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결혼, 여름>
사람이 가슴으로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늘이 피렌체 들판의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을 엄청나고 말없는 슬픔으로 뒤덮어가기 시작하는 어떤 저녁, 나는 이 진실이 자명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고장의 슬픔은 아름다움에 대한 한갓 주석만은 결코 아니다. 저녁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 속에서 무엇인가의 응어리가 풀려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슬픔의 얼굴을 가진 이것이 그래도 행복이라고 불리는 것임을 오늘 내가 어찌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알베르 카뮈, <결혼, 여름>, '사막'
나를 대하는 아빠의 깊은 사랑 속에서 슬픔을 읽은 적이 있다. 잠결에 내 목을 끌어안는 지호의 숨소리라든가 '여보세요' 대신 '응 선희야'라고 말하며 내 전화를 받는 엄마의 목소리, 나란히 천천히 걸어가는 노부부, 노을이 넓게 퍼진 저녁 하늘에서도 슬픔을 느낀다. 슬퍼서 슬프기보다 아름답고 애틋해서 슬프다. 사라질까 봐 슬프고 사라져서 슬프다. 슬픔을 품지 않은 아름다움은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름답지 않다.
오래도록 의미로 남아있는 것들은 모두 슬픔의 얼굴을 갖고 있다. 내게 의미로 남아있는 것들은 또한 나의 행복이기도 하니 '의미 있다'란 말은 나를 슬프게도 행복하게도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슬픔이 없는 것들은 의미가 될 수 없고 아름답지도 않으며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슬퍼도 오래 사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