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의 일기
우리 집은 오사카 벤텐초에 있었다. 벤텐초는 오사카 변두리의 작은 동네. 집과 역 앞, 편의점만 오가던 나는 자전거를 장만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동네 탐방에 나섰다. 동네 탐방의 제일 큰 수확은 이소지 코엔이라는 넓은 공원을 발견한 것. 아침 산책 겸 슬슬 이소지 코엔에 가면 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그런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난 어느 날의 일기.
*아침에 동네 공원에 앉아 있으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열 명 남짓 모이더니 둥글게 서서 맨손체조를 시작하신다.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 있어 구령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나는 리더가 누군지 궁금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손도 발도 반 박자 빨리 나가는 단발머리 할머니가 리더가 분명함. 아침부터 진지하게 체조를 이어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칠십은 족히 되어 보이는 어떤 할아버지는 깨끗하게 세탁된 야구복을 정식으로 차려입고 공원을 가로지른다. 그것도 보기 좋았다. 역시 야구의 나라다워. 근사해, 너무 근사해.
한 동네에 몇 년씩 살다 보면 아이들이 커 가거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늙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얼마 전까지 기저귀를 차고 뒤뚱거렸던 것 같은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따르릉 거리며 지나간다. 앞니 두세 개 빠진 얼굴로 올해부터 초등학생이라고 뽐내기도 한다. 할머니들은 천천히 등이 굽거나 야위어 가고 할아버지들은 본인들이 매일 입는 점퍼처럼 조금씩 낡아간다. 커다란 나무의 굵은 가지가 베어졌다가 다시 자라는 과정이나 가게의 간판들이 얼룩져가는 모습도 보게 된다. 자주 가는 가게의 알바생이 바뀌기도 하고 의사 선생님 흰머리가 조금 늘기도 한다.
돌아보면 살던 동네를 다 좋아했다. 분명히 좋아할 구석들이 한 군데씩 있었다. 초등학교 때 살던 집은 산 동네에 있었는데 비탈길에 핀 꽃과 나무들이 좋았다. 그다음에 살았던 집 앞에는 육교가 있었는데 육교 위에서 보는 먼 하늘이 좋았고, 그다음 집은 저녁마다 골목에 들어서면 밥 짓는 냄새가 풍겨와 좋았다. 누구 네는 된장찌개, 아무개 네는 고등어 구이. 저녁 짓는 냄새는 행복한 거구나 그때 알았다. 결혼하고 처음 살았던 집은 뒤창을 열면 목련 나무가 있어서 좋았고, 두 번째 집은 산과 가까워 공기가 깨끗해 좋았다. 세 번째인 지금은 조용히 산책할 길이 많아 좋다. 이웃들이 골목에 내놓고 정성껏 가꾸는 화분들을 열심히 바라보며 걸어 다닌다.
어제는 자전거를 타는데 자전거 길에 내려앉은 비둘기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배짱들이야 구시렁거리다가 하는 수 없이 내가 비둘기를 비껴갔다. 그러자, 이것도 괜찮네, 왜 꼭 비둘기가 비켜줘야 해, 내가 비둘기한테 양보할 수도 있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좋아졌다.
더없이 사소하게 살고 있다. 살아 있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만큼 아주 사소하고 진지하게 살고 있다. 주위를 가만히 지켜보고 마음에 담는 일을 반복하면서, 사소하고 진지하게.
고맙게도, 나는 해준 게 하나도 없는데 바람도 햇빛도 나무도 자꾸 나에게 베풀어 주기만 한다. 한없이 사랑만 준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한없이 사랑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