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숙 씨가 오사카를 울렸지

오사카에서의 일기

by 박선희

심수봉의 비나리만 들으면 2절을 넘기지 못하고 눈물이 난다는 명숙 씨는 반주도 없이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른다.

중국에서 한국 여행객을 상대로 약국을 했었다는 마키노상은 IMF 때문에 관광객이 줄자 문을 닫고 일본으로 건너와 버렸다. 중국인인 마키노상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일본법에 따라 마키노상이 되었다. 원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묻지 못했다.

가족같이 지내던 동네 오빠와의 사랑을 부모님이 반대하시자 스물한 살에 과감하게 집을 나온 보영 씨는 나보다 다섯 살 위인데 첫째가 대학교 1학년이다.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보영 씨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신기하게도 그게 막 보인다.


그녀들과 함께 토사보리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날, 명숙 씨가 눈을 지그시 감고 비나리를 부를 때, 마키노상이 취기 오른 눈으로 나를 보며 몇 번이고 활짝 웃어줬을 때, 보영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며 춤을 췄을 때 나는 내 인생에 커다란 행운이 찾아왔음을 알았다. 저마다 사연을 갖고 오사카에 모여든 우리는 아마도 외로웠겠지. 외롭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눈과 귀에서 나는 우리들의 외로움을 보았다. 명숙 씨가 부르는 쓸쓸한 비나리가 오사카에 울렸다. 명숙 씨가 오사카를 울렸다.

손님이 끊긴 시간부터는 사장님과 그곳에서 일을 도와주시는 손 씨 성을 가진 쉰다섯의 그런데 여전히 너무 예뻐 나를 놀라게 한, 내가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어요’라고 묻자 '큰언니라고 해'하고 시크하게 대답해 준, 그러니까 그때부터 큰언니가 된 큰언니도 우리 테이블에 합류를 했다. 부산 출신의 사장님은 해운대에서 산 적이 있다는 보영 씨의 손을 꼭 붙잡고 반가워하셨다.

나는 몹시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명숙 씨가 건네 준 소주병을 들고 노래를 두 곡이나 부르고 말았다. 옆 테이블에 앉았던 명숙 씨의 동네 친구는 이쪽으로 건너와 앉으시라는 말에 손을 흔들며 '이혼하고 올게요'라고 경쾌하게 답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명숙 씨 말에 의하면 요즘 일본인 남편과 위태위태하다고 한다. 그 모든 그녀들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며칠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사랑스럽나, 그날도 그 이후에도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녀들 모두 철들기는 글렀다. 철들 사람들이었으면 애초에 들었겠지. 나나 그녀들이나 철들긴 글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웃음이 났다. 나의 마음은 항상 철들지 않는 사람들 쪽으로 기운다. 내 안에는 철들지 않는 사람에게 반응하는 자석 같은 것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기쁘게 끌려간다. 나는 아직 그녀들의 사연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리고 아마 끝까지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마음, 가장 중요한 그것을 이미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숙 씨는 곧 작은 가라오케를 오픈한다고 했다. 가라오케가 잘 되면 갈빗집을 열어서 돈을 많이 벌면 고아원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가라오케가 갈빗집이 되고 갈빗집이 고아원이 되려면 우리 예쁜 명숙 씨 고생깨나 해야겠네 싶었지만 '잘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잘 될 거예요.

말에는 힘이 있다고 믿지만 말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말해주고 싶었다. 철들긴 그른 그녀들에게, 외로운 그녀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잊지 않고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다 잘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