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와 대화하는 방법

영화 <오, 발렌타인> 리뷰

by 선이정

DIRECTOR. 홍진훤

CAST. 박일수, 조성웅, 우창수

SYNOPSIS.

“하청 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2004년 2월 14일, 하청노동자 박일수의 죽음은 한 인간의 죽음이자 뜨거웠던 민주노조운동의 죽음이었다. 패배한 혁명의 그 날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가 간절히 바랐던 세상을 꿈꾸며 예술을 이어가는 두 사람이 있다. 노동에서 생태로, 여성으로, 그리고 우리 삶의 위태로운 구석구석으로 패배한 과거의 혁명을 시와 노래로 이어가고 있다. 두 개의 영상, 중첩되는 사운드, 과거와 현재... 분할된 기록의 틈새 속에서 새로운 혁명의 모습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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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구에 따르면 향유고래는 바다를 탐색할 때 사용하는 고도의 지향성 반향정위 탐지 소리 이외에도 느린 딸깍 소리, 빠른 딸깍 소리, 윙윙거리는 소리, 나팔 소리, 삐걱거리는 소리, '코다(coda)' 등 매우 다양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코다는 연속적인 일련의 딸깍 소리를 말한다. 고래는 이러한 소리를 여러 방향으로 연속적으로 내보낸다. (...) 고래들의 협력적인 삶을 하나로 묶어주는 아교로 여겨지며, 서로 가까이 지내고, 사냥하고, 항해하고, 짝짓기를 하고, 서로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빛이 없는 위험하고 광활한 세상에서 말이다.

<고래와 대화하는 방법>, 톰 머스틸 지음


고래의 언어는 서로를 지키고 살린다. 그 사실을 인간이 눈치채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래학자 로저 페인이 고래의 노래를 발견하고, 레코드로 만들었고, 그 의미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 하나가 고래 보호 운동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고래의 노래에 마음이 끌린 사람들이 계속해서 고래를 보호하고 살리고 구하는 움직임에, 그래서 고래가 본연의 고래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놓아두는 일에 합류하고 있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더불어 인간으로서 부끄러워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언어 또한 응당 고래의 언어처럼 지키고 살리는 방향이어야 할 텐데, 말 한마디로 몇 조원 어치의 미사일을 태웠다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며 착잡해지는 작금의 세상에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인간도 고래도 죽어나가는 세상에서 한없이 착잡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이 책을 떠올린 건 일차적으로 영화 그래픽에 고래가 나왔기 때문이지만, 이내 이 생각에 마음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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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시놉시스를 들었을 때와 실제 영화를 감상했을 때의 경험이 다소 다르다. 포스터에도 "죽어도 자본주의와 화해할 수 없는 위태로움에 관하여"라고 쓰여 있고, 시놉시스 첫 줄도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으니, 보기 전부터 만만치 않은 현실 고발 영화를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리키는 지점은 단순히 특정한 기업 (물론 고발한다), 특정한 문화와 법(역시나 고발한다)을 넘어선, 자본주의 그 자체다.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 살고 있다는 지점에서, 이 체제 안에서 좀 더 좋은 자리를 점하고자 아득바득 애쓰는 세상이라는 지점에서, 이 고발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만일 실패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동의를 얻는 일'의 실패라고 정의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내게 남긴 것은, 다소 급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사고방식에 동의하고 설득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지점들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지금 이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계속해서 생각하라는 촉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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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하청노동자 박일수의 죽음을 시작점으로 삼아, 노조운동을 떠나 온 두 인물의 인터뷰를 넉넉하게 담았다. 산자락으로 들어가 아이들과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두 사람 다 노동운동의 현실에 실망하고 절망했던 시간, 처절하게 분노했던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으나 현재 두 사람에게서 분노가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 여러 활동을 거쳐 사유하며 분노보다 지향점을 더 향하는 사람들이 되어 있다.


응당 그들의 문장은 단단하다. 그들의 사유는 단순히 노동운동에 대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생태환경을 대하는 방식도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착취적이었다. 노동운동 현장에서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피해자를 정치적 구도로 만들어 피해자를 묵살시키는 방법을 보고 그들이 느낀 것은 위계의 문제였고, 공동체가 교조화됨으로써 겉으로는 와해되지 않았으나 속으로 좀먹었다는 것이었으므로, 젠더 문제 또한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지점이었다.


