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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an 01. 2016

따뜻해도 진부하지 않다면

영화: <바다의 노래: 벤과 셀키 요정의 비밀>

※ 미개봉작이니만큼 스포일러 없습니다. 안 보신 분들도 편안하게 읽어 주세요.


얼마 전 브런치 알림이 울렸다. 브런치 알림은 내게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인데, 그 날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았으니 메일을 확인하라는 내용이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 조금 설레기까지 하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을 때 낯선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포스터를 보고 조금은 실망했다.

 '마법에 걸린 여동생을 구하라!'라는 카피를 보며 이 영화를 봐야 하나 고민이 됐다. 제목도 구미가 당기진 않았지만 <더 폴: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이후로 제목에 편견을 갖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렇다 치고... 좋은 작품을 많이 봤음에도, 여전히 애니메이션이 주는- 특히 극장판으로 내보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아동을 겨냥해 나오는 카피가 주는 느낌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아무튼 조금 복잡한 심정으로 검색을 해 보니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이미 봤다는 사람들의 평은 대체로 좋았다. 미국이나 일본 작품이었으면 (또 그 편견에 의해) 그냥 안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국가가 아일랜드(엄밀히 말하자면 아일랜드 외)로 분류되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결국 보러 가기로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한 선택이었다.



혹시 창고를 청소해 본 적이 있는지. 나는 햇수로 3년에 달하는 인도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낯선 내 방과 마주했을 때 창고를 청소하는 기분이었는데,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방에 살지 않은 데다가 출국 전에 자취 살림을 몽땅 쓸어 넣고 갔으니 창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편지나 쪽지, 필기나 일기, 사진 따위가 잔뜩 나왔는데 하나씩 펼쳐 보면서 버릴 건 버리고 추릴 건 추리느라 방 규모에 비해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이 영화를 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기분이었다. 오래 열어 보지 않은 창고의 문을 연 느낌. 사실 우리는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기술이 첨단을 달리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라푼젤>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구사되는지, <겨울왕국>의 눈송이를 자연의 모습대로 고스란히 담기 위해 애니메이터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회자되고 감탄을 자아내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색연필과 수채 물감을 이용해 그렸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심지어 과거 회상 장면에서는 수채 물감에 물을 뚝뚝 떨어뜨린 듯 처리된 배경은 꼭 꿈속의 다른 세계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는 꼭 엽서 위를 종이인형이 걸어 다니는 걸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역설적으로 내가 얼마나 디즈니와 픽사의 기술에 익숙해졌는지 여실히 느껴졌고, 그래서 사실 오랜만에 흙길을 밟는 듯 정겨웠다.


마치 창고를 청소하다가 먼지 쌓인 구석에서 아주 어릴 때 좋아했던 그림책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펼쳐보아도 여전히 그 내용이 감동적인, 그런 느낌이었다. 정성껏 그린 일러스트 엽서 같은 배경 하나하나가 어찌나 감성을 쓸어내려 주던지.


시놉시스는 이렇다. 등대섬 외딴집에 사는 '벤'의 어머니는 여동생 '시얼샤'를 낳고 홀연히 사라졌다. 아빠는 그 후로 좀 울적한 사람이 되었고, 여동생이 태어나면 최고의 오빠가 되어 주고 싶다던 벤은 여동생이 귀찮기만 할 뿐 자기 진짜 친구는 어릴 때부터 함께 한 강아지 쿠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얼샤는 엄마가 벤에게 남겨주고 간 소라고둥을 홀린 듯 불고, 이어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바다에 빠졌다며 걱정하는 할머니 등쌀에, 역시 불안해진 아빠도 아이들을 도시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서둘러 보낸다. 아이들은 집이 그리워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는데, 그러는 중 시얼샤를 노리는 부엉이 마녀 마카와 싸우게 된다. 그렇게 시얼샤를 구하려는 벤의 모험이 시작된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스토리 같다. 그래서 사실 나는 저 시놉시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뭐 그래서 여차저차 해서 부엉이 마녀를 물리치고 여동생을 구해 와서 행복하게 잘 살겠지 뭐. 역시 정석은 Happily ever after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처참히 무너졌다. 디즈니가 자주 보여주는 권선징악 스타일의 스토리라인은 구사되지 않았다. 그런 '주인공끼리의' 따뜻함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적 선악보다는 입장의 차이, 조금만 자리를 옮겨 옆에 서 보면 느낄 수 있는 타인의 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전형적인 스토리라인과 비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등장인물 모두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진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부재하는 틈에 아이들끼리 모험을 떠나 성과를 이루는 게 아니라, 옆에 있고 제 나름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려 하지만 모자람이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우리들이고, 우리 부모님들이 아니었던가. 더없이 인간적인 모습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서둘러 떠나야 했던 엄마의 마지막 뒷모습도, 딸아이의 생일 케이크 앞에선 웃음을 짓지만 그 날 밤에는 떠난 아내를 떠올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옆모습도, 라디오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홍차를 마시며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등대섬이 애들 살기 좋지 않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을 만큼 깐깐하지만 아이들이 잠자리에 없다는 걸 제일 먼저 알아채고 허둥지둥 일어나는 할머니도,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흡수해 돌로 만드는 부엉이 마녀 마카까지도 다 그저 유약하지만 제 나름대로 사랑을 표현하는 어른들이었다.



