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사카에서의 일기

by 박선희

새로 일을 시작했다. 재일교포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두 반을 맡았는데, 두 반 합쳐도 서른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국어의 경우 한국어 실력에 따라 상중하로 나누어 수업을 하는데 내가 맡은 반은 당연히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고급반이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말하면 언제나 아이들이 두렵다.


아이들은 눈빛으로 말을 건다. 무한한 신뢰, 끝없는 호기심, 그럴 줄 알았다는 비난, 필요 없다는 거부, 니 속쯤이야 뻔히 보인다는 경멸, 이 모든 것들을 번갈아 가며 눈에 담아 그대로 쏘아댄다. 그런 마음들이 너무 잘 보여서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쟤가 오늘 안 좋은 일이 있나? 내 수업이 마음에 안 들었나? 내가 한 말 중 상처가 되는 게 있었나? 끊임없이 아이들의 눈에 비춰 나를 돌아보는 일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그러나 게을리할 수 없는 것은 나도 저 자리, 교탁의 반대편 자리에 앉아본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좋아하던 영어 선생님에게 '너는 항상 그런 식이야.'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그때 선생님의 경멸에 찬 눈빛, 내가 뭘 그런 식이라는 건지, 도대체 나를 항상 어떻게 생각하셨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오랫동안 곱씹었다. 백 프로 장담하지만 영어 선생님은 저 장면을 절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아직도 그 선생님의 눈빛이 기억나는 거지?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남편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질문에 장난스럽게 대답했다가 교실을 ㄷ자로 돌아가며 따귀를 맞았다고 했다. 그 작은 몸으로 따귀를 맞으며 교실을 반 바퀴 넘게 뒷걸음질을 쳐 돌았을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눈을 질끈 감게 된다. 이십 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씩 그 꿈을 꾼다고 했다. 선생님께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 우리뿐일까. 그러니 아이들의 눈으로 나를 돌아보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개운하지 않게 수업을 마치고 나면 다음 수업 때까지 마음이 불편하다. 말이나 마음이 아이들에게 가 닿지 않고 벽에 막혀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분명히 내 준비가 덜 된 것이기 때문에 화살을 어디 다른 데로 돌릴 수가 없다. 반면 우리가 분명히 하나의 공기 속에 놓여 있구나 느낄 때가 있다. 내가 말한 것, 생각한 것, 웃음이나 슬픔, 이런 것들이 분명히 전해졌다고 느껴질 때, 그리고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이 나에게 와닿았을 때, 그때의 기쁨은 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매 순간을 어땠는지 반성해야 하니, 여간해서는 후회하지 않는 나로서는 힘든 직업이 아닐 수 없다.

새벽 네 시 반에 눈이 떠졌다.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어제의 수업이었고 눈으로 레이저 쏘면서 나는 요주의 인물이라고 말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 우리 용철이 얼굴이 떠올랐다. 알았다 오바, 우리 용철이에게는 더욱 깊은 애정을 쏟아주지,라고 혼자 다짐한다. 다시 잠들려 했는데 잘되지 않아 그저께 시작한 책을 읽기 시작해서 끝을 보았다. 꽤 긴 분량의 장편이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혔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소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소설의 효용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최근 읽은 책들이 거의 비슷한 결론으로 내딛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 동어반복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건방진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이것도 일종의 성장인가 싶어 싫기만 한 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야기의 힘은, 내가 믿는 가장 단단한 것 중 하나이다. 이제 내 눈앞에 서른 명의 이야기가 놓여 있다. 아이들 하나하나는 이야기다. 세상에 명랑하기만 한 서사도 없고 슬프기만 한 서사도 없다는 걸 명심한다. 서른 명의 이야기들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인가, 조금쯤 생활이 다이내믹해진 느낌이다. 잘해볼 생각이다. 선생은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 피곤한 나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