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석류의 빛깔> 리뷰
DIRECTOR.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CAST. 소피코 치아우렐리, 스파탁 바가슈빌리 외
SYNOPSIS.
“창문으로 세상을 봅니다. 창문 너머에 세상이 있습니다”
18세기 아르메니아 시인 ‘사야트 노바’.
그의 일생을 은유와 상징으로 담은 이미지를 색, 빛, 소리, 향기로 빚어낸 영화사에 다시없을 경이로운 걸작
관객은 이 영화를 정갈한 안내문의 글자로 처음 맞닥뜨리게 된다. 지금부터 우리가 볼 영화는 아르메니아 국립영화보관소에 있던 것을 보관한 것이며,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곳은 '구 소련'이었기에 검열관이 편집한 버전의 영화도 존재한다고. 본디 검열을 거치기 전 이 영화가 그리고자 했던 시인의 이름을 담아 '사야트 노바(Sayat Nova)'라는 제목이었으나, 소련 공산당 눈에 곱게 보이지 않았던 이 영화는 결국 <석류의 빛깔>이라는 제목으로 편집되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감독은 국가의 검열을 받는 감독이 된다.
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궁금해하는 동안 내 눈에는 매우 낯선 문자가 화면에 떠오른다. 흰 글씨로 새겨지는 스태프들의 이름은. 안무도 감독이 직접 했고, 보석 디자이너도 참여했으며, 소피코 치아우렐리라는 배우가 역할을 다섯 개 정도 했다는 정보를 파악하면서, 이 낯선 문자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궁금해한다.
이 영화는 "시인의 내면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전기 영화"로, 아르메니아 음유 시의 방식으로 작업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전기 영화의 방식을 따르지는 않았으나, 사야트 노바라는 시인의 삶을 담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아무 배경 지식 없이 보아도 "나의 삶과 내 영혼은 고통이다"라는 시인의 목소리는 이미지 심상을 타고 전해진다. 석류와 칼이 놓인 흰 천이 붉게 물들고, 포도알이 짓밟히는 이미지는 감각적이지만 고통의 은유를 잔혹한 빛깔로 전한다.
번개 소리치는 밤 책이 다 젖어들고, "무엇보다도 책을 잘 읽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으며 소년은 책과 함께 조금씩 말라간다. 어른들은 카펫을 빨고 베틀을 돌리고 실을 염색한다. 백마 탄 성인에게 드리는 기도를 들으며, 관념 속 백마가 지나간다. 내러티브로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아마도 유년기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런 모양이 아니었겠나 싶은, 현실에 섞여든 꿈처럼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그러나 종잇장처럼 흘러간 어린 시절은 길지 않고, 사랑과 진리를 찾아 헤매는 시인의 청년기는 더더욱 짧게 느껴진다. 여인과 함께 레이스를 짜고 손에 쥐어 보는 시간은 지나가고, 시인은 세속적 사랑을 떠나 수도원으로 여정을 떠난다. 성직자가 주관하는 생로병사의 의식과 노동 안에서 성직의 날들이 흘러가지만, 이 시간이 시인의 고통을 줄여 주지는 않는다. 아르메니아 총대주교의 사망 이후 장례식에서 시인이 본 것은 정갈한 수의가 아닌, 욕망의 육신이었다.
세상에는 갖은 아름다움이 있지만 시인은 계속해서 고통을 감지하며 사랑과 진리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 "사망이 페르시아인"의 얼굴을 하고 온다. 사랑스러운 이들이 상처받는 날들이 온다. 어린양을 잡아 고기를 삶아 일곱 접시에 나눠 담는 종교적 행위, 사람들의 노력은 정복자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노래를 계속 부르던 시인에게 마침내 죽음의 시간이 온다. 지쳐서 떠나고 싶다던 이에게 마침내, 끝이 온다. 한 생에 걸친 노래와 불안들이, 그렇게 지나간다.
