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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Apr 13. 2016

사슬을 엮는 손과 끊는 손

영화: 소셜 포비아 (2014, 홍석재 감독)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

※ 모든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사실 이 영화는 재미있겠다고 눈 반짝거리긴 좀 어려운 영화다. 일단 소재 자체가 너무나 피로하다. SNS, 자살인가 타살인가,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 이 비슷한 양상을 우리는 현실에서 너무나 많이 보았다. 대개는 길고 지루하고 답 없이 꼬리를 무는 양상이었다.


  어떨 때는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답'을 찾는 일이 오래 걸린다는 게 이해가 될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갈수록 보기 드문 것 같다. 이리저리 입맛대로 재가공하고 편집한 정보들을 보며 이걸 만드는 동력이 궁금해지곤 한다. 애초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재가공된 건지 그 선도 애매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명확한 증거가 누군가에게는 불분명한 억측의 근거일 뿐이라서 도무지 종결이라는 게 없기 일쑤다.


  가끔 어떤 경우에는 “사실을 알고 싶다는 걸까, 그냥 누구든 하나 조져 놓고 싶다는 걸까?”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 때도 있다.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다. 가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휩쓸리는 쥐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여기까지 썼는데 벌써 피로하다.


  솔직히 말하고 시작하자면 나는 변요한의 필모그래피를 훑기 위해, 팬 된 도리로 이 영화를 보았다. 배우 본인이 <소셜 포비아>는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언급한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 배우님이 출연한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심지어 꼭 봐야 할 영화라니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보았다. 그래요, 제가 이런 덕후입니다.



  영화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지웅(변요한)은 합격할 때까지 핸드폰도 SNS도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매일 노량진에 앉아 열심히 수업을 듣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군인 자살 사건에 관해 '레나'가 남긴 악플 멘션에 마찬가지의 악플로 맞서는 친구 용민(이주승)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 같이 멘션을 날리는 그의 트윗명은 무려 Jus†ice. (t 아니고 십자가다.) 비슷한 발악들이 서로 넘나들고, 스크린에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새겨지는 멘션 하나하나는 인터넷에서 익히 보이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바로 혐오.



  그리고 분노한 이들 몇몇이 의기투합한다. 이름하여 레나 현피 원정대. 인기 개인방송 BJ 양게(류준열)의 생중계까지 진행 중이니, 레나의 집을 찾아간 건 실제로 몇 명이나 되었던 걸까. 그러나 그들이 본 건 랜선으로 목을 매단 레나였다. 모두 당황해 있던 그때, 손이 움찔하는 걸 본 지웅이 다급히 레나를 끌어내리지만 레나는 이미 숨이 끊어졌고, 이들은 일제히 핸드폰부터 열어 그동안 레나에게 날린 멘션을 다급히 삭제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상당히 소름이 끼쳤다. 시체가 앞에 있는데, 핸드폰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이때의 이들에겐 가장 합당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들이 여길 왜 왔는데? 살아 있었다면 무슨 짓을 당했을지 모르는데? 이들의 말과 행동은 늘 본인의 범죄에 눈을 감고 타인에게만 눈을 부릅뜬 채다. 일관적으로 이런 식이다. 찌질하긴 찌질한데, 참 프로페셔널하게 찌질하다.



  이 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지웅에게 가장 무서운 말은 무엇이었을까. 경찰 공무원을 준비해도 소용없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각자의 직업과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이 일로 한 배를 타 버린 현피 원정대는 필사적으로 레나 사건을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BJ양게의 방송 영상에 세탁기 소리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살할 사람이 세탁기를 돌릴 리 없다'는 이유로 타살설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만약 레나가 타살의 피해자이고 진범이 밝혀진다면, 자살 사건에 얽힌 자기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심지어 용민은 경찰 특채까지 바라보면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발을 빼고 싶어도 그러기가 너무 힘들었던 게, 이미 신상이 털렸다. 사진에 마크까지 되어 이 사람이 누구다, 지금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 하는 정보가 인터넷에 공공연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온라인뿐 아니다. '의분' 넘치게 멘션 하나 날리고 '엉겁결에' 따라나섰을 뿐인 지웅의 사물함 위로 빼곡하게 포스트잇이 붙는다. 살인자라는 둥, 너 같은 놈이 경찰 하면 안 된다는 둥... 이 포스트잇은 트위터 멘션과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이 포스트잇을 적은 사람들과 지웅과 용민, 레나는 뭐가 얼마나 다른 걸까.



