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선희 Aug 20. 2024

오직 내가 되는 일

쓰려고 마음먹으면 쓸 수 있는 날들이 며칠이나 있었다. 예전 같으면 분명 글로 남기고 싶을 법한 경험들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더 크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공들여 글을 쓰기엔 나 자신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피로의 날들.

오늘은 오랜만에 일찍 퇴근을 했다. 구름을 보며 오늘도 놀랐지. 구름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요즘. 커다랗게 피어난 구름이 무척 마음에 든다. 뭉게뭉게의 현신. 구름을 구경하며 걸으며, 이 더위는 말이 쫌 안 되는데? 갸웃거리며 실외기 옆을 걷는 것 같아 중얼거리다가 맥주는 마셔야 하는 거 아닌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심각했던 이유는 내일 술 약속이 있어서, 미리 먹으면 내일 맛없을 것 같아서 무척이나 깊이 고민했지만 나는 결국 오늘도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입장해 버렸다. 호올로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허공을 바라보는 건 나의 큰 기쁨.

배수아의 신작을 펼쳐 들고 읽다가 맨발을 옆 의자 위에 올려 두고 멍하니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동안 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왜 쓰지 않았을까.

그러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쓰고 싶다는 뜻이야.

얼마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무엇이 되고 싶지도 무엇을 이루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 원래도 그런 마음이 희미한 유형이긴 했지만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의 나는 분명하게 무엇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메세지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훌륭한 방식으로, 분하지만 너무 멋지게 전달해 왔고 굳이 나까지 보탤 것 없는 거 아닌가 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사실이었다. 그들보다 잘 쓸 자신도, 그들보다 더 묵직하게 날릴 자신도 없다. 더 경쾌하게 날릴 자신은 있나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굳이 누구보다 나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거야 그렇지만 어쩌면 내 안에 반드시 써서 무언가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약해진 것일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살수록 그런 생각을 한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고,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좋다고. 나는 이미 내가 되었고 나는 나로서 되었다. 내가 내가 되는 일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나는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그럴듯한 나도, 형편없는 나도 껴안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오직 내가 되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데 그럼에도 끝까지 내가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서 오늘도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살아내며 애쓰고 있다. 점심은 뭘 먹을까 하는 사소한 고민부터 돈은 어떻게 마련할까 하는 큰 고민까지 모두 짊어지고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일들을 해결해 나가며 우리는 나로 살아간다. 모두가 자신으로 사느라 고생이 무척 많아. 이 이상의 의미를 아직은 찾지 못한 요즘, 나는 내가 깨달은 만큼만 나아가는 수밖에 없고, 지금은 그 깨달음에 충실히 오직 내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자신이 되느라 애쓰고 있으니까 조금쯤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봐 주는 거 어때. 마음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눈길로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애쓴다, 나도 그래, 그런 눈길로 바라봐 주는 거 어때. 나는 찬성인데 말이야, 그러는 거 어때.

매거진의 이전글 더할 나위 없이 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