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처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거였어

한강 <소년이 온다>

by 박선희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한강, <소년이 온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인간이 유리처럼 쉽게 깨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나를 지키는 데 마음을 모았다. 부딪히면 깨질까봐 어느 곳으로도 깊숙이 다가가지 않으려 했는데 의도적이었다기 보다는 본능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 안에 그런 속성이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다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고 이후 줄줄이 떠오른 순간들은.

어렸을 때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같은 아파트 일층에 사는 아주머니 네서 우리 집이 돈을 빌렸단 사실을 알게 되었던 순간, 그 뒤로 일층 아줌마를 마주칠 때마다 이상하게 움츠러들던 여섯 살 마음, 내 거짓말을 알게 된 친구의 경멸하던 눈빛, 집에 찾아 온 빚쟁이 아저씨가 엄마를 대하던 거친 말투, 나를 싫어하던 친구들의 수군거림, 회사 복도에서 몰래 받던 빚 독촉 전화, 내 영혼에 금이 가던 순간들.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내 영혼에 금을 긋던 수많은 순간들 덕분에 인간이란 아주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어. 그래서 누구의 영혼이든 다치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왜냐면 너무 쉽게 ‘쩍’하고 영혼에 금이 가던 그 기억들 때문에, 인간이란 이렇게나 쉽게 상처입고 마는구나 알았으니까. 그래서 깨지지 않게 대해 주고 싶었다, 그게 누구라도. 결국 내 상처는 너를 안아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쩍,하고 니 영혼에 금이 가던 순간들을 가늠하다가 우리의 상처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밤, 내 상처는 널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