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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an 03. 2016

어린 왕자와 장미의 사랑

마음의 고향 같은 연인

  우리가 잘 아는 비행기 조종사가 한 명 있다. 그는 이미 50년도 더 전에 이 세상을 떠났고,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그의 조국이 우리에게 친숙한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쓴 책 한 권으로 사막과 하늘, 양과 별은 물론 그전까지 듣도 보도 못한 바오밥나무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가 되었다. 그는 앙트완 드 생 텍쥐페리, 우리가 <어린 왕자>의 저자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공군 비행사이자 발명가, 작가로 분류되어 나온다. 그는 본디 프랑스 리옹의 한 옛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어머니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보냈다. 열두 살에 첫 비행을 한 후로 하늘을 나는 일이 주요 직업이었으나, 어린 시절 때문인지 그의 세계는 때때로 곱고 서정적이며 섬세한 결을 보여 준다. 문장뿐 아니라 직접 그린 삽화 또한 원과 노란색이 많이 사용되는 등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심지어 최후마저도 비행 중 실종되어, 마치 <어린 왕자>를 만나 사막 어딘가로 떠나버린 듯 신비로운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너무나 잘 알려진 '어린 왕자' 뒤에, 그를 기다린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 왕자에서 왕자 본인 다음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등장인물은 누구일까? 대개는 화자인 비행사나 여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짧은 등장이었지만 어쩐지 (현대인의 자화상 같아서인지) 자꾸 생각나는 '시선 강탈' 술 주정뱅이도 있다.


  그러나 어린 왕자가 다른 별을 여행하는 동안 묵묵히 소혹성 B612에서 그를 기다린 존재가 있었으니, 장미였다. 장미는 그가 마음의 고향처럼 여긴 아내 콘수엘로를  담아냈다.


이 글은 국내에 <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 (알랭 비르콩들레 저, 이희정 역)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위 책을 읽고 썼다.

  프랑스 시골 귀족 집안 출신의 생텍쥐페리, 그리고 남미 출신의 아름다운 콘수엘로 순신.


  두 사람이 만나기 무섭게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치 드라마 속 정해진 수순처럼 두 사람은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을 불사한다. 사실 여기서 가족이란 생텍쥐페리의 가족만을 말한다.


  콘수엘로는 거물급 외교관의 아내로 사교계에 등장했으나, 27살 젊은 나이로 벌써 이혼과 사별을 겪은 여자였다. 시대가 변했다 해도 옛 귀족 집안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집에서는 그런 콘수엘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은 것 하나까지 트집 잡고 미워하는, 두 사람 사이를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는 시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편이라도 좀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생텍쥐페리는 어머니 아래서만 살아온 데다가 떨어져 살 때도 늘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깝게 지냈고, 이후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절절한 제목으로 그 글을 묶어낼 만큼 그에게 어머니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결혼식에 어머니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텍쥐페리는 결혼 서약과 서명을 하는 내내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여자가, 그것도 남미 특유의 화끈한 성격을 가진 콘수엘로가 이런 남자랑 결혼 못 하겠다며 손을 뿌리치고 나가려고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그 이후로도 평생을 이어 불어닥칠 어떤 것보다도 끈끈했으니, 결국 그러면서도 둘은 결혼했다.


  시댁 식구들로부터 견고하게 콘수엘로를 끌어안아 주지는 못했지만, 생텍쥐페리도 나름 애는 썼다. 결혼 후에도 어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에게 "콘수엘로는 연약하고 순진하니 지켜달라"는 요청을 끊임없이 했다.


  아내를 미워하지 말고 아껴 달라는 그 간청을 그의 어머니는 그래도 조금 받아들이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끝까지 콘수엘로를 미워했다고 한다. 시댁에서 철저히 부인하고 싶어 하고 숨기고 싶어 했던 며느리라서, 어쩌면 그래서 우리에게 콘수엘로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신혼 초기 모습. 행복해 보인다.

  만나자마자 불 일듯 한 사랑에 곧바로 결혼까지 했기에 연애 기간이 길지 않았다. 게다가 비행사라는 직업상 두 사람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기간이 길어진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이는 생텍쥐페리의 성격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지 않는 데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편적인 시선에서 알콩달콩 예쁜 커플의 모습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고지순하고 다정한,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입을 모으는 그런 모습은 분명히 아니었다. 심지어 같이 있을 때 각방을 쓰거나, 훗날 소설로 명성을 얻은 생텍쥐페리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즐겁게 놀고 있을 때 콘수엘로는 외로움을 토로하는 모습도 보인다.


