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리뷰
DIRECTOR. 파올라 코텔레시
CAST. 파올라 코텔레시, 발레리오 마스따드리아 외
SYNOPSIS.
나라의 운명이 걸린 국민투표로 소란한 1946년 이탈리아. 과거에 없던 투표권이 생겼지만 여전히 발언권은 없는 산투치 가문의 며느리 델리아는 오늘도 딸 마르첼라의 결혼식 준비에 한창이다. 그러던 어느 날 델리아 앞으로 의문의 편지가 도착하고 델리아는 난생처음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우는데…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제목이 자꾸 헷갈렸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제목이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보니... <보니 앤 클라이드>라는 원제가 너무나 선명한 문장으로 번역되면서,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내게도 깊이 배어 있었나 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더 이상 제목이 헷갈릴 일은 없다. 이 영화에는 내일이 너무나 뚜렷하게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는 그 옛날 어느 영화와 달리, 이 영화 안에는 내일이 오늘 안에 이미 도래해 있다. '내일'이라는 단어보다 '있다'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다.
이 영화는 1946년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흑백영화다. 1946년의 이탈리아는 사회 전체가 무너진 상태, 나아가 재건을 막 시작하려는 단계였다. 1943년 무솔리니가 이끌던 파시스트 정권이 붕괴했고, 1945년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완전히 끝났다. 전쟁은 모두에게 잔인하지만 패전국에게는 더욱 가혹할 수밖에 없다. 주요 도시가 폭격을 맞으면서 많은 주택과 인프라가 붕괴된 상황에서, 식량 부족 문제는 배급제로 해결되고 있었다. 부유한 사람들은 암시장을 통해 어찌어찌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지만, 실업률은 높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살림살이는 쉽지 않았다.
나라의 앞길을 다져갈 길도 막막했다. 파시스트 독재 시기 선거라는 제도는 그저 형식적으로만 존재했고, 허수아비가 된 정치적 정당성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갈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1-2차 세계대전에 걸쳐 남성들이 모두 전쟁터로 징집되면서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졌고, 전쟁의 현장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들도 많았다. 이러한 여러 흐름이 맞닿아, 1945년 여성의 참정권이 법적으로 승인되었다.
다음 해인 1946년은 이 재건의 시작점으로서 아주 중요한 해였는데, 왕정 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와 제헌 의회를 구성하는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투표 결과 사보이 왕가가 퇴위하고 이탈리아 공화국이 탄생하기 때문에 전후 이탈리아라는 국가를 재건하는 아주 중요한 해였다. 이 해에 마침내 이탈리아 여성들이 소중한 첫 참정권을 행사한다. 이 영화는 그 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그 배경에 대한 이해는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음악과 함께 잊힌다. 영화가 조망하는 것은 그 거시적인 세계 안의 미시적인 삶이다. 딸 하나에 아들 둘, 시아버지와 남편과 함께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고 있는 한 여성, 델리아의 하루를 영화는 가만히 비춘다. 보고 있노라면 시시각각 숨이 조여올 만큼 끔찍한 집으로.
델리아는 반지하의 집일지언정 늘 창문을 열어 햇살이 집으로 들어오게 하는 사람이다. 비록 그의 삶은 벅차다. 입만 열면 욕설을 내뱉으며 망나니로 자라나는 아들들 뒤치다꺼리, 그 아들들과 달리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려서 월급을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상납하는 맏딸 마르첼라, 입만 열면 구박에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온갖 수발을 들게 하는 시아버지, 마땅한 직업도 없는 것 같지만 (그의 직업은 '도굴꾼'으로 소개되는데 <키메라>를 생각하면 곤란한 수준이다.) 큰소리는 땅땅 치며 폭력과 억압을 일삼는 남편...
그럼에도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의 톤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우선 위트 있는 연출 덕이 크다. 폭력을 적나라하게 전시하지 않으면서도 고발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아는 영화다. 네오리얼리즘의 흔적을 영리하게 활용한 장르적 재미도 돋보인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이 영화는 이탈리아 영화의 계보를 훌륭하게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 관객들이 안심하고 빠져들 수 있는 위트 있는 연출을 이어간다.
