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제 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으며, 얘기를 끝낸 시점에서도 어쩌면 사태는 똑같을지도 모른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요양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을 위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얘기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정직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정확한 언어는 어둠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내가 여기서 하는 얘기는 현재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덧붙일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도 생각하고 있다. 잘만 되면 먼 훗날에, 몇 년이나 몇십 년 뒤에 구원받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코끼리는 평원으로 돌아가고, 나는 더 아름다운 말로 세계를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학교 도서실에서 새로 주문한 책 중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끼어 있었다. 몇 년이나 되었더라, 책을 꺼내 들고 언제쯤 읽었었나 더듬어보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다는 것과 읽고 난 후에 굉장히 흥분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집에 들고 와 읽는데 이 책을 처음 읽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좋은 건 앞의 몇 장뿐이었다. 그런데 그 몇 장을 읽는 동안이 정말 좋았다. 전체 내용은 희미한데 내 안에 들어왔다 나간 것이 분명한 몇 개의 문장들이 나를 지난 시간의 어느 지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침대에 엎드려 이 책을 읽던 오래 전의 내가 기억이 났다. 매우 즐거워하던 내가 기억이 나서 좋았다.
'덧붙일 건 아무것도 없이 이로써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될까.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다. 최선을 다해도 후회는 남는다. 크기의 차이일 뿐 후회야 언제나 남는다. 그러니 너무 큰 후회를 남기지는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후회를 남기는 것만큼 내 자신에게 몹쓸 짓은 없으니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돌아보며 후회하는 일을 되도록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줄일 수 있을 뿐 후회는 언제나 남는다. 그러니 후회를 나쁘다고만 할 수가 없다. 가끔 나의 후회를, 언제나 뒤에 남아 외롭기만 한 나의 후회를 쓰다듬어 준다.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뭐, 꼭 니 잘못이 아니야,라고 쓰다듬어 준다. 그러면 내가 꼭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