  더 끔찍한 건 생텍쥐페리에게 일생 동안 인연을 이어 간 여자가 있었다는 점인데, 넬리 드 보귀에라는 이 여자는 연인이라기보다 지적인 교류를 나누는 후원자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존재가 부인 입장에서 불편한 게 당연하다. 게다가 생텍쥐페리 집안에서는 콘수엘로에 비해 넬리 드 보귀에가 어엿한 집안 출신의 정숙한 규수라고 여겨 오히려 넬리 드 보귀에와의 관계를 더 좋아했다고 하니, 콘수엘로 속이 오죽했겠나 싶다.


  넬리 드 보귀에는 생텍쥐페리 사후 그에 관한 글을 쓰면서 콘수엘로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두세 줄로 일축해 버리기도 했다. 생텍쥐페리가 넬리 드 보귀에와 어떤 관계였든 간에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라는 상황이 편치만은 않아 보인다.


콘수엘로의 자서전 <장미의 기억>

  이후 콘수엘로는 <장미의 기억>이라는 책을 써서 생텍쥐페리와의 시간, 그리고 자기 심리를 촘촘히 적는다. 콘수엘로는 질투가 났다는 말을 솔직하게 썼다. 마치 "직위는 빼앗기지 않았지만 귀양 간 여왕의 심정"이었다고.


  2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도 생텍쥐페리는 자신이 참전하는 동안 아내 콘수엘로를 시골 마을로 피난 보내는데, 그 마을 바로 근처까지 갔을 때도 콘수엘로를 굳이 만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콘수엘로가 생텍쥐페리가 머물던 호텔로 찾아가 겨우 만났을 때도 돌아가라고 했다는데, 만약 누가 나한테 그랬으면 애틋한 재회고 뭐고 머리채를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콘수엘로는 담담하게 살아간다. 참고 살자는 애이불비의 심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고 하고, 사실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피난 갔던 시골 마을은 예술가들의 마을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하면서 지낼 수 있었고 그러던 와중에 다른 이에게서 뜨거운 구애를 받기도 한 상황이었다. 생텍쥐페리와의 결혼을 끝내고 싶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콘수엘로는 생텍쥐페리의 그런 면들을 그냥 억지로 참아 넘긴 게 아니라 그런 점들까지 사랑하면서 버틴 듯하다.


  당사자가 아닌 나로선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에겐 분명 어떤 유대 관계가 있었다. 반지나 장미꽃, 결혼식과 서약, 가족들과 친구들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라 부를 만한 어떤 유대 관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있을 때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뉴욕에 같이 살던 시절.

  그렇다고 두 사람이 항상 그렇게 멀리서 정신 승리 같은 사랑만 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생텍쥐페리도 1940년 드골에 대한 불신이 날로 깊어져 감에 따라 전역을 한 터였다. 그 해 미국으로 건너간 생텍쥐페리는 인기 작가로서, 또 마땅히 프랑스에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으로서 아내 콘수엘로를 미국으로 불러들인다. 아마 두 사람이 가장 소박하고 고요하게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은 뉴욕 근교 하얀 집에 세 들어 함께 살던 이 시절이 아닐까 싶다.


  한때는 사교계에서 화려한 이름을 날리던 콘수엘로지만, 이제는 가정적이고 섬세한 세계에 익숙한 생텍쥐페리와 함께 조용한 삶을 살고 있었다. 바로 이런 환경이 있었기에 <어린 왕자>가 나올 수 있었다. 글은 물론 삽화도 직접 그린 생텍쥐페리는 이 작업에 상당히 몰두해 있었고, 결국 1943년 영어와 불어 두 가지 판으로 어린 왕자를 세상에 내보이게 된다.


L'essentiel est invisible pour les yeux.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꼭 두 사람의 관계 같은 말이다.

  사실 어린 왕자는 대뜸 나온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주고받던 편지 구석구석에 생텍쥐페리가 그린 손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마음속의 작은 녀석'이었다. 그뿐 아니라 어린 왕자에는 생텍쥐페리가, 또 그와 함께 있던 콘수엘로가 곳곳에 녹아 있다. 화자의 직업이 비행기 조종사인 것도, 사막에 불시착한 것도 경험담이었다. 어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 또한 생텍쥐페리다운 일이었다.


