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룸 넥스트 도어> 리뷰
DIRECTOR. 페드로 알모도바르
CAST.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 외
SYNOPSIS.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오래전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절친한 친구 ‘마사’(틸다 스윈튼)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간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시간 동안의 안부를 묻고 서로가 처한 현재의 문제에 대해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중요한 순간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인 <어떻게 지내요>를 읽을 때 내가 떠올린 색감은 뽀얀 진줏빛과 옅은 회색이었다. 옅은 회색 벽에 테이프를 주욱 두른 다음, 뽀얀 진줏빛 페인트를 둘러 바르고 테이프를 제거한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삶이라는 것의 핵심 위에 테이프를 붙이고 페인트를 바른 후 테이프를 제거해, 변죽을 울리는 방식으로 삶이 무엇인지 말하는 작품 같았달까. 실제로 소설은 사소하고 미소한 대화들로 많이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지내요? 그 질문처럼.
그러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맞닥뜨린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알모도바르 영화의 인장처럼 온통 알록달록한 색깔들이었다. 종군기자도 작가도, 빨갛고 파란 옷을 입고 다니고, 원색의 컵과 접시를 앞에 둔 채 청록색 소파에 앉아 있다. 온통 예쁜 그릇을 사용하고 예쁜 색의 차를 타고 다닌다. 얼마든지 어여쁜 것들을 두고 두를 수 있는 곳이 삶이다. 그러나 동시에 회색이기도 한 것이 삶이다. 영화에 나오는 말처럼, 극도의 행복(euphoria)과 우울(depression) 사이를 흔들흔들 오가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오래 전 함께 글을 쓰던 두 사람은 이제 서로 다른 글을 쓴다. 줄리안 무어가 분한 잉그리드는 유명 작가가 되었고, 틸다 스윈튼의 마사는 매일 전장과 맞닿아 글을 쓰던 종군 기자다. 그리고 이제 그는 몸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일이 삶이 되었던 삶에서, 아직 떠날 준비가 되지 않은 파티를, 정리해야만 한다. 그 순간 삶의 상처, 그 공간 틈으로 비명 소리도 들리고 총 소리도 들리고 그 모든 끝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속살속살 들려온다.
이 영화는 전쟁 같은 삶의 순간들을 함꼐 지냈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만남을 담았다. 마사와 잉그리드 뿐만 아니라 마사의 동료도, 한때 연인이었던 남자도 그렇다. 이들 사이에서 가닥가닥 쳐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삶이란... 전쟁을 버티게 하는 사랑과, 진창을 구르지 않게 지켜주는 이야기들의 도합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잉그리드와 PT 트레이너와 마음을 열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대화가 시작된 것처럼.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조차 서점은 멋진 곳이고 대화는 노래가 되는 것처럼.
그럼에도 끝은 온다. 사랑과 전쟁이 가득한 삶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온다. "내가 쓸 때"라고 말하다 "내가 썼을 때"라고, 과거형으로 정정하며 문장을 골라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하지만 그것조차 쓰는 행위이다.
그렇게 보면 쓰기란 본질적으로 삶의 은유가 아닌가 싶다. 동시에 쓴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생각한다. 내가 하는 행위이지만, 내가 어떤 결과물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쓰고 안 쓰고, 를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처럼도 같다. 정신을 차려 보면 쓰고 있다. 그 결과가 날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모르는 채로.
언젠가 죽음이 이 육체를 뒤덮고,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날들이 올 것이다. 기쁨이 메마른 듯한 날들이 올지도 모른다. 그 메마른 계절의 끝에 소생은 없을지 모른다. 마사가 말하듯 "little of myself", 나 자신이 거의 다 사라진 것 같은 날들이 올 것이다.
반대로 그렇게 사라지는 사랑을 상실하는 자리에 서 있는 날들도 올 것이다. 마음이 빙산처럼 조각조각 깨져 멀리멀리 흩어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게 되는 날들. 사랑을 보내는 날들. 삶을 아주 쓰디쓰고 거칠게 요약한다면 상실 끝의 상실이라고 비꼬듯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잉그리드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맞는 감정은, 사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응당 가져야 하나 무감해진 감정이라는 것. 지금도 우리의 '룸 넥스트 도어'에서는 이미 끔찍한 일들이 착착 나란히 행진하고 있지만, 그걸 매일매일 고스란히 느끼면서 산다는 건 인간에게 불가하다. 적당히 무감해지고, 죽음을 온전히 감각할 수 없다는 건 어쩌면 인간에게 축복이다. 그런 무감함이 없다면 우리는 삶을 상실의 연속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삶의 온기가 있는 자리에 안도의 미소가 있다. 그건 이 전쟁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혼자여선 안된다는 것에 기인한다. 고통스럽지만 이 방에서 우리는 서로의 호흡을, 고함을 들으면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래, 이 고통 속에서도. 그때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같이 바라볼 영화의 장면들과, 서로 기댈 때 스웨터의 감촉, 그렇게 하루하루 만들어가 언젠가 같이 이야기할 추억.
지금 고통스러운 어떤 '룸 넥스트 도어'를 생각한다. 그 안에서 울고 웃었던 이들의 삶을, 아직 남아있는 온기를, 끈덕지게 생각한다. 어떤 호흡을, 고함을, 그들의 생이 말하는 소리를, 계속 듣는다. 잉그리드처럼 작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열어 본다.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것 위로 눈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