇지만, 모든 말이 사무친다. 왜 죽는 걸까 하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빵을 우걱우걱 먹으며 "정답!"을 외치고는 '늙고 병들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늙지도 병들지도 않은 아이들은 왜 죽음을 건너가야 했을까. 흉 지면 안되니까 물 닿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신신당부하셨는데 물에 닿아 버려서, 흉 지지 않게 아껴주고만 싶었던 손에 물이 닿아 버려서 어쩌지.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다.


  실제로 이 영화 속에서 꿈과 현실은 원을 그리듯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를 세월호 안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날 떠난 건 너만도 나만도 아니고 우리였음을, 너와 나였음을 깨닫게 한다.



그 안에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두 고등학생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이기도 한데, 보는 내내 어떻게 십 대 여고생의 사고체계와 관계 방식은 물론 말투와 머리 묶는 방식까지도 저렇게 현실성 있게 구현했는지 감탄했다. 뭐 나도 십 대 여고생이었던 시절에서 많이 멀어져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의 모양이나 양상은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감 있게 그려낸 여고생 캐릭터들을 통해, '너와 나'는 그 비극 안에 놓인 것이 숫자나 사건이기 이전에 사람이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마음은 두둥실 떠오르는데, 그 마음을 건네는 일은 너무나 어렵고, 그 서툰 모습에 스스로 괴로워질 때도 있고... 내 감정조차 이리저리 탁구공처럼 튀는 나이. 그 느낌이 무엇인지 너무 알겠어서, 기쁨도 괴로움도 양극단으로 치닫는 첫사랑의 타격을 마음 어딘가 깊이 기억하고 있어서, 세미와 하은은 내게 남이 아니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세미가 노래방에서 <체념>을 부르는 장면이 너무나 슬퍼, 그 장면부터 펑펑 울기 시작한다. "널 보내는 게 널 떠나보내는 게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다면서도, "그래 더 이상 묻지 않을게 내 곁을 떠나고 싶다면 돌아보지 말고 떠나가" 하고 노래하는 그 장면이... 어떻게 보면 우스울 만큼 진지한 그 장면이 나는 너무 슬펐다. 사랑하면 원래 모든 사랑 노래가 자기 이야기가 된다지만... 혼자서 좋아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이별하고 웃었다 울었다 하는 그 풋풋한 사랑.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있고 싶고, 더 받고 싶어서, 솔직하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마음. 게다가 "다신 사랑 같은 거 하지 않을래 내 마지막 사랑은 돌아선 너에게 주고 싶어서"라는 가사가 이들의 내일과 묘하게 겹치면서 더욱 슬퍼지고 만다.



  <체념> 장면에서 울었다는 말을 들은 주변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내 두 번째 눈물 버튼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모두의 눈물 버튼이다. 바로 세미와 하은이가 진식이를 따라간 컨테이너 박스에서, 진식이 아니 똘똘이 주인(정해연)이 울면서 강아지를 부르는 장면. 하은이는 보지 못하고 세미는 본 그 컨테이너 박스 안, 말간 눈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강아지들이,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고 우는 목소리가, 어떤 배와 겹쳐서 누구라도 울지 않을 수 없는 장면 말이다.


  세월호의 이미지는 이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변주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바다도 배도 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다. 그날의 처참했던 기억을, 어떤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죽어 누워 있음을 처참하게 깨달았던 그 시기를.



사랑한다는 말 하나로 일깨워지는

  그 괴로운 상처를 이 영화는 넉넉한 사랑으로 뒤덮는다. 사랑한다는 말 하나로 일깨워지는 작고 소중한 순간들. 언젠가 하나하나 다 사무치게 될 줄 아직 모르기에 더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들 위로, 그 모든 순간들을 깨뜨린 비극 위로, 사랑이 속살거리며 내려앉는다.


  아픔은 쉬이 위로되지 않을 것이다. 상처는 쉬이 낫지 않는다. 올 4월은 세월호 이후 10주기라는 기억할 만한 해였음에도, 곧 있을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방송은 취소되었고, 10주기를 기하여 나온 다큐멘터리들은 정작 몇 년 전의 다큐멘터리들보다도 상영시간표 찾기가 힘들었다. 누구를 탓할 수는 없지만, 개봉 시기에 맞추어 특정 감독의 기획전을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티겟 파워가 있는 다른 중요한 행사들도 있었겠지만, 관객 입장 또 시민 입장에서 몇날며칠 상영시간표를 뒤적거리면서 일정을 가늠해 보다 한숨 쉴 만큼 속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만난 이 영화는 사랑한다는 말로, 모든 아픔은 아니더라도 어떤 아픔은 확실히 녹여냈다.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싶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 조금은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다시 마주할 것이다. 그 배에 있던 것은 숫자가 아닌 사람이므로. 그 사람 각자는 사랑한다는 말에 감싸인 귀한 존재들이므로. 아주 먼 미래에서 보기엔 지금 나의 현실 또한 꿈처럼 아득할 것이므로. 너와 나는, 사랑 안에서 다르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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