  그리고 어린 왕자가 별에 두고 떠나온 아름다운 장미, 4개뿐인 가시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순진한 장미. 그리 강하지 않은 장미를 생각하며 어린 왕자는 어떻게든 보호해 줄 방법을 찾고자 안절부절못했지만 정작 장미는 끝까지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나 끝까지 우는 얼굴은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였다... 다양한 행성을 여행하는 어린 왕자가 장미를 생각하는 것은 콘수엘로를 생각하는 생텍쥐페리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콘수엘로처럼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떠난다는 건 끔찍한 일이죠.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어떻게든 돌아와야 해요. 이 의무를 가로막는 모래는 손으로 파내고, 산이라도 옮겨야 합니다."

- 생텍쥐페리


"... 나는 그녀를 떠나선 안 됐던 거야. 그녀의 보잘것없는 속임수에 감춰져 있던 부드러움을 알아챘어야 했어. 하지만 난 너무 어렸고, 그녀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어..."

- 어린 왕자


"별들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에."

 - 어린 왕자


  그러나 두 사람의 삶에, 또 애정 전선에 고요한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43년 생텍쥐페리는 공군으로 돌아간다. 결코 하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던 사람처럼...



  생텍쥐페리는 비행 중대에서 군인으로 오래 복무했지만 결코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서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위험하고도 하 수상한 시절에, 비행을 사랑하고 또 업으로 삼았던 그가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그가 남긴 말들을 토대로 미루어 보면 아마 참전은 스스로에게 떳떳하고자 하는 선택이었던 듯하다. 그 선택에 콘수엘로는 군인의 아내란 참 가슴 아픈 존재라는 느낌을 나중에야 내비칠 뿐, 그를 보내 주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그들의 편지에는 사랑도 그리움도 애절하게 묻어났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이유로 전선에 뛰어들지 못하고, 겨우 허가를 받은 정찰 비행만을 하던 그는 1944년 7월 31일의 정찰 비행을 마지막으로 이 세계에서 실종되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콘수엘로는 이후 평생을 생텍쥐페리를 그리며 살아간다. 남편의 흉상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남편과의 기억을 담아 <장미의 기억>을 쓴다. 197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누구를 만나든 콘수엘로가 끝까지 그리워한 사람은 생텍쥐페리였다고 한다. 남편이 아끼던 개와 함께 남은 삶을 꾸려 나가기 시작한 그때의 콘수엘로 마음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생텍쥐페리의 절대적인 사랑>에서 몇몇 대목을 인용한다. (문제 될 시 삭제하겠습니다.)


"콘수엘로, 내 아내가 되어줘서 고마워. 나는 부상당해도 돌봐 줄 사람이 있고, 죽더라도 내가 영원히 기다릴 사람이 있으며, 돌아가더라도 돌아갈 사람이 있는 거잖아."


"나한테 그저 이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고집스러운 작은 게처럼 날 꽉 잡고 있어줘서 고마워'. 이 말, 결코 잊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떤 이가 있소. 그의 영혼과  마음속에는 당신에게 줄 것만 있고, 커다란 사랑 말고 별다른 것을 찾을 수가 없다오."


"살아가면서 내겐 커다란 항구가 하나 있어. 바로 당신. 나는 언제라도, 그 어떤 때라도 그곳에 내릴 수 있지. 그 항구는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받아주거든. 당신을 만드시고 내 삶의 길에 놓아주신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감사해."


"그 친구가 당신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봤어. 토니오(앙트완 생텍쥐페리의 애칭)가 내게 맡긴 마지막 메시지는, 당신에게 가서 사랑한다고 전해 주란 얘기였어."

-그들의 친구였던 앙드레 루쇼가 콘수엘로에게.



"당신이 이제 돌아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못 믿겠어. 그래서 나는 뉴욕 이 비정한 도시에 남아 있는 거야."


"내가 당신을 기다리며 인생을 보낼 거란 사실을 알아줘요. 설령 내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저는 사랑하고, 기다리고, 안아줄 이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집은 작아졌고, 창문만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이가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하늘을 집 안에 들여놓으려고요."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세기가 바뀌었다.


  2000년. 바다에서는 당시 생텍쥐페리가 타고 나간 비행기가 발견되면서 의문에 쌓여 있던 생텍쥐페리의 사망 당시 윤곽이 조금 더 잡혔다.


  2008년에는 독일군 조종사였던 호르스트 리페르트가 본인이 생텍쥐페리의 비행기를 격추했음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10년 전이었던 1998년, 우연히 그물에 걸려 올라온 생텍쥐페리의 팔찌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 안쪽에는 콘수엘로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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