실제 사야트 노바라는 시인에 대해 몰라도, 아르메니아의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해도, 영화가 선형적 서사를 담고 있지 않아도, 정교하게 채색된 중세 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인의 마음이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마치 자기 모국이라고 부를 법한 땅의 상처를 들이마시면서 사는 존재 같다. 남들에게는 평범할 호흡도 그에게는 유리조각이 섞인 숨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그는 걷고 말하고 종잇장을 넘기고 실에 색을 입히고 흙과 혹은 양털과 가까워지는 모든 생애의 순간순간 제 땅의 상처를 몸에 흡수하며 살았다. 그렇게 땅의 상처를 끌어안는 것이, 남들이 다 아파하는 일들과, 남들이 다 아파하지 않는 부분까지 아파하며 사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려니 한다. 이 영화는 그 불안과 고통을 염료 삼아 그려낸 작품이다. 그래서 잔인하고도 아름답다.
실제 시인 사야트 노바는 18세기 아르메니아에 살았다. 그 시절 아르메니아는 사파비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이 각축을 벌이는 현장이었다. 쪼개지고 합병되고 갈라지고 쟁탈되며, 상처 나을 새 없이 새로운 생채기가 생겨나는 수백 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강제 이주도 당하고 살해도 당하고 굶주림에도 시달렸다.
강대국의 학살과 횡포는 18세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20세기 초에도 오스만 제국이 자행한 대학살과 강제 노동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면서 아르메니아도 조각조각 독립하지만, 조지아나 아제르바이잔 등 주변국과의 전쟁도 치러야만 했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의 후예가 된 터키에서도 다시 아르메니아를 침공해 오고, 소련에서도 여기 무기과 자금을 얹으면서 결국 아르메니아는 소련에 함락된다. 1922년부터 소련이 붕괴하는 1991년까지 아르메니아는 그렇게 소비에트 연방의 공화국이 된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감독의 생애는 아르메니아가 소련에 속했던 시기와 비슷하다. 1924년에 태어나 1990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그의 전 생애는 소련 치하에 있었다. 아르메니아계로 태어나고 자라 영화인이 되었지만, 소련에서 승인하고 권장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환멸을 느꼈다. <석류의 빛깔>은 여러 의미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척점에 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리얼리즘과 거리가 먼 각종 상징으로 가득한 낭만주의적 색채에, 사회주의에서 학을 뗄 만큼 민족주의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아르메니아의 전통 예술을 가득 품고 있고, 사야트 노바 개인의 삶은 물론 영화의 곳곳에서도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하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의 한 갈래인 정교회와 연관성이 깊은 국가다. 사야트 노바 또한 정교회 교도로서 이슬람 침입자의 손에 사망했다 전해진다. 오스만 제국과의 관계는 물론 아제르바이잔 같은 주변국들의 관계에서도 종교는 주요한 차이점으로 부각된다.) 쉽게 예측할 수 있듯, 소련의 검열관들은 이 영화의 민족성과 종교성을 들어 수정을 요구하고, 공개도 제한적으로만 진행되었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감독이 <석류의 빛깔> 이전에 만든 작품 또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색채가 강해 소련 당국에서 주목하고 있었다. 갑자기 웬 우크라이나? 이는 우크라이나도 아르메니아도 모두 소련이라는 연방 하에 묶여있었다는 사유와 함께, 당시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에 저항하는 흐름이 우크라이나 문화계에서 형형하게 드러났다는 사유를 들 수 있다. 두 편의 영화로 파라자노프는 '주요 인물'이 되었고, 소련 당국은 파라자노프 감독을 "동성애,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해 감옥에 보낸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인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수년을 보내야 했다. <석류의 빛깔>이 1960년대 말에 나왔는데, 그의 다음 영화는 1985년에야 나올 수 있었다.
파라자노프 감독이 사야트 노바에 대해 느낀 감정이 어땠는지, 이 영화에서 표현된 이상의 내용을 나는 모른다. 다만 후대의 시선으로 볼 때 그 두 삶에서 어떤 접점이 느껴진다. 땅에 새겨진 상처는 18세기에도 20세기에도 계속되고 있었고, 그 상처를 마시고 석류알로 토해내는 시인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흔적이 여기, 여전히 칼에 짓이겨진 석류 즙처럼 뚝뚝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