아이들 또한 전통적인 역할에 매여 있지 않다. 마녀에게 잡혀간 여동생을 구하는 시놉시스여도, 시얼샤는 맥없이 구조를 기다리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며 벤도 문제 하나 뚝딱 푼다고 갑자기 용사가 되어 우뚝 서지 않는다. 갑자기 닥친 일에 성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아이가 갑자기 굵직한 남자처럼 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극 초반 아직 평화로운 시절에는 상당히 현실 남매스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는데, 여동생을 귀찮게 여기는 벤의 모습은 물론이고 그런 벤에게 얼굴을 찌푸리며 한 번씩 짜증을 드러내는 시얼샤도 현실적이어서 참 웃음이 나고 귀여웠다. (현실 남매 분들은 웃음이 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셀키는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존재라고 하던데, 설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을 세상에 풀어낸 방식이 매우 친근하면서도 그 웅장함을 잃지 않았다. '자연 친화적'이라든지 '북유럽 감성'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아무 데나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진짜 북유럽 감성은 이런 거 아닐까.


진부하지 않은데 편안하며 따스하고, 신파스럽지 않지만 눈물 나고, 가족의 사랑을 일깨워 주지만 계몽적인 강요는 없으며, 아이들이 모험을 펼치지만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부재하지 않고, 지혜로운 존재에도 백치미가 존재하고, 도움은 일방적인 게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언어라는 것. 도움을 받아 악으로 규정한 상대를 물리치는 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해법을 찾아 이루는 행복.



마지막은 모두가 둥글게 선을 이룬다. 환상적 색감의 일러스트 같은 배경에서, 누구 하나 우월감에 취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은 캐릭터들이 자기 자리에서 제 나름의 행복을 누린다.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이뤄지지 않은 대로, 이뤄진 것은 이뤄진 대로 아름답다. 주인공은 영웅이 되고 악역은 처절하게 무너지는 Happily ever after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그려냈다.


디즈니가 사실 아이들 정서에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 작품을 보고 통감했다. 전통적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느끼기 어렵다는 뜻도 되니까. 첨단 기술과 화려한 웨딩 케이크 같은 엔딩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이야기가 지루하게 교훈적으로 풀어지는 영화는 아니다. 실제로 영화관에는 꼬꼬마 관객들이 적지 않았는데,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흐름을 잡지 못해 한두 번 아빠에게 질문을 속삭인 귀여운 아이 한 명을 제외하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모두 한 마디 말도 없이 보았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던 아이들도 미동 없이 끝까지 영화를 보았다. 그만큼 흡입력 있고, 지루하지 않았다.


모험을 떠나고 여동생을 구하는 스펙타클해 보이는 시놉시스라도 이렇게 미온수처럼 잔잔한 따스함으로 전해져 올 수 있다. 시작과 결말이 같아도 과정이 어떻게 풀어지냐에 따라 진부할 수도, 새로울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앞으로 애니메이션이 가야 할 방향을 부드럽게 제시해 주는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보아도 좋고 어른들이 보아도 좋다는 카피는 너무 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디즈니의 전형성이나 지브리의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찜찜한 냄새가 없는 이런 작품이야말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인도에 있는 내 동생들과 이 영화를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영화를 같이 본다는 것만으로 함께 한다는 느낌이 물씬 들 것 같아서였다. 미숙한 나지만 너를 사랑한다는 말, 네가 어떤 모험을 떠나도 단번에 네가 영웅이 되진 않겠지만 한 뼘의 성숙을 우리 함께 이뤄갈 수 있을 거라는 말을 우리 아이에게 영화가 대신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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