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의 나는 세계의 무자비함에 대해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고 누구도 예외가 없으며 설령 그런 일이 개인의 삶을 무참히 짓밟는 데도 누구를 탓할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나의 경험은 둘째치고 친구에게 느닷없이 닥친 사고가 안타깝고 괴로워 나는 내내 속으로 말을 골랐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 고민했지만 그 마음에 정확히 가 닿을 수 있는 말 따위 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무력했다. 친구와 나는 그런 심정을 서로 털어놓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사는 게 무서워, 그래 그런 게 실은 이 세계의 진짜 얼굴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의 솔직한 마음은 그 자체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렵지, 그래도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이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바뀌는 마음과 상황을 기대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법처럼 우리 마음에 희망이 깃들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희망 같았지만 그 희망의 줄을 잡고 따라가고 따라가다 보면 헛되이 보내지 않은 친구의 지난 노력이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노력이 최악의 순간에 희망으로 보답을 해 왔다.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돌아서면 내 몫의 고독이 있다는 걸 알아서 웃으며 헤어졌다고 이것으로 이 일은 끝, 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 이렇게 세계는 무자비한 걸까, 우리는 왜 이렇게 무력하고 하찮은 걸까. 닥치는 일들을 그냥 감내하며 사는 수밖에 없는 걸까. 그런 질문들을 곱씹으며 친구를 홀로 병실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아침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다가 나는 이런 구절을 만났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 부분을 읽는데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거대한 지구나 우주의 관점에서 하나하나의 인간은 사소하고 하찮아 보인다. 나는 그 하찮음 앞에서 종종 무력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단 하나의 진실이 아니야. 약하고 하찮아 보이는 민들레도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데 우리에게 그런 의미가 없을 리 없어. 절대 하찮을 수 없어.
우리는 너무 쉽게 망가질 수 있는 몸과 마음을 갖고 있다. 그렇게 나약하더라도 수십억 중의 하나라 미미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소중하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존재가 더없이 소중해서 내가 없으면 안 돼. 나 때문에 웃고 나 때문에 운다. 우리는 사랑으로 산다. 세계가 무자비할지라도 서로를 보듬으면서, 어둠에 빠져 있을 때 서로를 구원하면서. 어쩌면 친구와 나는 어제 이미 그 아름다운 일을 해낸 것일지 모른다. 모처럼 마음이 벅찼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 믿음이 아니라 사실로 우리는 소중하다. 이렇게 5월을 시작한다. 나는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많은 것들을 애틋하고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에 차오른 사랑이 세계의 무자비함을 견뎌낼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작아지지마, 어깨를 펴.
좋은 봄, 좋은 날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