  조사를 하면서 레나, 실명 민하영이 '키워(키보드 워리어)'로 유명한 베카였다는 걸 알게 되고, 베카와 원한 관계가 있는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찾아보기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도 철저하게 온라인에 뿌리를 둔다.


  민진사(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 카페) 카페 인원수가 늘어나는 걸 보며 지웅은 신기해하고 용민은 뿌듯해한다. 민하영에 얽힌 이들은 언제부턴가 마치 형사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마치 자기가 모든 걸 다 알았다는 듯이 당당하게 발을 뻗어 나간다. 헛다리를 짚었을 때는 욕 한 번 하고 또 당당하다. 그 프로페셔널한 찌질함에 소름이 끼친다.


  용민은 결국 민하영의 동기라는 사람까지 만나는 '쾌거'를 이룬다. 현실에서도 만만찮은 키보드 워리어였던 민하영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 지웅은 자기가 레나를 죽었다 깨나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용민아, 네가 한 말이 맞는 거 같아, 하면서.



  그러는 동안 '현피 원정대'는 반으로 갈라졌다. 장세민과 양게를 필두로 하는 사람들은 도더리 범인설을 주장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낸다. 도더리가, 지웅과 쭉 함께 있던 친구 용민이라는 것. 지웅은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와서 용민을 다그치지만 용민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저 사건의 진상을 빨리 밝혀내자는 말뿐이다.


  지웅은 지금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 되는 거라며 용민을 지나쳐 간다. 지웅은 현피 원정대 중에 유일하게 현실에 발 붙인 인물 같기도 하다. 적어도 그는 이 정신없는 판에서 사람의 감정을 생각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지웅은 레나 사건을 잊고 현실로 돌아오려 노력한다. 그러는 동안 용민은 레나의 노트북에 깔린 웹캠 해킹 프로그램을 근거로 범인을 찾아보려 하지만, 오히려 그 해킹 프로그램 때문에 레나가 자살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양게 TV가 다시 한 번 바쁘다. 이번에도 현피 중계인데 이번에는 멋 모르는 고딩들까지 끼어 있다. 이번 현피 상대는 도더리. 숨 가쁘게 계단을 오르는 장면 하나하나가 양게 TV로 고스란히 생중계되고, 채팅 창도 덩달아 숨 가쁘게 올라가고 있다. 레나 사건을 보고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는 동안 옥상에서 용민은 지웅에게 미안했다는 전화를 남기고, 그 전화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지웅도 서둘러 용민이 있을 곳으로 찾아간다. 현피 원정대가 옥상에 올라왔을 때 발견한 건 시체가 아니라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용민이었다.


  눈 앞에서 목을 맨 채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오는 말이라는 게 쇼를 한다는 둥, 민하영 코스프레라는 둥, 조롱하고 비웃는 소리들이었다. 줄을 끊은 칼을 빼앗아 용민이 난동을 부리는 동안 지웅이 도착한다. 영화 내내 중간자처럼 둥둥 떠 다니던 지웅이 가장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제발 그만 하고 이리 오라며 결국에는 용민을 제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렇게는 돌아갈 수 없었다.


