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깨지 않고 쭉 자는 편인데, 그런 날은 자다 말고 화드득 깨곤 합니다. 심장이 쿵쿵 뛰고 피부에 소름이 돋은 상태로, 내가 안전한 이불속에 있다는 걸 자각한 후에야 다시 잠들곤 합니다.
악몽은 그때그때 다른 내용임에도 딱 한 가지, 속수무책의 상황에 놓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거나, 도망쳐야 하는데 아무리 애써도 손발이 움직이지 않거나. 익숙한 얼굴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순간, 분명 익숙한 얼굴임에도 그는 그가 아니고… 뭔가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닫거나.
2025년 8월 어느 날에도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2주 간의 출장에서 돌아와 냉방병에 홈빡 걸렸고, 밀린(?) 영화 보겠다고 영화관 출석도장 찍다가 종합 감기가 되어버렸고, 결국 반차 쓰고 병원 가서 수액 맞고 집에 돌아와, 기절 잠에 빠져든 낮이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어떤 격리 구역에서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지배를 받는 입장이었으므로 이게 식민지배인지 불법 구금인지 난민 캠프인지 알 길은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건 그저, 부모님과 많은 형제들로 구성된 그 집에서 제가 둘째 딸 정도였다는 것. 식사 때마다 가족 단위로 둘러앉아 있으면 총기를 든 사람들이 몸수색까지 했다는 것.
그날도 긴장한 채로 조심스럽게 식사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제 주머니에서 사탕이 샘솟는 겁니다. 군인들에게 걸렸고, 급하게 사탕을 뇌물로 바치려 해 봤지만 (당연히) 안 통했고. 그대로 끌려갔습니다.
취조실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꿈속의 저는 자아를 갈아 끼운 것처럼 제가 한국인임을 자각했습니다. 그때부터 “나 한국인이고! 너네 이러면 외교상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를 무사히 돌려보내라!”라고 협박과 애걸을 섞어 무사 송환을 시도했습니다. (실제로는 저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다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에 번쩍, 다행이라는 감각이 들었습니다.
꿈이라서 다행이다.
눈 뜨는 걸로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직 저녁나절이라 어둠이 채 내리지 않은, 이불이 포근하고 온도가 적절한 방에서, 이게 나의 현실임을 천천히 인지하면서, 몸의 긴장이 가라앉습니다. 총기의 차가운 감각, 협박하는 사람들의 서슬 퍼런 기색은 현실이 아니라고, 천천히 느낍니다.
그러다 또 번뜩 든 생각.
꿈에서 깬 건 나뿐이잖아.
나는 눈을 뜨는 것만으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눈을 떠도 감아도 끝나지 않는 현실에서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역사 속 다양한 시공간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잠에서 덜 깬 제 머릿속에는 한 곳이, 가장 최근에 그곳에 대해 들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기근’이 선포되었습니다.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와 각종 구호단체들이 공조해 세계 식량 위기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기구가 있습니다. IPC라는 곳인데요. 그곳에서는 식량 위기의 심각성을 “정상/경고/위기/비상/기근”의 5개 단계로 분류합니다. 가장 높은 5단계인 ‘기근(famine)’은 ‘인도적 재앙(humanitarian catastrophe)’라고도 합니다.
최소 20% 이상의 가정에서 기본 식료품과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
기아, 사망, 빈곤이 명백히 일어나고, ("예측된다" 정도가 아닙니다)
급성 영양실조 비율이 30%를 넘어서며,
매일 이로 인한 사망 인원이 어느 정도씩 발생하고 있는 상태.
그냥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배고픔”이라는 것이 한 사람 뱃속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 사회의 상황, 구조적인 병폐에까지 이르렀을 때를 말합니다.
배고픔을 그냥 개인적인 감각으로만 느껴본 저에게는 다소 생소한, 그래서 충격적이었던 문장이었습니다.
2025년 8월, IPC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기근’ 상태로 선포했습니다. 그 보고서는 IPC에서 가자지구에 대해 낸 다섯 번째 보고서인데, 동일한 위기를 놓고 비슷한 시기에 이렇게 여러 번 소집된 경우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심각한 상태라는 뜻이겠죠.
더 끔찍한 일은 이 상태가 가자지구에서 지속될 것이고, 더 확산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보고서는 이 기아 상태가 “전적으로 인위적”이며, 논쟁할 시간도 망설일 시간도 지났다고, 즉각적으로 대규모 인도주의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위기는 “중단될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보고서를 쓴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인도주의적 접근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을요.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물품들은 통제를 받고 있으니까요.
5월 전주에서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가자지구에 남아있는 영화인들이 찍은 22편의 짧은 영화를 옴니버스로 묶은 작품이었습니다. 거기서 헬기가 밀가루 포대를 떨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아래, 터진 포대 사이로, 흙먼지와 섞였을 밀가루를 부지런히 줍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비참하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가자지구가 됐든 시리아가 됐든… 지리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그곳들은 너무 멀게 느껴지곤 합니다. 살면서 그다지 만난 일도 만날 일도 없고, 비슷한 일을 내가 겪게 될 것 같지도 않죠. 한 마디로 남 일입니다. 내 일상은 그것과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로 착착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그 일상에 미세한 균열이 생깁니다. 제 꿈처럼요. 그럴 때 우리는 잠깐 깨닫게 됩니다.
그냥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몸을 갖고 태어나, 때 되면 배고프고 잠들고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냥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만 그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삶에 찾아온 것,
마치 아무 이유도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꾼 꿈처럼,
선택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그들은 그 상태에 놓여 있을 뿐이라는 것.
눈을 뜨고 꿈에서 깨면 그만이었던 저와 달리, 그들은 눈을 떠도 계속 그 안에 있다는 것.
뭐가 비참한지 우리는 모두 압니다.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아픔의 감각을 압니다. 가족을 잃으면 마음이 찢기고, 배고픔이 길어지면 몸과 마음이 상합니다. 몸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같은 감각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꿈에서 깨고, 영화를 복기하고, IPC 보고서를 읽으면서… 착잡함을 느낍니다. 오늘의 밥을 먹고 오늘의 글을 쓰고, 그냥 무탈한 오늘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지만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기근이 허위라고 반박을 내놓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무반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착잡함을 느끼는 것 외에, 과연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고민하게 되는 여름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