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갱신하고 싶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다시, 올리브>

by 박선희

처음 ‘다시, 올리브’를 산 건 순전히 뒤에 있는 추천의 글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생이 고통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사실이 괴로웠다. 어쩌지, 그렇게 힘든 순간이 연속이라면 그 사람은 어쩌지 그런 생각들 때문에 괴로웠다. 그때 그 추천의 글을 봤다.


‘단 한 번도 바라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 삶이라고 해도 그 속에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환하게 각인되어 있음을 이 소설은 상기시킨다. 휘청이고 넘어지고 흐느끼다가 다시금 일어서는 서로의 삶을 아프게 지켜보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전부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라는 사실도.’


첫 문장에서 이미 나는 그 당시 내가 구하던 답을 얻은 것 같았다. 이런 것이 인생이기만 하다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염려했던 주위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환하게 각인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런 안도와 기대 속에 읽기 시작한 ‘다시 올리브’는 기대 이상이었다. 첫 두 에피소드까지는 긴가민가했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리브도 여러 차례 자신은 실패했다고 느낀다는 말을 한다. 올리브뿐 아니라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들이 자신은 실패했다고 느낄만한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패에만 골몰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 실망하고 절망하다가도 다시 주어진 삶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사랑이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주는 친구, 괜찮다고 등을 두드려 주는 이웃,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나누는 사람들. 우리에게도 있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그것들.

올리브를 읽으며 우와우와 좋아서 약간 어쩔 줄 몰랐던 지난 여름

가장 강렬한 에피소드는 ‘시인’이었다. <시인>을 읽은 그날의 전율은 잊을 수가 없다.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실제 책의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올린 일은 없었는데 그날의 감동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 책 표지를 찍어 프로필 사진에 올렸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에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고 또 몇몇에게는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시인>을 읽고 전율을 느낀 이유는 이것이다.


모든 에피소드에 올리브는 크고 작은 역할로 등장하는데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인>을 읽을 즈음에 와서는 우리는 올리브라는 인물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 올리브는 오지랖도 넓고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따뜻한 면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등장인물 중 꽤 많은 수가 그녀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 올리브와 르리외의 만남을 그린 첫 부분에서도 우리는 르리외가 올리브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고 믿게 된다. 르리외는 올리브가 젊었을 때 가르쳤던 제자이다.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난 르리외는 이제 유명한 시인이 되어 있었다. 성인이 된 르리외는 고향을 찾았다가 우연히 올리브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둘의 대화는 큰 무리 없이 그럭저럭 마무리된다. 올리브는 르리외가 외롭고 슬픈 사람이라고 느끼고 자신과의 대화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은근히 바란다. 그러나 이후에 르리외가 올리브에 대해 조롱에 가까운 시를 쓰고 누군가는 그 시가 실린 잡지를 올리브의 집 우편함에 넣어둔다. 그것을 발견한 올리브는 몹시 불쾌함을 느낀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층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좋은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야유와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로써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마무리되었다면 전율이 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전율이 일었던 것은 그 이후 올리브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껏 인간의 경험이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제대로 알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올리브는 앤드리아 르리외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고, 앤드리아도 올리브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드리아는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을 그녀보다 더 잘해냈다. 얼마나 재미있는가. 얼마나 흥미로운가. 올리브는 자신이 늘 다른 사람이 모르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 이어 그녀는 노트북을 치우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앤드리아. 잘됐어. 네가 죽지 않아 다행이야."


올리브는 르리외 덕분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과거에 자신의 두 번째 남편인 잭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고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사람이었는지 깨닫는다. 그러나 올리브는 르리외의 판단, 르리외의 글을 전적으로 옳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르리외를 몰랐던 것처럼 르리외도 자신을 모르고 있으며, 인간이 다른 인간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동안 자신이 타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놀라고 반성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만하게 그런 글을 쓴 르리외를 원망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지만 올리브는 르리외의 처지를 떠올리며 ‘그녀가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불쾌한 일을 겪고도 타인을 원망하고 미워하기보다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올리브의 태도, 그러면서 끝까지 잃지 않은 인간에 대한 애정. 나는 올리브의 그 변화가 정말 놀라웠다. 브라보! 올리브는 인생이 저물어 가는 나이에 다시 한번 자신을 갱신한다.

떠오르는 해만큼 저무는 해도 얼마나 아름답다고.

우리는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고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 성장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올리브가 끝끝내 버리지 않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나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언제든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몇 번이고 나를 갱신하고 싶다. 내가 아는 것만이 전부고 옳은 그런 시시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올리브처럼 애정 어린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모든 다짐과 결심이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고 믿는다. 이런 순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책 읽기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