그 모든 것의 공통점은 폭력이다. 상처를 아물게 만들고 공생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상대를 상처 내고 내가 더 편한 자리를 독식하겠다는 싸움이다. 두 싸움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세상을 나아지게 하겠다는 투쟁 안에서도 많은 경우 후자의 싸움이 발생한다. 두 사람은 결국 투쟁적인 혁명이 아닌, 하루하루 삶의 주변부를 쓸고 닦는 방식의 혁명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장들이 아프게 과거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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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단단한 인터뷰와 중첩되는 것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이미지들이다. 첫눈에는 이 영화가 언급하는 것들과 그다지 무관해 보이는 고래, 모래시계, 딸기... 같은 것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무엇보다 바위. 흔들릴 법도 하고 실제로 흔들리기도 했지만 든든하게 서 있는 바위가 있다. 이는 현실 풋티지 영상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하고 그래픽으로도 지나가는데, 인터뷰 속 문장들과도, 어쩌면 박일수 같은 인물들과도, 또 어쩌면 이런 운동을 계속하고 사유를 계속하는 사람들의 존재와도, 또 어쩌면 이러한 말들을 담아내는 이 영화와도... 비슷한 인상이다.


그 위로 흘러가는 가닥가닥 사운드 또한 독특하다. 영상에 자연스럽게 스며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감각을 유도하는 일반적인 영화음악의 정확히 반대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계속 사운드의 존재감을 톡톡하게 드러내고, 신경 쓰이게 하며, 이미지와 인터뷰와 삼각형의 세 점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지점으로 기능한다. 그 안에서, 관객은 보고 듣는 것들을 자유롭게 연결하며 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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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하는 말들에 나는 전부 동의하는가. 동의하고 아니고를 생각하기도 이전에, 자본주의 체제 안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들이 하는 말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우리는 생각할 시간도 없이 지쳤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동시에 이들이 하는 말에 과연 내가 동의하는가 혹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다소 착잡한 심경이 되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이들의 단단한 문장에 계속 댓글을 달았다. 동의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부연하고 동의하지 못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사유할 시간은 없어 "과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박자박한 문장들을 속으로 계속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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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수 열사를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입에서는 그 시절의 투쟁뿐만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의 추억도 흘러나온다. 묻고 따지고 요구했으나 자신의 근무 기록 전산마저 말소당하며 배척되고, 분신으로 유서로 마지막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다. 불꽃같던 사람이라는 묘사를 쓰기도 아플 만큼 쓰린 투쟁사다. 그러나 이들은 박일수 열사를 미화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근거리의 사람으로서 표현한다. 그 결과 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추켜올려진 열사가 아니라, (불 같은 그래서 통제되지 않는) 성격 특징과 노동 바깥의 삶, 쉬는 날 집에서의 정경 등을 가진 '사람'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남는다.


너무 빠르게 또 거칠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투쟁 영상들과, 느리게 바라보게 만드는 그래픽과 영상들을 중첩하여 바라보며, 박일수 열사의 분신 항거와 그 시간을 거쳐온 두 사람의 문장들을 들으며, 나는 나대로 착잡한 문장을 던진다. 자본은 뭐고 권력은 또 뭐란 말인가. 그게 뭐라고 인간을 이다지도 쉽게 소외시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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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두 사람이 그 시절 투쟁을 몇 번이고 오답노트처럼 톺아봤을 시간을 상상했다. 그 끝에서 이들이 쓴 시와 노래에는 연신 꽃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고운 아이의 노래를 들을 때에도, 이따금 적어두고 싶은 문장이 쏟아져 나오는 '오답노트' 인터뷰를 들을 때에도, 투쟁을 꽃과 엮는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궁금했다. "꽃빛"이 어떤 빛인지는 결국 내 생에서, 나의 답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나의 동의를 구하기보다 나의 사유를 촉구하고 있으니까.



수많은 이야기를 남긴 이들의 뒷모습은, 그 많은 말들을 젊은이들에게 주입시키고 싶은 게 아니라, 이 이야기조차 안 들어도 되니 너희의 길을 가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이 영화를 보며 나도 많은 걸 떠올리긴 했고, 그중에는 노동운동이나 생태를 비롯해 이 영화에 언급되는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의 것들도 있었다. 결국 그 지점이 나의 '꽃빛'이 펼쳐질 자리일 것이다. 나는 어떤 사유를 하고 또 어떤 실패를 하며 어떤 오답노트를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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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함 담아 일어나려는데,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후원자명에 눈에 익은 이름이 보였다. 타인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가 곤란한 자리에 놓였던, 그러나 끝까지 투쟁했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지만 성도 이름도 흔하지 않은 편이고 어쩐지 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 대신 길거리에 나서야 했고 오래 싸워야 했고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답을 얻어냈으나, 그 답을 얻기까지 그는 오랜 시간과 마음 (그리고 아마 더 많은 것들을) 쏟아야 했다.


어떤 이름들이 외롭지 않은 자리. 어쩌면 그 자리가 꽃빛의 자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름 하나로 조금은 밝아진 마음을 메고 일어나 걷는다. 서로를 외롭지 않게 비추는 하나의 이름으로 걷고 싶다,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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