또 하나는 델리아의 씩씩함이다.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집안일을 돌보고, 가방을 두 개씩 메고 나가서 서너 가지 일을 살뜰하게 하고, 그러면서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남자보다도 적은 급여를 받고... 그 와중에도 삶을 바지런히 꾸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이거 정말 한국의 어머니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그들이 고달픈 삶에서도 놓지 않았던 해학과 유머까지도.
그런데 위트 있는 연출이나 유머에 피식피식 웃으면서도, 가스처럼 스멀스멀 공포가 밀려든다. 한 번도 가정폭력을 당해본 적 없는 나에게도 이 집안에 대한 공포가 괴로움이 스민다. 델리아 제발 집 나가서 멀리멀리 도망쳐 주면 안 될까? 제발.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
델리아의 모든 움직임이 경탄스러운 동시에 염려스럽다. 노인들 주사 놓아주기, 빨래하기, 속옷과 스타킹 수선하기, 고장 난 우선 수선하기, 4개의 일을 오가는 델리아의 하루를 통해, 우리는 1946년 이탈리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로 느끼게 된다.
가정폭력은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어 어떤 제지도 받지 않으며, 여성은 교육 기회도 직업 기회도 제한을 받고 법적 보호도 딱히 받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여성은 그저 침묵으로 감내하는 것 외에 자구책을 구하기 어렵다. 주사를 놓아주며 마주하는 부잣집 여성들도 남편과 아들의 대화 사이에 의견 하나 끼우기 어려운 실정이다.
델리아가 처한 숨 막힌 상황은 꽉 짜인 가족 관계 안에서 그려지는데, 가장 주요한 관계성은 단연 딸 마르첼라다. 아들들은 아빠의 폭력에 겨우 눈치나 볼 줄 알지만 마르첼라는 본인도 그 억압의 피해를 더 직접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 대한 불만도 더욱 크다. 게다가 벼락부자 남자친구 줄리오가 청혼만 해 오면 이 집을 합법적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딸 사이에 서로를 자신과 동일시해서 보는 증상에서 이 모녀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서로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며 사랑하는 건 어쩜 징그럽도록 아름다운 일이지만, 폭력과 억압에 사로잡혀 꼼짝없이 무력해 보이는 순간에는 더욱 큰 괴로움이 된다. 게다가 한창 예민할 사춘기 나이, 마르첼라는 그런 엄마가 답답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이 영화는 델리아의 가정에서 펼쳐지는 일들과, 1946년 이탈리아 사회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거시적인 동시에 미시적인 이야기를 펼치는데, 그 중심에 두 모녀의 서사가 있다. 정확히는 두 여자의 서사가 있다. 물론 주인공은 압도적으로 델리아지만, 영화 분량으로는 분명하게 조연인 마르첼라가 델리아 바로 옆에 묶이는 이유는 이 두 사람의 연결 때문이다. 모든 엄마와 딸은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다.
축복인 동시에 저주처럼 느껴지는 이 말은, 사실 모든 여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를 불행의 구덩이에 빠지기 직전 그 전초에서 구해낼 수도 있고, 마침내 비상하는 서로를 고요하게 응원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조성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델리아라는 개인뿐만 아니라 마르첼라, 더 나아가 무수한 여성들에게 내일이 있음을 공표한다. 혼자 강하게 사는 여자든, 부잣집 마나님이든, 임신한 여자든... 이들은 남성의 폭력 때문에 립스틱을 바르고 지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위해 립스틱을 바르고 지운다.
폭력을 꼭 폭력으로 맞설 필요는 없다. 먼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다 마침내 달리는 것, 자그만 우연과 지긋지긋한 사랑으로 서로를 구하는 것, 그리고 수많은 눈이 되어 함께 서는 것. 그 자리에, 우리의 내일이 있다.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해지는 세상이, 그 자리에 온다. 여성 참정권이 당연한 세상이 왔듯, 지금 요원해 보이는 것들도 올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내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