  영화는 번잡한, 그러나 누군가의 눈에는 더없이 초라해 보일 노량진을 비춘다. 지웅의 담담한 독백이 영화를 맺는다. 도더리 현피 영상은 인기 걸그룹 멤버의 스캔들로 금세 묻혔고 용민은 노량진을 떠났다는 것, 지웅은 2차 시험에 합격했고 인터넷에는 아직도 민하영 타살설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용민의 사물함, 정확히는 용민의 사물함이었던 자리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떼어 내고 멀어지는 지웅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 개봉이 2010년인데 불과 4년 만에 <소셜 포비아>라는 영화가 나왔다. SNS의 시작을 그린 영화가 고작 몇 년 전인데 벌써 SNS의 폐해를 담은 영화가 시작됐다는 거다. SNS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볼 수 있는 '속도'가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검열되지 않고 규제될 수 없는 속도. 기존 언론들조차 그 속도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마다, SNS를 여러 개 사용하면서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도 한 번씩 놀라게 된다. 놀란다는 자체가 매우 새삼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새삼.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은 이 영화가 둥그런 원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스토리 라인은 레나 사건으로 시작해서 도다리 사건으로 끝나지만 그건 시작과 끝도 아니라 순환의 어느 한 지점을 포착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 민하영과 하용민이라는 이름도 뭔가 순환하는 느낌이다.


  수많은 BJ양게들은 열심히 킬킬거리며 생중계를 하고, 그 댓글 창은 여기저기서 폭발적으로 올라가고, 지하철이나 도서관 옆 자리에서 쉬이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 군상 중 누군가는 그 현피 원정대에 참여하고, 그걸로 신상이 털려서 온라인에 가볍게 올린 행동 하나가 오프라인으로 무섭게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가 나온 지 4년이 또 지났으니, 양게를 따라 나섰던 고딩들이 양게보다 더 자극적인 BJ가 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죽도록 괴로워해도 이 모든 일들이 끝나지 않는다.


  댓글 하나쯤 그리 큰 죄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놀랍도록 많다. 그러나 그 마음의 뿌리는 비인간성이다. 대사를 아무리 잘 들어 보아도 사람 감정어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현피 원정대의 끝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낄낄거리는 무정함이었다.


  이 영화에는 칼도, 자살 시도도, 진짜 자살도 나오지만 그 어느 것도 가해자의 손에 붙어 있지는 않았다. 가해자의 손은 멀리 떨어져 비웃음과 키보드로 대체되고 있었다. 영화에서 가장 소극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상대적으로 오프라인에 가까워 보이는 Jus†ice 님까지 포함해 어느 누구 하나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이 집단으로 묶여 있다.


  사실 피해자나 가해자라는 말도 웃긴다. 번개로 만난 미성년자를 강간까지 했다는 장세민도 멀쩡히 관망하고 있는 판국에. 그냥 이 영화는 허우적거리며 서로의 등에 칼을 꽂고, 또 그 등에도 칼이 꽂히는 참극을 포착했을 뿐인 거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래서 어쩌면 더 잔인했다. 도망갈 수 없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사슬은 어느 한 사람이 엮은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엮은 거였고, 엮인 거였으니까. 이 글을 인터넷에 쓰고 있는 나라고 자유로울까 싶어서 숨이 덜컥 막힌다.


  그래도 그나마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수 있었던 건 마지막에 포스트잇을 떼어 거두는 지웅의 손짓 하나 때문이었다. 사슬을 엮는 손도 있지만 사슬을 끊는 손도 있다는 것 때문에. 유토피아가 없는 이 세계에 그 손짓 하나로 모든 일이 다 해결될 수야 당연히 없겠지만, 적어도 내 옆의 한 사람에게는 위로로 다가갈 수 있는 게 손짓의 힘이니까. 레나의 손이 움찔하는 것을 보고도 레나를 시체로 끌어내렸던 지웅이 결국 용민의 생명만큼은 구했듯이. 그에게 괜찮다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었고, 이럴 땐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라는 당연한 사실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듯이.


  적어도 우리가 마녀 사냥으로 점철된 짐승의 세계에 살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단순히 믿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이 SNS 세계에서 내 옆 한 사람과의 관계를 논하는 게 조금 우습지만,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그렇고 <소셜 포비아>에서도 그렇고 나는 '소셜'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Social, 개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집단을 일컫는 말도 있다. 다수의 참여를 배경으로 하는 말이다. SNS의 소셜은 사실 이 뜻일 것이다. 그러나 social은 사교적인, 관계와 관련된 단어이기도 하다. 관계를 맺고 쌓아 가고 회복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전자는 넘쳐 나니, 이제는 후자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그리고 <소셜 포비아>는 적어도 내게는, 그 경종을 울리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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