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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 Oct 29. 2023

23 관계를 읽는 시간

적절한 바운더리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든다.

문요한 (2019), <관계를 읽는 시간>, 더 퀘스트


초기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민이다"라고 까지 했다. '전부'라는 말에 조금 과한 표현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관계에 대한 영향은 인간 삶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어렸을 때 가족관계를 통해서 성격까지 형성되기도 하고,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가족관계보다 더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직장에서의 상사와 동료 그리고 부하 직원들과의 관계가 일보다 더 힘들다는 사람도 주위에 너무도 많다.


어떤 사람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상호 도움이 되는 관계를 유지하지만,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기가 쭉 빨리는 느낌을 받거나 될 수 있는 대로 부딪히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교류를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성장과 나아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어려서 읽은 동화책은 모두가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언제부터인가 '착하다'라는 말은 왠지 어리숙하고 자기 걸 챙기지 못하는 사람처럼 인식된다. 흥부와 놀부처럼 이원론적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흥부의 캐릭터가 더 이상의 바람직한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니듯 말이다. 착하다는 것은 자기 것을 잘 못 챙기고, 개성이나 매력이 없는 사람을 표현하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까지 포함하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흔히 아이가 착해빠진 것에 대해 부모들도 앞으로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살지를 걱정한다. 책에서는 이런 착함을 '미숙한 착함'이라는 말로 다시 재정의한다.


"다른 사람의 요청을 잘 들어주고, 늘 습관적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 있다. 흔히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착하다'라고 한다. 이게 과연 '착한' 게 맞나? 혼란을 줄이려면 착함을 둘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숙한 착함'과 '미숙한 착함'이다. 먼저 '미숙한 착함', 이것은 간단히 말해 '순응'이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어린이의 모습과 같다. 미숙한 착함에는 자기도 모르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칭찬이나 인정을 받으려고 하거나, 상대의 호감이나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친절과 배려의 대가를 바라는 보상심리가 숨어있다."


저자는 "착한 척하는 것은 선이 아니라 위선이다."라고 까지 격하게 표현한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다른 사람의 관심, 인정,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진정한 이타심이 부족하다고 한다. 결국, 자아가 약해서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것이다.


정신의학자인 문요한, 이 책의 저자는 모든 관계에는 저마다 건강한 거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 거리를 '바운더리'라고 한다.


"바운더리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를 말한다. 자아의 진짜 모습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바운더리라는 형태로 실체를 드러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에서 벗어나서는 생존할 수 없기에 같이 살아가야 하는 숙명 속에서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생성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렸을 때 잘못된 양육방법 등으로 생성된 사람을 대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맞춰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생성된 사람의 행동양식은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때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 늘 양보만 하는 사람, 늘 지배적이고 자신의 권위에 주위를 굴복시키려는 사람, 누군가 오기도 전에 벽을 쌓고 배척하는 사람,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려하고 힘겨워하는 사람 등. 이것은 그 사람이 관계에 대해서 어떤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고 또는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바운더리를 가져야 할까.


"바운더리는 자신을 보호할 만큼 충분히 튼튼하되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


건강한 바운더리, 즉 건강한 인간관계란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능력'을 얘기한다. 그리고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들의 다섯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관계 조절 능력이 있다.

둘째, 상호존중감을 가지고 있다.

셋째, 이들은 상대의 마음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넷째, 이들은 갈등회복력이 높다.

다섯째,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사람마다 바운더리의 경계가 적절해야 하지만 너무 희미하거나 너무 벽을 두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어렸을 적에 양육자와 연결을 유지하며 양육자로부터 안정적으로 분리되어야 건강한 자아가 탄생할 수 있는데 그것에 균형이 깨지거나 조화롭지 못하게 분리되면 미분화 또는 과분화 유형이 된다고 한다.


인간의 관계 유형은 유아기에 애착손상으로 네 가지 유형이 생성된다. 이것은 바운더리 이상에 따른 역기능적인 관계 유형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일그러진 바운더리이다.

순응형, 돌봄형, 방어형, 지배형이 그것이다. 그리고 순응형과 돌봄형은 미분화된 유형이고 방어형과 지배형은 과분화된 유형이다. 순응형과 방어형은 인간관계 교류에 소극적인 반면, 돌봄형과 지배형은 적극적이다. 이 네 가지 유형이 어떨 땐 한 사람에게 골고루 나타날 수도 있다.

회사에서는 순응형인 남자가 집에 와서 지배형으로 바뀌는 경우가 그렇다.

이 네 가지 유형 중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사람이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혜민스님의 저서에서 '인간관계는 난로와 같아야 한다.'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너무 가까우면 데일 수 있고 너무 멀면 추운 것이 인간관계일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람은 남에게 좋은 인상을 보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왜 나에게 무례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겠는가.

이럴 때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들은 떳떳하게 자기주장을 얘기도 하고, 거절이 필요할 때는 정중히 거절할 수 있는 용기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과의 관계가 참 힘들게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물처럼 흘러가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은 스스로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한 관계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스스로와 잘 지내는 사람은 결국 가족과 남과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바운더리를 생성하고 서로 존중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옛날 가수 중에 '따로 또 같이'라는 듀엣이 있다. 이 말이 참 이 책과도 어울려서 와닿는다.

사람은 누구 하고도 늘 같이 할 수는 없다. 심지어 가족마저도.

때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도 하면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같이 있을 때 기쁨이 배가 되고, 슬픔이 반으로 줄어드는 건전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운더리는 처음에는 희미하게 생겨나서 점점 뚜렷해지다가 그 정점을 지나면 다시 희미해진다고 한다. 성장을 통한 관계에서 바운더리가 다시 약해지는 것은 '미숙한 희미함'으로 내려감이 아니라 '성숙한 희미함'으로 올라섬이라는 것이다. 자아의 성장,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삶속에서 자연스럽고 유연한 바운더리가 생성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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