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혼자 앞뒤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라디오가 흘러나오는 마룻바닥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이다. 에어컨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가 튼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새소리, 바람 소리,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목소리, 자전거 멈추는 소리, 자동차 소리, 이삿짐 나르는 소리들이 듣기 좋아서. 공기 냄새도 좋다. 비록 축축해도 바깥의 공기에는 살아있다는 실감이 담겨 있다.
오늘 아침엔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창피함, 자괴감, 수치심 살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언젠가 굉장히 창피한 일을 저지른 적이 있는데, 창피한 일을 저질렀다기보다는 해 놓고 보니 창피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랬는데 빛의 속도로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나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 나는 창피함이라는 감정에서 나를 힘껏 보호해야 했다. 그 감정은 나를 너무 보잘것없이 만들었다. 나는 반복하고 반복해서 나를 창피하게 만든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을지 우스워 보일지 그 생각만 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좀 덜 창피할 수 있지? 변명을 한데도 꼴만 더 우스워질 것 같았다. 전전긍긍 방법을 찾다가 누군가의 마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나는 멋있는 사람이기를 포기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멋없고 시시하고 우스워 보인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정말 멋없었어. 나는 멋없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수치심이 때때로 고개를 번쩍 들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 감정을 받아들였다. 실컷 쪽팔린 수밖에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신기하게도 가뿐해졌다. 그럴듯한 나를 포기하니까 오히려 나는 괜찮아졌다. 멋없으면 어때. 아 뭐 어때.
그러고 났더니 피식 웃음이 났다. 조금 용감해진 것 같았다. 내가 두려워했던 건 뭐였을까?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가 뭐 그렇게 중요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쨌든 한 발, 맴돌지 말고 한 발. 무슨 일이 있어도, 부끄럽고 창피하고 때로는 상처 입어도 그런 나를 내치지 않고 껴안으며 한 발. 그렇게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나를 꽤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여전히 창피한 일은 창피하고 그럴 때마다 안절부절못하고 후회한다. 그래도 나는 창피한 순간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멋없었던 나에게 ‘왜 그랬어, 이러는 거 아니잖아, 다음엔 그러지 말자’ 꾸짖고 타이르고 달래며 그 순간을 뛰어넘는다. 그건 나름 꽤 통쾌한 기분을 안겨 준다. 그러니 멋없고 쪽팔리고 시시한 나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앞으로 가는 거야. 끝까지 밀고 나가서 멋없음을 뚫어버리는 순간의 너는 다시 존멋. 머물지 않고 뚫고 나간다. 인생은 지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