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인터뷰 성사 여부는 아직 미정입니다. 인터뷰를 하든 안 하든 저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쓸 거니까, 예정된 날짜에 맞춰 왔습니다.
늘 혼자 다니던 영화제인데, 불과 최근 한두 해 친구들과 같이 다녔다고, 혼자 있는 게 괜히 쓸쓸하다가… 프레스센터에 입실, 마감을 하면서 마음이 괜찮아졌습니다. 역시 할 일을 하는 것만큼 심리안정에 도움이 되는 게 없다…ㅠㅠ
경쟁 부문의 유일한 서남아 영화, 였던 이란 영화의 기자회견장을 찾습니다. 참고로 지금 전 세계는 이란 영화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2024년 칸영화제에서는 영화 공개와 함께 망명을 선택한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이 그야말로 극적으로 칸영화제 현장에 도착하면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어요. 이 영화를 위해 신설해 상을 수여했을 만큼 유의미한 순간이었죠. 그리고 2025년 칸영화제에서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건 사고였을 뿐>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합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필두로 이란 영화의 존재감은 언제나 세계에 형형했지만, 지금 또 한 번 강렬한 것이죠.
이 날 기자회견 작품은 제목부터 <허락되지 않은>. 당연히 작금의 이란 영화가 받는 주목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하산 나제르 감독은 “검열이나 제약을 이란 감독들이 오히려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조차 금지된 나라, 굳이 사회비판적 소재가 아니어도 영화 촬영 허가를 받는 일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사회에서... 이들은 제약을 뚫을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 왔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이란 영화의 특색이 되고, 특히 국외 관객들에게 더 사랑받는 이유 같다. 정부의 검열을 욕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란 감독에게는 창작의 또 다른 문을 연 것 같은 상황"이라네요.
기자회견은 짧게 끝났고, 거기서 못다 한 질문은 오후에 영화 상영 현장을 찾아서 건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예술을 계속하는 원동력. 저는 그들이 “왜” 이 일을 하는지가 궁금했는데, 그들은 그냥 계속하는 거라고 답했습니다. 그냥 당연히, 이게 내 일이니 한다고. 답을 들으면서 우문현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왜”가 가장 중요한 단계는 시작의 단계이지, 이미 한창 진행 중인 이들에게 “왜”란 이미 자기 자신이 되어 버린 무엇이므로, 그것을 구태여 분리해 대답하는 게 더 어렵겠구나. 그건 마치 밀가루 반죽에서 고운 가루를 분리하겠다는 마음 같은 거구나. 예술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사회에 발자국을 남기는 행위임을 생각합니다.
앞으로 소개드릴 영화,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를 찍은 감독, 제가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그 감독님은 이란 사람입니다. 감독님은 1965년생이고 (저희 엄마와 같은 나이입니다), 이란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열서너 살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혁명 이후 학살과 피바람이 불었을 때 집에 누군가를 감춰 주었다가 감옥에 갔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에는 ‘극좌 집안’이었다고 쓰여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피바람에서 누군가를 숨겨준 행동이 16살짜리 여자아이를 감옥에 보내는 죄가 될까요. 그런 날들이 감독님으로 하여금 가자지구에 대한 영화를 담게 한 것일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아직 인터뷰는 미정입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마지막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문자가 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부국제 홍보팀 OOO입니다. 세피데 파르시 감독 개별인터뷰 관련하여 메일 보내드렸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날. 밤입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영화도 좋았고, 마감도 마쳤고, 마감푸드로 혼자 시켜 먹은 회도 맛있었고. 행복합니다.
저에게는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영화들이 있고, 저도 그 영화들에게 힘을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쓸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행복을 곱씹었습니다.
짐을 정리합니다. 캐리어를 닫아 두고, 곧바로 들고나갈 수 있게 쇼핑백을 현관에 둡니다. 부국제 라인업에서 가장 보고 싶으면서도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영화의 감독님을, 내일모레면 드디어 만납니다. 뭐라도 드리고 싶은데 센텀 인근을 벗어날 시간이 없어, 교보문고 뒤져 작은 선물 하나를 사보았습니다. 그건 명태와 명주실 장식.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제 사랑을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안녕을 빌던 것입니다. 가자지구를 담아 부산에 온 이란인 감독님께,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또 다음 날.
이 날도 기분이 좋습니다. 모든 영화가 다 좋았습니다. 사이공판 화양연화 같은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를 보고, 감독 GV를 들을 준비를 하면서 핸드폰을 켜봅니다. 다급한 문자가 몇 통 와 있습니다. 와르르 쏟아지는 문자를 읽으며 억장도 와르르 쏟아져 뛰쳐나옵니다.
일정이 꼬였고, 인터뷰가 불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자님의 당황과 미안한 마음이 문자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짧은 통화를 하고 돌아서서, 한참 전에 미리 써 두었지만 인터뷰와 함께 올리고 싶어서 기다렸던 이 영화의 리뷰를 그냥 올립니다. 명태는… 어쩌지? 내일 날 밝으면 담당자님께, 선물만이라도 전달할 수 없을지 여쭤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또 다음날.
부산에서의 마지막 커피를 마십니다.
영화와 세계를 바라보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어쩐지 부산을 떠날 때면 항상 울적해집니다. 나는 여기 있는 게 너무 황홀한데 과연 내년에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가 업에서도 영화에서도 반쪽짜리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본업에서 저는 남들이 으레 밟는 커리어 패스를 밟지도 않았고, 관련하여 지식이 깊지도 않습니다. (이 불안이 깊어질 때면 친구들에게 “나 대학원 갈까? 어떻게 생각해?”를 묻곤 합니다. 챗GPT도 “그런 마음으론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이후로는 좀 사그라들었습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공자도 아니지, 영화를 많이 본 시절이 있는 것도 아니지… 저는 늘 어디서나 스스로를 반쪽으로 취급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가진 건 다 화려해 보이고 내가 가진 건 다 초라해 보이고.
하지만 비로소 마음이 좀 달라집니다. 저는 영화기자도 아니고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도 아니지만, 그 사이 어딘가를 걷는 게 제 몫이라고 받아들였어요. 모자라고 부족해도 저는 이 길들을 사랑하고, 제가 쓰는 모든 글들도 그 러브레터일 것입니다. 사랑밖에 줄 게 없지만, 그게 얼마나 강한 지도 조금은 알 거 같습니다. 계속 기쁘게 이 길을 가기로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일기를 쓰며 친구와 연락을 합니다. 곧 개봉할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힘이 납니다. 맞아, 영화제는 끝나도 영화는 또 개봉하지. 계속 극장을 찾아와 주는 새 영화들이 있지. 그런 마음으로 일기를 몇 줄 적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옵니다.
“기자님, 감독님 오후 시간 조율이 가능하실 것 같은데요. 오늘까지 부산에 계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혹시 아직 부산이실까요?”
몇 시여도 맞추겠으니 너무 늦은 밤만 되지 않도록 시간을 잡아주십사 말씀드린 다음, 낮 기차를 취소하고 저녁 기차를 다시 예매합니다. 그리고 이내 인터뷰 시간이 확정되어 문자로 왔습니다. 숙소 로비에 있는 카페에 캐리어와 함께 앉아있다가 터덜터덜 지하철을 탈 참이었는데, 대신 캐리어를 숙소에 맡기고 다시 영화의전당으로 갑니다.
다시, 배지를 목에 걸고 들어갑니다.
정말로 인터뷰가 코앞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