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왕이 되기까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리뷰

by 선이정

DIRECTOR. 장항준

CAST.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김민 외

SYNOPSIS.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계유정난이 조선을 뒤흔들고 어린 왕 이홍위는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길에 오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대감을 우리 광천골로 오게 해야지”

한편,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는 먹고 살기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촌장이 부푼 꿈으로 맞이한 이는 왕위에서 쫓겨난 이홍위였다. 유배지를 지키는 보수주인으로서 그의 모든 일상을 감시해야만 하는 촌장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이홍위가 점점 신경 쓰이는데…

1457년 청령포, 역사가 지우려 했던 이야기.


*영화의 내용에 대한 상세한 언급이 있는 글입니다. 역사가 스포일러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보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포스터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에 박지훈, 한명회에 유지태, 그리고 단종이 유배 간 영월 마을 이장으로 유해진을 캐스팅했다는 소식 그 하나로 충분했다. 우리는 이미 박지훈이 어떤 눈으로 (그리고 어떤 눈물로) 감정을 전하는지 잘 알고, 유해진이 사극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여행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리라는 것을 알며, 유지태가 어떤 위압감 있는 연기를 펼치는지 잘 안다.


예상대로 배우들의 존재감이 적재적소에서 활용된다. 유지태는 목소리만으로, 미동이 크지 않은 표정만으로, 걸음걸이만으로, 권력의 심장부를 쥐락펴락하는 인간을 그려낸다. 얼굴이 드러나기 전부터 이미 위력이 전해진다. 그 위력에 밀리지 않고 단종을 향한 애정을 다양한 찡그림만으로 표현하는 전미도의 얼굴도 언급하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유해진은 극은 무게를 무겁게도 가볍게도 하면서, 원맨쇼처럼 수많은 장면들을 가지고 노는 듯 보인다. 박지훈은... 대체 윙크는 뭐하러 하러 건지? 그냥 울면 되었을 것을... 싶을 만큼, 눈물 하나로 그 안의 다양한 감정을 전해온다.



특히나 한명회-단종의 대치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무척 인상적이다. 화려한 붉은색 옷으로 몸을 감싼 한명회와 대비되는, 입술 끝부터 옷자락 끝까지 모든 채도를 빼앗긴 것만 같은 단종의 버석한 표정. 다시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늙은 늑대와 새끼호랑이처럼 서슬 퍼런 대치를 벌이는 장면. 유지태와 박지훈이라는 두 배우의 힘이 스크린 너머로 형형하게 전달한다.



다만 아쉬운 지점 또한, 너무 잘하는 배우들을 너무 잘할 것 같은 자리에 두었다는 사유로 발생하는 기시감에서 온다. 주연급에 유해진이 있을 때 꼭 조연급으로 오달수와 이준혁이 같이 있어야 했을까?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역할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들이 나란히 붙는 순간, 아무 대사도 하기 전부터 이미 클리셰 같은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특히나 오달수는 성범죄 의혹으로 활동을 중단했으나, “서로 기억이 다르다. 연애 감정이 있었다”며 의혹을 부인해 왔다. “의혹을 제기한 분들께 따로 사과하거나 얘기를 나누진 않았다. 만약 그들이 지금도 불편함을 느낀다면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하면서도, 공소시효 만료된 건이라 법적 진위를 다툴 수 없는 건인 상태로 은근슬쩍 복귀했다. 영화를 선택한다고 배우를 고를 수는 없는 입장인 관객으로서, 밝혀지지 않고 은근히 넘어간 의혹을 떠올리게 되는 일은 관람에 다소 방해가 된다.



그래도 이 영화가 단종에게 주고자 한 마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단종에게 이러한 마음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깊었다. 단종은 지금까지 비련한 피해자, 폭력에 당한 어린이의 이미지로 많이 그려졌다. 아무래도 그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단종을 단순히 폭력의 희생자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인 선택을 내린 왕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생각해 보면 단종이 당한 일은 단순히 권력의 찬탈이 아니라, 그가 발 딛고 살아온 세계가 부서지는 일이다. 인, 의, 예, 지, 신으로 구성된 유교의 말들은 산산조각 났고, 그 파열음은 신하들이 고문당하며 지르는 비명이 되어 그의 귀에 당도했다. 설령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 그가 복위에 성공했다 한들, 그의 세상은 다시 짜맞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의 눈 앞에 남은 건 죽음으로 가는 길뿐임이 자명했다.


영화는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를 다시 각인한다. 호랑이 화살 장면으로 그가 가진 왕의 자질을 보이고, 단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가 아님을 강조한다. 결국 죽고 만 것은 단종이라는 한 어린 왕이 아니라, 그가 품고 있던 정통성과 청청한 가능성이었다는 지점에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 당했다는 것, 그것이 단종애사의 슬픈 지점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특별출연한 이준혁의 금성대군 또한 인상깊지만, 그의 보다 적극적인 봉기 실패는 단종이 몇 걸음 걷다 맞이한 실패보다 덜 슬프다. 그는 나름의 가능성을 펼친 이이고, 단종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단종 이야기의 슬픔을 충분히 전달하는 동시에, 영화는 단종이 왕으로서 주체적인 걸음을 옮겼다는 그림을 전달하려 애쓴다. 비록 실록에는 세조의 이름이 이어졌고, 단종의 이름 뒤에는 ‘애사(哀史)’가 늘 붙지만, 그를 끌려간 어린이로만 두지 않고 스스로의 걸음을 내딛는 주체로서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은 그를 자연히 왕으로 성장시킨다.



마치 음식을 설명하러 자리에 찾아온 셰프처럼, 유해진이 연기하는 엄흥도는 단종에게 음식을 만든 마을 사람들의 열심을 설명한다. 그렇게 음식을 통해 단종은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의 왕국이 피어난다. 왕에 대한 존경과 연민을 품은 이들,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로 넓어지고 펼쳐지는 왕(이었던 자). 이내 계급이 있는 세계에서 밥을 나누고 글도 나누는 자리로 변모한다. 서로의 지식, 각자가 잘하는 것들이 서로에게 전달된다. 남녀노소 무엇도 문제되지 않는 곳에서, 모두의 이름자가 적힌다.



이 영화는 고문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시작했다. 수양을 꾸짖고 한명회를 꾸짖으며 단종을 향한 충정을 말하는 목소리들로 시작해서, 단종을 향한 마지막 충정과 애정으로 영화를 닫는다. 그 가운데 달라진 건 딱 하나, 모든 목소리를 부담으로 받아들이던 어린 소년이 이제는 신하들의 충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왕의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이로서 무너졌던 인, 의, 예, 지, 신의 세계도 복구된다. 단종이 왕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호사다.


이렇게 영화는 가련한 소년이었던 단종을 비로소 잠시나마, 작게나마 왕위에 올린다. 그것도 원래의 왕위보다 더 높은, 민주적이고 주체적이고 의리 있는 왕. 현대의 우리가 정치자들에게 기대하는 요소까지도 품은, 밥상과 나눔으로 사람들과 연결된 왕,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왕으로. 그렇게 단종을 복권한다. 그리고 비로소 백성을 거느린 왕은 삶의 죽음의 경계선에서 “어떻게”를 중요시함으로써, 그 생에서 가능성과 함께 꺾인 정통성, 명분과 절차라는 이름마저 복원한다. 이미 <광해>를 비롯한 여러 사극이 갔던 안전한 길이라는 사실에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이만하면 유의미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단종 당사자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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